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인상은 그때 자연히 사라진다.
나쁜 짓은 하기가 아주 쉽고, 좋은 일을 하기는 아주 어렵다. 왜 그런가? 나쁜 것이 이미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요점으로 돌아가, 좋은 것이 나쁜 것을 덮는 경우와 나쁜 것이 좋은 것을 덮는 경우, 그리고 둘이 어떻게 함께 사라지는지 두 가지 예를 들어 보겠다. 접시는 더럽다. 비누와 물을 가져와 비누로 때를 덮고 씻어 내면 둘 다 사라진다. 여기서 물은 너 자신이다. 너는 덮어 씌우는 과정에 항상 존재한다. 기름때가 낀 접시를 닦는 인도식 방법은 진흙을 쓰는 것이다. 물이 없어도 깨끗해진다. 기름때와 진흙이 모두 사라진다. 서로 반대되는 것을 덮는 이 과정에서 진흙은 가장 기름기 없는 것이므로 반대에 해당한다. 목적은 둘 다 사라져 접시가 깨끗해지는 데 있다.
좋은 산스카라가 나쁜 산스카라를 덮고 나쁜 산스카라가 좋은 산스카라를 덮으면 둘 다 사라지고, 너의 마음은 아무것도 쓰이지 않은 깨끗한 석판이 된다. 모든 것이 지워진다.
아무것도 너 자신에게는 쓰이지 않고 너의 마음에만 쓰인다. 영혼인 너는 더럽혀지지 않은 채 남는다. 좋은 것과 나쁜 것, 모든 것은 너의 마음에 쓰인다. 인상이 사라지면 모든 것이 지워진다. 마음이 영혼을 본다. 이것이 깨우침이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이 마음에서 지워지면 마음이 영혼을 본다. 그때 마음은 영혼과 하나가 되려 한다. 이것이 깨달음이다.
마음이 영혼을 본다는 것은 네가 신을 본다는 뜻이다. 그러나 마음이 곧 네가 되는 것은 아니다. 너는 신이므로, 마음은 영혼에 합쳐져야 한다. 마음이 영혼에 합쳐지면 너는 신을 실현한다.
기차는 밤이 아주 늦어서야 나브사리에 다가왔다. 역에 들어서기 전에 바바는 갑자기 알파벳 판으로 데사이 가족 각 사람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렀다. 그것은 마치 그들의 삶과 개인적 문제라는 외적 세부로 들어가기 전에, 헤아릴 수 없는 어떤 방식으로 미리 그들에게 인사하는 듯했다.
데사이 가족의 소규모 일행이 기차역에서 그들을 맞았고, 바바는 한 사람씩 껴안았다. 그는 데사이 저택으로 안내되었고, 그곳에서는 나머지 가족들이 그를 만나려고 줄지어 서 있었다. 바바는 병세가 위중한, "소마 데사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유명한 노작가 소랍지의 안부를 물었다. 바바는 다른 일보다 먼저 그의 방으로 안내되었다. 바바는 그 노인을 위로하고 껴안았다. 소랍지 앞에 서 있는 모습은 마치 바바가 그 삶의 마지막 막 위로 베일을 드리운 듯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