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슈나는 이해하지 못했고, 바바는 철자판으로 이렇게 말했다. "찬지가 나아서 여기 오면, 당신이 죽게 될 것입니다."
그날 밤 크리슈나도 열이 나서 닐루가 치료를 시작했다. 한편, 최선의 치료에도 찬지는 호전되지 않았다. 1944년 8월 25일 금요일 새벽 5시 30분, 입술에 바바의 이름을 머금은 채 찬지는 세상에는 영원히 눈을 감고, 그분의 순수한 존재 안에 계신 자신의 신성한 비러벳을 뵙기 위해 눈을 떴다! 그는 쉰두 살이었다.
지난 6월 바바가 찬지에게 한 말("당신은 아흐메드나가르와 알라하바드 프로그램에 참석할 수 있습니다. 살아 있기만 하다면!")은 이제 더욱 깊은 의미를 띠게 되었다.
사실 1929년, 바바가 스리나가르에서 하르반 마을로 가는 길에 찬지에게 무심히 말했다. "당신의 무덤은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찬지는 자주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내가 죽게 된다면 카슈미르에서 죽고 싶습니다. 그곳은 너무 아름답습니다." 바바는 그의 소원을 이루어 주었다.
바바는 직접 파르시 묘지에서 열린 찬지의 장례식에 참석해 그의 마지막 남은 유해 위에 꽃을 뿌렸다. 그 후 비석이 세워졌고, 찬지는 바바의 개인 비서로서 인도와 해외를 오가며 정신없이 보낸 20년 끝에 마침내 안식을 얻었다.
여행 중에는 붐비는 삼등 열차 칸 안에서도 찬지는 휴대용 타자기를 들고 다니며 편지와 일기 메모를 타이핑했고, 때로는 밤에도 그렇게 했다. 그토록 성실히 일했지만, 그는 결국 바바가 가장 많이 닦달하는 사람이었고 바바의 희생양 노릇을 하곤 했다. 바바가 그를 뺨 때릴 때면(실제로 그런 일은 아주, 아주 많았다), 찬지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계속하십시오, 바바... 저를 이렇게 대하실 권리가 당신께 있습니다... 당신은 스승이시고, 그럴 권한이 있습니다."
그러나 시대가 알았듯, "이 모든 것은 스승의 학대가 아니라 제자에 대한 그의 깊은 사랑의 표현이었다. 모든 것을 그의 발아래 바친 그 종에게 보인 스승의 겉보기 잔혹함은 사실 자비로운 은혜였다. 학대가 아니었다. 그의 사랑이 쏟아져 나와 마음을 속속들이 적신 것이었다. 찬지와 같은 제자는 참으로 비할 데가 없었다!
"찬지여, 그대에게 경배를 올린다! 시대는 그대가 우리에게 남겨 준 것에 감사한다. 그대가 보존한 메헤르 바바의 신성한 말씀과 일하심의 보화는 그대의 사랑과 제자됨을 기리는 기념이 될 것이다. 그대의 기록은 앞으로 올 세대들 동안 세상에 영감을 줄 것이다! 그대는 자신의 삶으로 다른 이들에게 그분의 축복에 이르는 길을 보여 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