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 그는 에루치에게 이 성명서를 읽으라고 지시했다(이 성명서는 23일 데흐라둔에서 구술되었고, 뒤에 회람 형태로 발행되었다):
우리는 아무리 많이 배우고 읽고 가르치고 추론하고 설교해도 그것으로는 해탈[묵티]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을 단번에 이해해야 합니다. 베단타의 표현과 수피의 담론, 신비주의적 말들과 철학적 진술들은 영적으로 우리를 어디에도 데려가지 못합니다. 종교 회의와 영적 단체들, 그리고 이른바 보편적 형제애는 영혼을 자유롭게 하기보다 오히려 묶어 두기 쉽습니다.
오직 우리가 지성을 초월해 사랑의 영역으로 들어갈 때에만 해탈을 열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절정에 이르면, 우리는 사랑하는 하나님 안에서 자신을 잃고 영원한 해탈에 도달합니다. 해탈한 이들은 모든 환영적 집착에서 늘 자유롭습니다. 선과 악, 덕과 악덕은 신성한 진리의 대양을 더럽힐 수 없습니다.
완전함은 단지 마야의 법칙에서 벗어나는 것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이 되는 것이 완전함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의식적으로 하나님이 된 뒤 다시 인간으로서 물질의식으로 돌아오면, 그는 지고의 완전함을 이룬 것입니다. 그러한 완전한 이는 하나님일 뿐 아니라, 인간으로서 하나님의 삶을 삽니다. 그는 마야 안에 있으면서 동시에 그 너머에 있습니다. 그는 카르마의 법 가운데 있으나 그것에 묶이지 않습니다. 그의 행위가 무엇이든 그것은 비행위입니다. 보통 인간을 속박하는 행위도 완전한 이에 의해 행해질 때는 속박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인류를 마야의 무지에서 해방시키는 그의 우주적 영적 작업을 위한 통로가 되기 때문입니다. 완전한 이들은 자유 그 자체로부터도 자유롭기 때문에, 자신들의 우주적 작업을 위해 행하는 비행위로부터조차 자유롭습니다.
나를 사랑하고 자연히 내 활동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이것뿐입니다. 내 내면의 삶과 내적 활동에 관해서는 오직 하나님과 하나님과 하나인 이들만이 알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 취한 이들[머스트]과 성자들, 사두들,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는 내 작업에 관한 외적 활동, 곧 그들을 접촉하고 그들과 함께 일하고 그들을 섬기며 온마음의 헌신으로 그들에게 절하는 일은 모두 내 제자 한 사람이 《여행자들》에 기록해 두었습니다.
나는 놀이를 즐깁니다. 특히 크리켓과 구슬치기, 연날리기를 좋아하고, 드물게는 음악 듣기도 즐깁니다. 아득한 옛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나는 마야의 우주와 함께 놀이해 왔으며, 노는 이 즐거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