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역시 사오네르 행사들에 참석했었다. 판크라즈와 그의 아내 타라바이, B. B. 캅세와 그 가족, 그리고 람다스 차우라시아와 그의 아들 샹카랄, 가네쉬랄이 바바를 맞이하려고 모였다.
1953년 1월 2일 금요일 오전 9시 30분에 나그푸르에 도착한 뒤, 바바의 첫 일정은 늘 그렇듯 가난한 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이었다. 그 행사는 새로 지은 기타 사원의 큰 홀에서 열렸고, 그 뒤 바바는 나그푸르의 가까운 바바 애호가들을 만났다.
그날 저녁 5시 바바는 파르시 묘지로 가서 잘 케라왈라의 묘에 장미 화환을 바쳤다. 만달리도 저마다 장미 한 송이씩 바치며 경의를 표했다.
바바는 말했다. "잘은 나를 위해 살았고 내 안에서 죽었다."
그런 다음 바바는 타주딘 바바의 묘를 찾아가 경의를 표했다. 그는 타주딘 바바가 마지막 숨을 거둔 힌두 왕 라자 라구지 라오 보슬레의 궁전으로 갔다. 라자 보슬레는 의식을 갖춰 바바를 맞이하고 아르티를 올렸다.
바바는 그에게 말했다. "내가 여기 온 것은 당신이 왕이기 때문이 아니다. 당신은 오랫동안 충실하게 타주딘을 섬겼고, 그 봉사의 열매로 여기서 나를 만나게 된 것이다. 타주딘은 너무도 위대해서 발길질 한 번으로 먼지에게조차 깨달음을 줄 수 있었다."
타주딘 바바의 시신은 몇 마일 떨어진 타즈 바그(타즈의 정원)에 묻혀 있었지만, 궁전은 그가 늘 머물던 자리였기 때문에 라자 보슬레는 그곳을 이 위대한 쿠툽을 기리는 기념물로 보존해 두었다. 궁전에서 나오며 바바는 타주딘이 쉬곤 하던 돌 위에 앉았다. 바바는 모든 만달리에게 상징적인 사마디에 가서 다르샨을 하라고 했고, 그들도 그렇게 했다.
한편 아이린 코니베어는 하미르푸르의 다르샨 프로그램에 하루만 참석한 뒤 건강이 좋지 않아 메허지와 함께 푸나로 떠났었다. 그녀는 다르샨 프로그램에 참여하라는 부름을 받고 나그푸르로 왔는데, 몸이 아직 낫지 않았음에도 왔다. 알렉산더 마키는 사오네르에서 바바의 다르샨을 받은 뒤 떠났다. 그는 잊을 수 없는 체험을 했고, 신성한 불꽃 근처에서 수없이 많은 나비가 춤추는 광경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1
1953년 1월 3일 토요일, 기타 사원에서 어린이 프로그램이 열렸다. 셰를레카르가 이를 준비했고, 거의 1,500명의 학생들이 바바의 다르샨을 받았다. 아이들은 모두 열두 살 미만이었다. 절하는 것에 관한 바바의 메시지가 설명되었다. 바바는 모두에게 절했고, 어린이들을 위한 메시지가 낭독되었다. 바바는 마치 자신도 아이인 듯 각 무리의 어린이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렸다.
각주
- 1.알렉산더 마키는 그 뒤 인도 폰디체리의 오로빈도 아쉬람과 인연을 맺었고, 1958년 9월 5일 스위스에서 사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