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 1947년 4월 4일 성금요일 오후, 바바는 몇몇 헌신자들의 집을 방문했다. 하리잔들은 수세기 동안 인도의 상층 지배 카스트들에게 시달려 왔고, 바바는 하리잔들과 노동자들 한 무리에게 이 메시지를 전했다.
오늘날 출생과 직업이 반드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차이의 근거라고 믿는 것은, 과거에 살기를 고집하며 현재에 대해서는 죽어 있는 것과 같습니다. 마음과 몸의 청결, 곧 실천적 영성은 어떤 특정 계급이나 신조의 독점이었던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수 없습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열망해야 할 것이며, 남자든 여자든 누구나 얻을 수 있습니다.
상황에서 일어나는 거센 반대에 맞서 이 순수함을 지키려면 고통이 따릅니다. 이 지구상의 어느 나라나 민족이 지닌 영적 위상은 그들이 고통을 감당할 잠재력에 정비례합니다. 고통은 분별 있게 감당되어야 하며, 그 영향은 널리 미쳐야 합니다. 한 나라나 한 민족이 영적인 관점과 삶을 발전시키면, 고통을 감당할 잠재력도 저절로 높아집니다. 인도는 본래 영성의 땅입니다. 그러나 표면적인 차이들이 한동안 그 궁극적 운명을 흐려 놓았습니다.
이기심에 인구가 곱해지면 전쟁과 착취, 박해와 빈곤이 생깁니다. 무아에 인구가 곱해지면 평화와 풍요가 옵니다. 오늘날 세계를 배회하는 현대의 모든 유행은 정치, 경제, 물질주의, 공동체주의, 민족주의, 사회주의의 모습을 띠고 있지만, 모두 이기심이냐 무아이냐의 기준으로 판단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종교적으로 억눌려 있든 정치적으로 압제받고 있든, 경제적으로 착취당하고 있든 산업 현장에서 혹사당하고 있든, 그로 인해 생기는 고통이 여러분의 영적 자격과 지위를 가늠해야 합니다. 인간이 만든 차이들은, 인간이 만든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시대가 변하면 금세 달라집니다. 거대한 전환이 눈앞에 다가와 있습니다. 권리는 회복되어야 하고 또 회복될 것이지만, 책임 역시 짊어져야 합니다.
인간인 것은 참으로 위대하지만, 서로에게 인간다운 사람이 되는 것은 그보다 훨씬 더 위대합니다.
태어남의 꼬리표와 믿음의 표와는 상관없이, 어떤 이유에서든 스스로 억압받고, 낙담하고, 짓눌려 있다고 느끼는 모든 이들에게 나의 축복을 보냅니다!
그날 오후 여러 가까운 이들의 집을 차례로 방문한 뒤, 바바는 삼파트 아이양가르의 딸 락슈미가 운영하는 이른바 "타락한" 여성들과 학대받은 여성 및 소녀들을 위한 시설로 갔다. 그곳에서 락슈미는 금실 자수의 화려한 화환 두 개를 바바에게 걸어 드렸다. 그 뒤 바바는 무달리아르 집을 또 방문하러 갔고, 그곳에서 바바를 위한 아르띠가 거행되었다. 그는 이어 성 띠아가라자의 생애를 바탕으로 한 텔루구 영화가 상영되고 있던 선 극장으로 갔다.1 바바는 잠시 머문 뒤 메헤르 바반으로 돌아갔다.
각주
- 1.띠아가라자(1767–1847)는 인도 고전 카르나틱 음악의 가장 위대한 작곡가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는 평생을 라마 경을 찬양하는 노래를 짓는 데 바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