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힘은 실로 아주 강하고 강력하다. 차이타냐 경은 순례 자체를 위해 순례지를 찾은 것이 아니라, 세속적인 사람들의 생각 산스카라로 가득 찬 그곳의 분위기를 정화하기 위해 갔다.1
내 일에는 셋째 경지의 순례자가 일곱째 경지에 있던 죽은 성인의 성소보다 더 도움이 된다. 그러나 널리 알려진 죽은 성인이나 스승은 그 무덤을 찾아가는 많은 사람들 때문에 강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그런 곳들을 찾아가 이 복잡한 생각의 대기가 미치는 영향을 약화시킨다.
일행이 치슈티의 묘를 떠날 때 바바는 만사리 쪽을 돌아보며 이렇게 구술했다. "어떤 파키르가 일찍이 이렇게 말했다. '내 마음속에서 신성한 아름다움의 인상, 곧 하나님의 모습을 보았을 때, 어디에 눈길을 돌리든 나는 파르와르디가르[무한한 하나님]를 보았다.'"
만사리는 바바가 그 파키르였는지 물었다. 바바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고 했다. 이는 영적 위계의 수장이자 그 시대의 쿠툽-에-이르샤드였던 치슈티를 기려 자신이 이 시구를 즉흥적으로 구술했기 때문이다.
바바는 그보다 앞서 두 차례(1922년과 1935년) 치슈티의 묘를 찾았고, 1939년 아지메르에 머무는 동안에도 여러 번 그곳을 방문했다. 에루치의 회상에 따르면, 어느 날 밤 바바는 홀로 치슈티의 묘에 가서 그 완전한 스승의 무덤 앞에 수천 번 머리를 조아렸다.
미누 카라스는 2월 19일 일요일 카라치에서 바바를 만나러 왔고, 한참 대화를 나눈 뒤 곧 떠났다. 그날 바바는 만달리의 방갈로에서 세 명의 머스트, 곧 소크라테스, 라칸 샤, 모하메드를 모두 목욕시켰고, 카카와 아디 시니어는 차차도 그곳으로 데려오는 데 성공했다. 바바는 그의 발을 씻겨 주고 먹을 것을 주었다. 그러나 다음 날 차차는 바바가 자신을 목욕시키고 머리를 깎아 주려 했던 만달리 방갈로에서 통가 밖으로 내리기를 거부했고, 바바는 대신 그를 여성들의 방갈로로 데려가 그곳에서 먹였다. 23일에는 아무리 설득해도 차차를 데려온 통가에서 내리게 할 수 없었다.
2월 21일 오전 9시, 바바와 아디 시니어는 구스타지와 함께 지역 증류소에서 일하는 그의 형제, 혹은 사촌의 집으로 갔다. 그 남자는 자녀가 열이나 되었고 봉급은 변변치 않았으며, 바바는 그의 어려운 형편을 딱히 여겨 축복해 주었다.
에루치는 23일 저녁 아지메르를 떠나 보팔에서 일행이 머물 준비를 하러 갔다.
각주
- 1.차이타냐 마하프라부(1486~1534)는 "하레 크리슈나, 하레 람!" 구송을 널리 퍼뜨린 힌두교의 완전한 스승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