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1년 5월 22일 화요일, 바바는 바이둘, 닐루, 파드리를 대동하고 아디 시니어의 차로 푸나에 갔다. 그곳에서 그는 일곱 명의 머스트를 접촉하고 그날 저녁 마하발레슈와르로 돌아왔다. 그들은 빈드라 하우스에 잠시 들렀지만, 바바는 차에서 내리지 않은 채 앉아서 식사했다.
다음 날은 바바의 100일 은둔의 마지막 날이었고, 그는 "이 은둔은 하나님의 은총으로 내가 만족할 만큼 마무리되었습니다."라고 말했다.
현지 사람들은 바바의 다르샨을 받으려고 계속 아가 칸의 방갈로에 왔지만, 그가 은둔 중이어서 허락하지 않았다. 바바가 곧 떠난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들은 더욱 다르샨을 간절히 원했고, 바바는 자신도 그들의 다르샨을 할 수 있게 해 준다는 조건으로 동의했다. 그들은 그 조건을 받아들였고, 24일에는 많은 사람이 마하발레슈와르의 방갈로로 왔다. 참석자 가운데 특히 저명한 이들로는 상글리와 미라지의 마하라자들이 있었다. 바바는 모든 사람의 발에 손을 대었고, 몇몇 연장자들에게는 축복까지 구했다. 이 노인들이 인간의 모습으로 온 하나님을 축복하는 광경은 참으로 놀라웠다.1
에이지가 적었듯이, "인류를 깨우기 위해 주님은 구도자의 역할을 하고 계셨다. 왕에게나 거지에게나 똑같이 겸손히 절하고, '하나님이 정하신' 다음 단계를 밟을 힘을 얻기 위해 그들의 축복을 구하고 계셨던 것이다!"
1951년 5월 21일, 마하발레슈와르의 짐은 사로쉬가 보낸 트럭 두 대에 실려 하이데라바드로 발송되었고, 펜두와 비슈누가 그들과 동행했다. 나머지 하인 겸 동료들은 기차로 갔고, 바바와 여자들은 25일 아디 시니어가 모는 메헤르지의 차로 떠났다. 여자들의 귀염둥이가 된 작은 말 베굼은, 잘 돌봐 주겠다고 약속한 마하발레슈와르의 어떤 사람에게 보내졌다.
푸나의 빈드라 하우스에 들른 바바는 제사왈라 가족 모두를 만났다. 도시락을 챙긴 바바 일행은 푸나를 떠나 템부르니 닥 방갈로에서 하룻밤 묵었다. 그들은 둘째 날 밤은 날두르그에서 보내고, 5월 27일 일요일 하이데라바드에 도착해 주빌리 힐스의 코히누르 방갈로에 머물렀다.2 아디는 30일에 아흐메드나가르로 돌아가는 기차를 탔다. (메헤르지의 차는 바바가 쓰도록 하이데라바드에 남겨 두기로 했다.) 하이데라바드에 자리를 잡은 뒤, 바바는 펜두에게 모임 준비를 맡겼다. 그 목적을 위해 고 무슬림 왕자 나왑 알리 나와즈 정이 살았던 집(주빌리 힐스 6-2-591)이 임대되었다. 펜두는 초대된 사람들을 위해 푸짐한 식사를 준비하게 하고, 가장 편안한 목욕 시설과 잠자리를 마련했다.
각주
- 1.이때 바바는 파드리에게 사진 촬영을 허락했지만, 그 사진들은 나중에 분실되었다.
- 2.만달리는 같은 부지 안의 별채에 머물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