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그의 사랑에 압도되었고, 메르완지의 위엄을 가장 먼저 알아본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카이쿠쉬루 이라니는 셰리아르지의 형 코다다드의 아들이었다. 그 가족은 봄베이에 살았고, 카이쿠쉬루는 어릴 적부터 메르완과 어울려 놀다가 나중에는 사촌을 크게 존경하게 되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918년 1월 무렵, 한창 젊은 나이였던 카이쿠쉬루가 서른두 살에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카이쿠쉬루는 품행이 바른 청년이었고, 가업에서는 아버지의 오른팔 같은 존재였다. 코다다드와 가족은 깊은 슬픔에 잠겼다.
비보를 들은 보보와 메모는 메르완을 가족 대표로 보내 자신들을 대신해 장례 의식에 참석시키기로 했다. 그는 마지막 의식이 끝나는 나흘 뒤 돌아오기로 되어 있었다. 메르완은 사촌과 가까운 사이였지만, 그는 카이쿠쉬루의 죽음이 비극인 것처럼 반응하지 않았다. 삶과 죽음의 진정한 본질을 알고 있었기에, 메르완은 장례식에서 슬픔이나 비탄을 표현하는 것이 자신에게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장례식에서 통곡하고 우는 관습이 있다는 것도, 그런 감정을 보이지 않으면 삼촌이 상처받을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는 나흘간 이어질 애도 의식이 내키지 않아 이 책임을 피하려 했지만, 부모는 끝내 참석을 고집했다.
메르완은 기차를 타고 봄베이의 친척집으로 갔고, 그곳에는 예상대로 침울한 애도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애써 보았지만, 메르완은 슬픔의 기색을 끝내 드러낼 수 없었다. 다행히 완벽한 방책이 떠올랐다. 돌바닥 위 하얀 수의에 싸인 시신을 본 순간, 메르완은 온몸의 힘을 풀고 눈을 위로 치켜뜬 채 기절한 듯 바닥에 쓰러졌다. 가족은 그가 실신했다고 믿고, 정신을 차리게 하려고 여러 방법을 시도했다. 얼마 뒤 그가 "의식을 되찾자" 사람들은 그를 침대에 눕혔다. 그렇게 그는 장례식 참석을 피할 수 있었다.
조문객들이 돌아왔을 때 코다다드는 메르완을 걱정했다. 메르완은 죽은 아들만큼이나 삼촌에게 소중한 존재였다. 코다다드는 메르완이 겪은 충격을 알고 있었기에, 가장 아끼는 조카를 다음 기차로 푸나에 보내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 메르완은 침울한 분위기에서 벗어나 안도하며, 떠나기 전 친척들에게 애도의 뜻을 전했다.
각주
- 1.가니 박사의 아버지가 같은 부서에서 일했으므로, 잠쉐드의 직위는 그의 도움으로 얻었을 가능성이 높다.
- 2.코르셰드는 쉬린마이의 오빠 딘쇼 마마와 그의 아내 라왓의 딸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