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나그푸르 프로그램을 연기한 데에는 숨은 목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바바는 자기 그물로 물고기 한 마리를 잡아야 했지만, 그 "물고기"는 그때 나그푸르에 없었다. 그래서 바바는 300마일을 다시 돌아 메헤라자드로 갔다가 나흘 뒤에 또다시 사오네르로 떠났다!
독자들은 이 물고기가 누구였는지 궁금해할지 모른다. 그는 다름 아닌 저자 비르 싱(바우) 칼추리였다.1 1927년에 태어난 바우는 스물여섯 살로, 행정학 석사와 법학 학위를 동시에 공부하고 있었다. 그는 또 이학 석사 학위를 위해 화학 연구도 하고 있었다. 그 무렵 바우는 영성에 특별한 관심이 없었고, 사실 그것이 무엇인지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는 헌신적인 영혼이었고, 이런 점과 학구적인 성향 때문에 동료들과 교수들은 그를 푼딧지라고 불렀다. 그는 날마다 온 마음으로 기도를 외웠지만, 그 이상은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그런데 바바가 나그푸르에 오기 두 달 전부터 바우는 안절부절못하며 대학 공부에 흥미를 잃었다. 그는 와르다 근처에 있는 마하트마 간디의 아쉬람 세가온에 갔지만, 그곳에서도 행복하지 않았다. 나그푸르로 돌아온 그는 라마크리슈나 아쉬람에 갔지만, 거기서도 실망했다. 출가해 남은 생을 히말라야에서 살겠다고 생각한 바우는 리쉬케쉬의 한 스와미에게 편지를 썼고, 그 스와미는 1953년 1월 9일에 리쉬케쉬로 오라고 그를 불렀다. 바우는 그 스와미의 아쉬람에 들어가기 전에 가족에게 알리고 세속의 모든 짐을 정리하기로 했다.
그 사이 그는 신문에서 메헤르 바바가 나그푸르에 온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는 그 이름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를 기다릴 만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12월 25일 바우는 80마일 떨어져 사는 가족을 만나러 나그푸르를 떠났다. 아내와 딸에 관한 일을 정리한 뒤 바우는 30일에 나그푸르로 돌아왔다. 거기서 그는 다시 신문을 통해 바바가 31일 사오네르에서 다르샨을 베풀 예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메헤르 바바가 이미 왔다가 떠난 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놀랐다. 그는 바바의 프로그램이 연기되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래서 리쉬케쉬로 떠나기 전까지 아직 시간이 남아 있었기에, 사오네르에 가서 바바의 다르샨을 받을까 생각했다. 그가 가끔 찾아가던 누나 니라 가하르와르는 남편과 함께 사오네르에 살고 있었고,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과 아는 사이였다.
각주
- 1.비르 싱은 그의 본명이었지만, 그는 "형제"라는 뜻의 바우라고 불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