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은 곧바로 돌려보냈지만, 다른 한 사람은 며칠 동안 머물게 했다. 바바는 그를 면도시키고 목욕시키고 먹이고 새 옷을 입혔으며, 아침마다 한 시간, 저녁마다 몇 분씩 그와 작업했다. 그는 2월 3일에 돌려보내졌다.
1948년 1월 30일 금요일, 아흐메드나가르 길을 걷고 있던 한 미친 사람이 핌팔가온으로 데려와졌다. 그를 데려온 사람은 그가 머스트라고 생각했지만, 바바는 그가 그저 미친 사람일 뿐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가 들끓고 있었기에, 바바는 그의 머리를 깎고 목욕을 시킨 뒤 새 옷을 입혔다. 먹인 뒤 바바는 그날 바로 그를 아흐메드나가르로 돌려보냈다.1
1월 30일 아침 바바는 "오늘 아주 중요한 사건이 일어날 것이다."라고 언급했지만, 하루가 평소처럼 흘러가자 모두 그 말을 잊고 말았다.
그러나 그날 밤 정말로 어떤 일이 일어났다...
아디 시니어가 젊은 조수 와만과 함께 뜻밖에도 핌팔가온에 도착했다. 아디는 매일 오후에 오곤 했지만, 그렇게 늦게 온 적은 없었다. 카카와 바이둘, 돈, 비슈누는 그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놀랐고, 카카가 바바에게 알리러 갔다. 바바는 이제 크리슈나 대신 야간 당직을 서고 있던 챠간과 함께 갸라의 오두막에서 아쉬람으로 왔다. 아디는 바바에게 마하트마 간디가 오후 5시 17분에 암살되었다고 알렸다.
바바는 즉시 판에 이렇게 받아쓰게 했다. "간디의 희생과 이타적 봉사로 이어진 정치적 삶 전체는, 마지막 순간까지 뵙기를 갈망했던 하나님에 대한 사랑에서 나온 것이었다!"
엘리자베스의 개 파운디는 사타라에서 앓고 있었다. 바바는 엘리자베스가 우는 것을 보고 이유를 물었다. 그녀는 "파운디가 죽어가고 있어요."라고 대답했다.
바바는 "그 개가 마하트마 간디보다 더 오래 살 것이다."라고 말했다.
바바의 말대로, 파운디는 간디가 총을 맞은 뒤에도 여섯 달을 더 살았다.2
마하트마 간디와 찬지 사이에는 많은 서신이 오갔고, 찬지는 데쉬무크 박사와 함께 간디를 여러 차례 만난 적이 있었다. 간디는 바바를 세 번 만났다. 한 번은 1931년 라지푸타나호에서, 두 번째는 런던에서, 그 뒤 한 번은 봄베이에서였다. 바바는 그에 대해 자주 이야기했고, 국가를 향한 그의 헌신을 사랑하고 높이 평가하며 칭찬했다.
마하트마 간디가 정치 영역에서 자신의 일을 이루는 데 메헤르 바바의 매개체였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간디의 노력으로 인도는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얻었다. 이 점이야말로, 간디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였고 인도가 해방되면 바바에게 합류하겠다고 약속하기까지 했음에도 마지막까지 정치에 남아 있었던 이유였을 것이다.
각주
- 1.몇 주 뒤인 1948년 2월, 바바는 유머러스하게 이렇게 말했다. "길든 암소와 길든 개, 길든 당나귀는 쓸모없을 뿐 아니라 위험하기까지 한 미치광이보다 더 유용하다. 비록 전자는 진화상 매우 낮은 단계에 있고, 후자는 인간으로서 완전히 진화해 있지만 말이다."
- 2.만달리는 또, 여섯 달 전 사타라에서 바바가 에루치에게 1948년 2월은 다사다난한 달이 될 것이라고 한 말을 떠올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