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가벼운 어조로, 바바는 가데카르에게 "구나타이[아내]와 싸웁니까?"라고 물었다.
"절대 아닙니다, 바바. 아내가 저와 싸웁니다!" 그가 우겼다.
"그녀가 당신에게 인내를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은 그녀에게 빚을 지고 있습니다."
신데는 신발 공장과 신발 소매점을 소유하고 있었다.
바바는 신데의 사업에 대해 물은 뒤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내 나자르가 당신 위에 있습니다."
이 만남 뒤 모두는 푸나의 집으로 돌아갔다. 신데의 사업은 점차 번창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도 캄블레 부부에게는 여전히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캄블레는 1952년에 다시 바바를 만나러 왔고, 바바는 그에게 "이제 부모가 되었습니까?"라고 물었다.
캄블레는 슬픈 목소리로 "아니요, 아직 아닙니다, 바바."라고 대답했다.
"나를 믿지 않습니까? 당신은 아이를 갖게 될 것이니, 인내하십시오."
그러고 나서 바바는 그에게 먹으라고 장미꽃잎을 하나 주었다. 2년이 더 흐른 뒤, 캄블레가 1954년 판다르푸르에서 다시 바바를 만났을 때 같은 화제가 다시 나왔다.
바바는 그를 꾸짖었다. "제발 인내하십시오! 왜 그렇게 서두릅니까?"
이 만남 직후 캄블레의 아내 릴라바티가 임신했고, 뒤에 아들을 낳았다. 바바는 그 아이에게 메헤르 프라사드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이리하여 1948년 바바가 가난한 이들에게 프라사드를 나누어 준 뒤, 캄블레 역시 바바의 프라사드를 받게 되었는데, 그것은 7년 후의 일이었다!
람주 압둘라의 온 가족은 수년 동안 바바와 접촉해 왔고, 람주는 가족 문제가 생길 때마다 늘 바바의 조언을 구했다. 람주와 그의 가족은 그보다 2년 전인 1946년에 나식을 떠나 아흐메드나가르로 이사했다. 그에게는 자녀가 여덟 명 있었는데, 아들 여섯, 다두, 박구, 카삼, 알리, 메헤루(메헤르 아흐메드), 이사와 딸 둘, 지부와 마리암이었다.
알리가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때, 람주는 어느 날 그를 제빙공장 방갈로로 바바에게 데려왔다.
바바는 알리에게 "더 공부하고 싶습니까? 대학에 가고 싶습니까?"라고 물었다.
알리가 아니라고 하자, 바바는 "그럼 무엇을 하고 싶습니까?"라고 물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마음이 내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그가 대답했다.
"그렇게 하면 너는 도랑에 빠지게 된다! 내가 말하는 대로 하여라." 바바가 충고했다.
알리는 불평했다. "그렇게 하면 저는 자유를 잃고 아버지처럼 많은 고난을 겪어야 합니다!" 예전에 알리가 형 다두, 박구와 함께 바바에게 갔을 때, 바바는 그들이 영화를 보러 갈 계획이 있을 때면 가끔 그들을 붙들어 놓곤 했다. 이 때문에 알리는 바바를 따른다는 것은 자기의 '독립'을 희생하는 일이라고 믿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