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에서의 다르샨은 멋진 자리였고, 1949년 새로운 삶이 시작된 이래 처음으로 스승의 오랜 측근 사랑하는 이들이 그를 친밀하게 접할 기회를 주었다. 고허의 자매 케이티는 새로운 삶이 시작된 때부터 나리만과 아르나바즈의 아파트에 살고 있었고, 수나마시와 코르셰드는 바바가 1923년에 머물렀던 탑티 맨션에 머물고 있었다. 바바는 이 여성들에게 지금처럼 계속 살라고 지시했다.
이 기간에 바바는 바이둘과 함께 봄베이에 있는 디나 탈라티의 집을 방문했다. 그녀에게는 딸 둘과 아들 하나가 있었지만, 그날 집에 있던 것은 딸들 가운데 제루뿐이었다.
바바는 그녀에게 말했다. "머스트 한 사람을 이곳에 데려오고 싶습니다. 방을 준비할 수 있겠습니까?"
바바는 그 방에 별도의 출입구와 전용 욕실이 있어야 한다고 못 박았다. 탈라티 집에서 그런 조건에 맞는 방은 하나뿐이었는데, 온 가족이 모여 바바에게 기도하던 기도 공간이 있는 방이었다.
제루는 그 방을 구석구석 깨끗이 청소했다. 바바는 집안을 둘러보며 그 방으로 옮겨 놓고 싶은 가구들을 골랐다. 제루는 바바가 그녀에게 너무 무겁다고 한 침대를 제외하고는 그것들을 모두 옮겼다. 바바는 다른 가족들이 와서 도와줄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다.
"바이둘이 하루나 이틀 안에 머스트를 데려올 것입니다." 하고 바바가 말했다. "침대가 하나 줄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제루가 말했다. "언니와 제가 같이 쓰면 돼요."
그러나 며칠 뒤 바이둘이 와서 바바의 일은 끝났으며 머스트는 오지 않을 것이라고 제루에게 알렸다.
1944년 바바의 지시에 따라 노리나 마차벨리와 엘리자베스 패터슨은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머틀비치에 영적 센터를 세웠다. 그 센터는 피정처이자 메헤르 바바의 사랑의 메시지를 세상에 전하는 정보의 근원이 되도록 되어 있었다. 몇몇 미국인 사랑하는 이들이 노리나와 엘리자베스를 도왔는데, 그중 중심 인물은 다윈 쇼, 프랭크 이튼, 존 바스였다. 다윈과 그의 가족은 1948년 노리나와 엘리자베스가 인도에 가 있는 동안 1년간 센터를 돌보기 위해 머틀비치로 이사했다.
노리나와 엘리자베스는 미국으로 돌아오자 바바의 방문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바바를 위한 집이 거의 전적으로 트루먼 무어라는 현지 시공업자의 손으로 지어졌고, 여성들을 위한 게스트하우스와 그의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몇 채의 오두막도 함께 세워졌다.1 도로도 나고, 바바가 다르샨을 줄 수 있는 큰 헛간도 그 부지로 옮겨졌다.
각주
- 1.바바는 자기 집이 들어설 부지를 직접 지정했는데, 그곳은 센터에서 가장 높은 지점인 것으로 드러났다. 그의 침실 벽은 사실상 방음이 되도록 두께가 14인치여야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