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간 동안 나는 8월에 이상이 실현되고 드러나는 데 너희가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를 일러주겠다. 그런 다음 너희는 각자 있는 곳으로 돌아가 8월 1일부터 8월 30일까지 꼬박 한 달 동안 나와 함께해야 한다.
당연히 너희는 자기 일을 다시 정리하고, 이미 조정해 둔 것을 또다시 조정해야 하는 불편을 겪게 될 것이다. 그러나 크고 작든, 지금이든 앞으로든 온갖 불편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순종하기로 너희가 동의한 이상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요컨대 너희는 5월 15일에 메헤라바드에 와서 엿새[sic] 동안 머물러야 하고, 8월 1일에는 한 달 동안 와 있어야 한다. 메헤라바드에서 그 엿새를 머무는 동안 너희는 내게 아무 질문도 하지 말고, 분명하고 정확할 나의 지시를 들어야 한다.
이 편지를 받았다는 답신을 메헤라바드 주소로 즉시 보내라.
에이지는 이렇게 설명한다. "스승의 계획 변경은 그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필요하고도 유익한 조치였다. 그것은 스승에게 순종할 준비를 갖추고 세속적 집착에 초연해지는 법을 가르치는 교훈이었다. 메헤르 바바의 활동을 둘러싼 불안정 속에서 오히려 내적 안정이 나왔는데, 계획이 끊임없이 바뀐 덕분에 마음은 점점 더 그에게 집중되고 물질세계의 얽매는 속박에는 점점 덜 매이게 되었기 때문이다."
가데카르와 P. N. 림카르는 1943년 4월 3일 토요일 오후 4시부터 8시까지 크리슈나라오와 그의 일행을 데리고 와 바바 앞에서 다시 공연하게 했다. 다음 날 아디 시니어가 바바를 메헤라바드로 모시고 가 그 모임 준비를 시작했다. (돈은 가는 길에 푸나에서 잠깐 그들을 만났다.) 바바의 지시에 따라 펜두는 5일 저녁 메헤라바드에서 바바의 어머니 메모를 기리는 잔치를 마련했다. 6일에는 만달리의 대규모 모임이 열렸다. 바바는 12월 모임에 참석했던 마넥 메타에게 자기 일을 하면서 "자의식적인 우월감이라는 가장 큰 함정"을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데쉬무크는 7일에 바바를 만나 델리, 아그라, 자발푸르 방문 계획을 의논했다. 이튿날 가니와 세일러 마마의 가족이 메헤라바드에서 바바를 만났다.
4월 9일 바바는 카카, 아디 시니어, 구스타지, 바이둘, 찬지와 함께 사로쉬의 차를 타고 머스트들을 접촉하기 위해 푸나, 봄베이, 수라트, 잘가온을 도는 길에 올랐다.1 바바는 자신의 이유로 봄베이 시내에는 발을 디디고 싶어 하지 않았으므로, 반드라에서 쿨라 기차역까지 차로 이동했다.
각주
- 1.펜두와 차간은 그 여정의 일부 구간에 합류했다가, 이어 구자라트와 베나레스로 보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