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기간 동안 어떻게 살고 어떻게 행동할지 지금은 말할 수 없습니다." 바바가 말을 맺었다. "나는 랑고티만 걸친 거의 벌거벗은 모습일 수도 있고 평소 차림을 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루에 네 번 먹을 수도 있고, 며칠씩 계속 금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 어느 것도 의도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할 것입니다."
바바는 아우랑가바드에서 자신의 은둔 작업을 위해 다른 곳으로 갈 것임을 밝혔다.
그는 설명했다. "세 번째 단계가 끝날 무렵이면 내 육체적 상태가 몸이 막 쓰러지기 직전일 만큼 악화되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 경우, 또 어떤 장소에 영적 배경이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이제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고 느끼면, 마지막 단계는 나의 옛 삶과 관련된 장소에서 보내고 싶습니다."
이런 사정에서 바바는 메헤라자드 근처 템비 언덕에 머무르기를 원했다. 그는 아디 시니어와 아디 주니어에게 사로쉬의 도움을 받아, 자신이 1947년에 은둔했던 그 언덕을 확보하도록 온 힘을 다하라고 알렸다. 그 언덕은 정부 소유였고, 그렇게 빨리 허가를 받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사로쉬는 자신의 영향력을 발휘해 일을 성사시켰고, 파드리는 바바가 전에 머물렀던 꼭대기의 오두막들을 수리하기 시작했다.
회의가 끝날 무렵 바바는 이렇게 강조했다. "내가 핌팔곤 언덕에 머무르게 되더라도, 그것은 마노나쉬 기간의 마지막 단계[30일에서 40일 동안 계속되는] 동안뿐일 것입니다. 내가 그곳에 머무른다고 해서 예전처럼 핌팔곤에 정착한다는 뜻으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아디 시니어와 아디 주니어는 11일에 하이데라바드를 떠났다.
바바는 마노나쉬 기간 네 달 동안 자신과 함께 갈 이들로 에루치, 펜두, 바이둘, 구스타지를 택했다. 또 다울랏 싱과 미누 카라스가 처음 석 달 동안 함께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델리의 와스 데오 카인과 키샨 싱은 다섯 가지 종교 상징 모형을 만들라는 요청을 받았다. 불교 사원, 힌두 사원, 기독교 교회, 이슬람 사원, 그리고 배화사원을 상징하는 조로아스터교의 불 화로였다. 전년에 가까운 친구 케샤브 니감에게서 바바에 대해 알게 된 아그라의 마단 모한 아그라왈과 키샨의 친구 아우리 샨카르 베르마의 도움으로, 이 모형들은 아그라에서 설화석고로 조각되어 하이데라바드로 보내졌다.
바바의 옛 삶 추종자들과 헌신자들은 꾸준히 보내지는 회람을 통해 바바의 계획을 알게 되었지만, 언덕에서 일하는 동안과 도보 여행 중에는 바바와 연락하거나 그를 만나려 해서는 안 된다고 엄중히 경고받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