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류하는 동안 바바는 바라그란에서 미세의식의 한 요기를 접촉했다. 그들은 요기의 산중 오두막에서 말없이 만났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간 바바는 은둔 작업에 몰두해 있었다.
라노는 니란잔푸르에서부터 몸이 좋지 않았고, 카트레인에서는 더 쇠약해지고 몸도 더 불편해졌다. 바바는 손수 그녀에게 먹을 것을 먹여 주며 세심하게 돌보았다.
그는 그녀에게 말했다. "내 시중을 들라고 당신을 여기 데려왔는데, 이제는 내가 당신을 돌봐야 하는군!"
"제 불운이지요." 라노가 대답했다.
"불운이 아니다." 바바가 바로잡았다. "당신의 행운이다. 걱정하지 마라."
만디에서 바바는 그녀에게 카레와 밥 한 접시를 먹으라고 했다. 라노는 메스꺼웠지만 그대로 따랐고 나중에 토했다. 돈이 그녀를 진찰해 보니 전염성 간염에 걸려 있었다. 그녀는 외양간 위쪽의 별도 방에 머물게 되었고, 돈이 치료를 시작했다. 돈은 그녀에게 여러 가지 먹음직스러운 것을 먹으라고 하곤 했지만, 바바는 새로 나오는 요구를 하나하나 금했다.
라노는 빨리 호전되었고, 바바는 나중에 이렇게 밝혔다. "내가 그 카레와 밥을 먹으라고 하지 않았더라면 당신은 크게 앓았을 것이다."
1946년 6월 20일 목요일 카트레인을 떠난 바바는 여자들을 데리고 마날리로 갔다가 레이손으로 가서, 그곳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레이손에서 그들은 팔람푸르로 갔는데, 거기서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 염소 한 마리가 바바의 비누를 먹다가 들킨 것이다!
팔람푸르에서 그들은 기차를 타고 사하란푸르로 갔고, 거기서 니란잔푸르로 돌아와 6월 22일에 도착했다.
가니 박사에게는 부양해야 할 아내와 자녀들이 있었지만, 그는 동종요법 진료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고 1946년이 되자 큰 빚에 빠져 있었다. 1940년 그가 방갈로르에서 바바와 함께 머무는 동안, 로나블라의 몇몇 비양심적인 사람들이 그를 거짓으로 살인 사건에 연루시켰다. 사건은 법정으로 넘어가 수년 동안 질질 끌었다. 가니는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변호사들에게 많은 돈을 써야 했고, 그 때문에 상당한 빚을 지게 되었다.
그의 무죄 판결은 예상보다 빨리 내려졌고, 그는 그것을 방갈로르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문제를 바바에게 털어놓았던 그 밤 덕분이라고 여겼다. 그때 바바는 은둔 중이었고 가니는 야간 당번을 서고 있었다.
바바가 그에게 물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느냐?"
가니는 자신에게 제기된 거짓 혐의에 관한 모든 세부를 바바에게 털어놓았다.
바바가 대답했다. "진작 내게 말했어야지. 겁을 먹고 빚까지 질 필요가 어디 있었느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