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 12월 7일 일요일, 파드리는 사로쉬의 차로 바바를 마하발레쉬와르에서 메헤라바드로 모시고 갔다. 바바는 그곳의 사정을 살피고 자신의 머스트들을 보았다. 그들은 푸나를 거쳐 오후 2시 30분에 도착했다. 카카 친초르카르, 사타 가족, 루스톰 카카, 바기라트 등 아흐메드나가르의 바바 연인들이 그날 메헤라바드로 그를 만나러 왔다.
그들과 여러 일을 의논하던 중 바바는 예언적으로 말했다. "아흐메드나가르를 포함해 인도 전역에 혁명이 일어날 것입니다. 나의 현현의 때가 가까워지고 있으므로 나라의 모습이 바뀔 것입니다."
바바는 메헤라바드에 닷새 머물며 모하메드 머스트와 알리 샤와 함께 일했다. 잘 케라왈라가 11일에 와서 이틀 동안 바바를 만났고, 바바는 만달리 각자에게 지시를 내린 뒤 13일에 마하발레쉬와르로 떠났다.
12월 20일까지 머스트 아쉬람의 모든 준비가 끝났지만, 아홉 제자는 제때 전국 각지에서 머스트들을 데려오지 못했다. 그래서 바바는 자신의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 인근 지역의 머스트들을 마하발레쉬와르로 데려오게 했다. 그들과 함께 미친 사람 몇 명과 아주 늙고 궁핍한 중산층 남자 몇 명도 데려왔다. 이렇게 해서 마하발레쉬와르 아쉬람은 머스트, 미친 사람들, 가난한 이들을 위한 세 구역으로 나뉘었고, 각 구역에는 여섯 명씩 있었다. 바바는 그다음 40일 동안 이 남자들과 함께 일했다.
하루 일정은 이러했다. 오전 6시에는 수용자들에게 차를 주었다. 바바의 일은 오전 8시에 시작되었는데, 한 시간 동안 몇몇은 목욕시켜 주고 다른 이들에게는 머리를 깎아 주고 면도해 주며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히는 등의 일을 했다. 그 뒤 바바는 머스트 한 명과 따로 마련된 방에 홀로 앉곤 했다. 그 시간 동안 만달리는 가능한 한 절대적인 침묵이 유지되도록 해야 했다. 오전 11시가 되면 바바는 직접 수용자들에게 점심을 나누어 주었는데, 낮은 걸상에 앉아 그들의 접시에 음식을 떠 담아 주었다. 알리 샤는 첫 사흘 동안 불려 나왔고, 늘 한 시간 먼저 따로 식사를 받았다. 오후 2시에는 차가 나왔고, 오후 5시부터 6시까지는 저녁 식사가 제공되었다.
돈은 늘 바바의 머스트 작업, 곧 바바가 사심 없이 밤낮으로 그 일에 매달리며 때로는 음식과 물도 없이 가장 어려운 조건에서 이 위대한 영혼들을 찾아다니는 모습에 깊이 감명을 받아 왔다. 1946년 가을 영국에서 돌아온 뒤 돈은 이렇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과거 아바타들의 강림 역사에서 이런 일은 기록된 적이 한 번도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