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푸르를 떠난 바바는 4일 오후 5시경 알라하바드행 기차에 올랐는데, 역에는 그를 전송하려고 모여든 엄청난 군중의 떠들썩한 환호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같은 기차를 타고 가던 다른 승객들까지 바바의 다르샨을 받으려고 달려왔다.
바우도 와 있었고, 바바는 그에게 손짓으로 말했다. "오늘 있었던 일[곧 내려진 명령들]을 기억하십시오."
바우의 아내 라마도 아기 쉴라를 데리고 그와 함께 왔다. 바바는 아이를 간질이며 입맞춤했다. 바바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고, 처음부터 바우가 마지막까지 자신과 함께 지낼 수 있도록 길을 터 주었다.1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천둥 같은 환호가 터져 나왔다. 많은 이들의 눈에 눈물이 맺혔고, 멍한 표정인 이들도 있었다. 바바는 객차 출입구에 서서 플랫폼에 남은 슬픔에 잠긴 연인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한동안 그들은 눈을 떼지 못한 채 기차가 떠나가는 모습을 바라보고 서 있었고, 마치 그들의 가슴도 함께 떠나간 듯했다.
바바의 알라하바드행은 비밀이었고, 아무도 그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했다. 바바는 바이둘을 미리 보내 집과 머스트들을 찾게 했다. 거의 36시간의 여정 끝에 바바와 일행은 1953년 1월 6일 화요일 오전 1시에 알라하바드에 도착했다. 바바는 자기 자신을 포함해 누구도 기차 안에서 눕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잠을 자지 못했다.
바이둘은 조용한 지역에 새로 지은 집을 찾아 놓았고, 모두가 그곳에 머물렀다. 그들의 이웃으로 하리쉬찬더 베르마가 있었는데, 모든 편지와 전보는 그의 주소로 보내져 그의 보살핌 아래 처리되었다. 알라하바드에서 바바가 그곳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뿐이었고, 바바를 만날 수 있도록 허락된 사람도 그뿐이었다. 알라하바드에 도착하자 바바는 시내는 물론 인근 지역의 머스트들을 접촉하러 나섰다. 그는 또 도시 안팎의 여러 성소와 다르가, 무덤, 사마디를 방문했다.
에루치, 펜두, 바이둘은 당시 알라하바드에서 한창 진행 중이던 쿰바 멜라의 여러 집결지에서 사두 100명을 모아 왔다. 9일에 바바는 각 사두의 발에 50번씩 머리를 대고, 프라사드로 50루피씩 주었다. 그런 뒤 바바는 만달리 열 명을 여러 지역으로 보내 다른 사두들과 마하트마들을 접촉하게 했다. 그들이 떠나기 전에 바바는 그들의 발에 50번 머리를 숙였고, 만달리 각자가 사두 50명에게 절하라고 지시했다. 그렇게 해서 일정 수의 사두를 접촉해야 하는 자신의 일이 그들을 통해 더 빨리 끝나게 하려는 것이었다.
각주
- 1.공교롭게도 1953년 1월 4일 이른 시각, 바바는 인두 데쉬무크가 근무하던 산부인과 병원 마트루 세와 상을 찾아, 필레이라는 지역의 한 연인의 딸을 보았다. 그 소녀는 7번 방에 머물고 있었는데, 그 방은 일곱 달 전 쉴라 칼추리가 태어난 바로 그 방이었다. 몇 해 뒤 데쉬무크 부부는 바바의 방문을 기념하는 명판을 설치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