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저녁 7시 30분, 그들은 타데팔리구뎀에 도착했다. 역 승강장에서는 수백 명이 바바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상에서 이 광경을 목격한 천사들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고, 그 눈물은 비구름이 되어 하늘에서 이슬비처럼 내리기 시작했다.
메헤르 환영 위원회 위원들이 바바를 맞이하러 앞으로 나왔다. 바바가 기차에서 내리자 다나파티 라오 박사가 그에게 화환을 잔뜩 걸어 주었고, 다른 이들도 그렇게 했다. 철 아닌 비 때문에 그들은 약 5분 동안 역에 머물러 있어야 했다. 그동안 태고의 분을 타데팔리구뎀에 맞이하는 크고 우렁찬 환호가 허공을 가득 메웠다.
수천 송이 꽃으로 장식된 차에 바바는 나리만, 메허지, 에루치, 다나파티 라오와 함께 앉았다. 다른 모두는 자동차나 버스에 올라 바바의 차 뒤에 줄지어 서서 긴 행렬을 이루었다. 행진 악대의 선도로 그들은 기차역을 빠져나왔고, 군중은 이 감미로운 곡조를 불렀다. '나모 메헤르 바바, 아바타, 나모 데브 데바 [전능하신 메헤르 바바, 아바타, 모든 신들의 신].'
그것은 안드라를 불타오르게 하러 온 그분을 위한 화려하고도 감동적인 행렬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는 불이었다. 오히려 사람들은 스스로를 태우려고 그 불을 향해 달려갔다. 그만큼 그 불의 자력적이고도 최면 같은 끌림은 강했다.
8시가 되자 행렬은 바바가 머물 닥 방갈로에 도착했다. 만달리와 다른 이들은 기숙 시설이 있는 한 고등학교에 묵었다. 현지 변호사 조시울라 벤카테슈와라 라오가 그들의 식사 준비를 총괄했다.
1월 18일 일요일, 바바는 다나파티 박사의 방갈로로 가서 오전 9시부터 10시까지 먼저 구빈 활동을 했다. 평소처럼 그는 가난한 일곱 사람의 발을 씻기고 그 발 위에 머리를 댄 뒤, 각자에게 51루피를 주었다. 말했듯이, 불타는 자유의 삶 동안의 모든 일정에서 이 활동이 맨 먼저였다. (바바는 또 각 기착지에서 마스트들을 접촉하기 위해 돌아다니기도 했다.)
이어서 바바는 바비세티 무를리다르라는 열일곱 살 소년의 발을 씻기고 그 위에 머리를 댄 뒤, 프라사드로 14루피를 건네주었다. 그는 그 소년에게 밤에 잠자리에 들기 전에 바바의 이름을 부르고, 결코 거짓말하지 말며, 나쁜 짓을 하지 말라고 일렀다. 그 젊은이는 바바와 일행의 순회에 동행하도록 허락받았다.
그다음 바바는 다나파티의 가족을 만났다. 그는 또 안드라 메헤르 센터의 비서였고 후에는 부회장이 된 58세의 I. V. 세샤기리 라오의 가족도 만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