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지리 마피와 모티추르의 날씨는 꽤 추웠다. 제대로 된 옷과 식사가 부족했고 하루 한 번 달과 차파티만 먹고 지내다 보니, 남녀 동료들의 건강은 서서히 악화되었다. 온갖 질환이 그들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펜두는 흉막염과 가슴 통증이 있었고, 에루치는 요통과 만성으로 굳어 가는 발 염좌가 있었으며, 무를리는 손목 골절에다 노동으로 더 약해졌다. 비슈누는 사람을 불구로 만들 정도의 류머티즘성 무릎 질환이 있었고, 닐루는 물을 나르는 임무 때문에 좌골신경통과 왼쪽 무릎관절 문제를 겪었다. 알로바는 열병, 물동이 나르기, 기타 고된 노동으로 인한 심한 피로 때문에 육체적으로 쇠약해졌고, 카카는 심장 질환이 있었으며, 바이둘은 온몸이 쑤시고 아팠다. 구스타지는 노령과 점점 심해지는 쇠약에 시달렸고, 마니는 열과 기침이 기관지염으로 진행되었으며, 가장 어린 여성인 메헤루도 앓고 있었다. 그런데도 바바는 동료들이, 몸 상태가 엉망일 때조차도, 밝음을 잃지 않고 행복해 보이기를 기대했다!
어느 날 바바는 다음과 같이 받아쓰게 했다(특히 성 프란치스코와 관련하여):
성자들은 왜 성자였습니까? 밝게 지내기 어려울 때에도 밝았고, 참기 어려울 때에도 참았기 때문입니다. 또 가만히 있고 싶을 때 앞으로 나아갔고, 말하고 싶을 때 침묵했으며, 심술궂게 굴고 싶을 때에도 온화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그것은 아주 단순한 일이었고, 앞으로도 언제나 그럴 것입니다.
1950년 4월 13일은 쿰바 멜라에서 가장 중요한 날이었는데, 그날에는 서로 다른 종파에 속한 수십만 명의 사두들과 마하트마들이 행렬을 이루어 갠지스 강으로 가서 그 신성한 물에 몸을 씻기로 되어 있었다. 남녀 동료들은 그 광경을 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바바는 그날 그들이 하르드와르에 머물도록 안배했다. 4월 12일 수요일, 바바는 여성 동료들인 메헤라, 마니, 메헤루, 고허, 나자, 쿠마르의 아내 수바드라, 프레이니 날라발라와 함께 스테이션왜건을 타고 만지리 마피를 떠났다. 수바드라는 갓 태어난 딸 암리트를 데리고 왔지만, 아기가 울면 바바에게 폐가 될까 봐 걱정했다.1 놀랍게도 그 아기는 단 한 번도 울지 않았다. 에루치, 쿠마르, 그리고 마한트의 하인 소년 딜립은 기차로 하르드와르에 갔고, 모두 산사르찬드 고할의 큰 집에 머물렀다.
나머지 동료들과 케키 날라발라, 엘차 미스트리, 부르조르 차차는 다음 날 왔다.
그들이 도착하자 바바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와 여자들은 지난밤에 전혀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밤새 밖에서 엄청난 소란과 소음이 계속되었기 때문입니다."
각주
- 1.쿠마르의 딸 암리트는 훗날 1968년, 바바가 육신을 버리기 한 달 전에 바바의 형제 아디 주니어의 아들 다라와 결혼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