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케라왈라가 3월 10일 도착해 바바와 자신의 다음 발령지에 대해 상의했다. 바바는 세 가지 가능성을 제시했고, 잘은 그중 하나를 고르기로 되어 있었다. 국내외 정치 정세가 논의되었고, 오후에는 바바가 닐루의 방에 혼자 15분에서 20분가량 앉아 있었다.
11일에는 나그푸르의 술루 메쉬람에게서 온 편지가 도착해 낭독되었다.1
바바는 기분이 좋았고, "이런 헌신자들과 사랑하는 이들은 숭배받아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바바가 마치 기도하듯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는데, 만달리는 그런 모습을 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는 편지를 다시 읽게 한 뒤 이렇게 말했다:
술루는 그토록 깊은 헌신으로 나를 사랑한다는 점에서 나보다 더 위대합니다. 그는 1938년 판치가니에서 나를 단 한 번 보았을 뿐이고, 그 뒤로는 계속 멀리 떨어져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사랑하는 이들은 참으로 위대합니다.
크리슈나는 왜 수다마의 발을 씻고 그 물을 마셨습니까? 수다마의 사랑 때문입니다. 그는 발을 씻은 것이 아니라 수다마의 사랑을 씻었고, 그 물을 마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늘 계시고, 전에도 계셨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위대하고 참된 사랑하는 이들의 존재, 곧 크리슈나에게는 수다마가 그러했고 지금은 술루와 다른 이들이 그러하듯이, 그것이 하나님의 참된 위대함을 드러냅니다. 그들의 사랑의 위대함은, 가난하고 무지한 사랑하는 이가 사실은 스승을 전혀 알지 못하면서도 그 스승에 대한 믿음을 갖게 한다는 데 있습니다. 그러나 굳은 믿음 때문에 그 따르는 이는 스승을 위해서는 자기 목숨까지 내놓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보다 더 위대한 것 아닙니까?
하나님은 그 무한성에 있어서는 언제나 더 위대합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이들이 자신의 유한함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버리고, 사랑하는 님에 대한 사랑과 믿음만으로 자기 목숨까지 희생한다면, 비록 그 님의 참된 본질을 전혀 알지 못한다 해도, 그것은 참으로 더 위대한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의 무한함에도 불구하고, 참된 사랑하는 이들의 사랑과 믿음 속에서 보게 되는 그 무사심의 정신을 인정하여 그 위대함 앞에 머리를 숙이십니다.
하나님은 항상 계십니다. 그분은 늘 계셨습니다. 그분은 영원히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이들과 헌신자들의 위대함은 그들이 하나님과 구루를 사랑하고 숭배한다는 데 있습니다. 당신들[만달리]이 이 소년이나 다른 헌신자들이 경험한 것과 같은 무엇을 느끼지 못한다 해도, 모든 것을 버리고, 나를 알지도 못하면서 오직 사랑 때문에 지금 나와 함께 머물며 봉사하고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당신들의 위대함은 충분히 증명됩니다. 그것은 오직 나만이 보고 알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각주
- 1.술루 메쉬람은 신문 기사를 통해 메헤르 바바에 대해 알게 된 나그푸르 출신의 소년으로, 바바가 "이 길에 맞는 사람이다!"라고 말했던 인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