요기 바라티는 바바에게 자신과 함께 스위스로 가자고 청했고, 바바는 나중에 그 일에 대해 편지를 보내면 그 요청을 고려해 보겠다고 했다.
바바가 점심을 먹으러 방갈로로 돌아가려 할 때, 슈다난다 바라티는 바바의 방에 앉아 잠시 명상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바바는 자신이 만달리와 대화하던 방에 그가 앉아 있도록 허락했다.
명상을 마친 뒤 그 요기는 닐루에게 "바바는 아주 위대한 성인입니다"라고 말했다.
"메헤르 바바는 성인이 아닙니다." 하고 닐루가 바로잡았다. "그분은 모든 성인들 위에 계신 분입니다!"
"메헤르 바바는 어떤 영적 수행을 하십니까?" 하고 바라티가 물었다.
"그분은 어떤 사다나도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닐루가 설명했다. "메헤르 바바는 모든 지식의 근원입니다. 모든 지식이 그분에게서 흘러나오므로, 그분에게는 성취하거나 알아야 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사다나는 구도자가 하는 것이지, 깨달은 분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라티는 우유와 과일을 대접받고 오후 2시 15분에 떠났다.
그 회의 대표들 가운데 한 명은 G. S. N. 무르티였다. 캘커타에서 철학 박사 과정을 밟는 동안 무르티는 데슈무크 박사를 만났고, 데슈무크는 그에게 바바의 다르샨을 받으라고 권했다. 무르티는 바라티가 바바를 만나러 데라둔에 간다는 말을 듣고 자신도 동행해도 되는지 물었다. 바라티는 반대하지 않았지만, 키샨 싱은 바바가 자기에게 바라티만 데려오라고 했다고 경고했다.
데라둔에서 바라티가 바바를 만나러 안으로 들어갔을 때 무르티는 차 곁에서 기다렸다. 바바는 다른 사람까지 데려온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바바는 무르티를 안으로 들이지 않고 이런 메시지를 보냈다. "그가 정말 나를 사랑한다면, 언젠가 내가 그를 부를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떠나야 합니다."
이 기간 안드라프라데시에는 메헤르 바바가 경찰에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다는 소문이 퍼졌다. 그곳에 있던 바바의 연인들은 불안해졌고, 그들에게서 걱정 어린 편지가 많이 도착했다. 그들의 불안을 가라앉히고 모든 것이 괜찮다는 것을 안심시키기 위해, 바바는 1953년 4월 초 에루치와 펜두를 15일 동안 안드라로 보냈다.
바바의 지시에 따라 에루치와 펜두는 안드라에서 돌아오는 길에 나그푸르에서 바바다스를 만났다. 그들은 바바다스에게 바바가 그가 데라둔으로 돌아오기를 바란다고 전했지만, 바바다스는 거절했다. 그의 불순종과 명령 무시 때문에, 바바는 그와의 모든 외적인 관계를 끊었고, 관련된 모든 이들에게도 회람을 통해 그렇게 알렸다. 바바다스는 순진한 사람들을 속이고 바바의 허가도 없이 메헤르 바바의 이름으로 돈을 빌렸지만, 메헤르 바바는 나중에 바바다스에게 속은 사람들에게 그 돈을 모두 갚아 주기로 했다.1
1953년 4월 10일 금요일, 바바는 남녀 만달리와 함께 데라둔을 떠나 무수리라는 산악 휴양지로 갔고, 인도 여름의 가장 더운 시기인 7주 동안 그곳에 머물 예정이었다. 해피 밸리에 있는 테리 마하라자의 집인 헌 힐 방갈로를 임대했고, 알로바와 쿠마르가 미리 가서 그것을 청소했다. 바바와 여성들은 본채를 쓰고, 남성들은 하인 숙소에 머물렀다.
각주
- 1.바바다스는 나중에 나그푸르에 있는 타주딘 바바의 묘소 관리인이 되어, 성인인 체하면서 사람들에게서 돈을 뜯어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