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바는 그 말을 달가워하지 않고 라노를 꾸짖었다. "당신은 쓸모없습니다! 분별이 없습니다! 당신의 의무는 내 명령을 이행하는 것입니다!"
바바는 라노가 입을 다문 채 자신의 장단에 맞춰 춤추도록 가르치고 있었다.
때때로 바바는 라노를 놀리며 말하곤 했다. "왜 당신은 어머니만큼 좋지 않습니까? 노니는 아주 다정한데, 왜 더 노니처럼 되지 못합니까?" 이는 모두 라노의 에고를 꺾기 위한 작업의 일부였다.
1937년 8월 21일 토요일, 유명한 미국 소설가 윌리엄 헨리 워너가 바바를 보러 왔다. 그는 말했다. "당신을 만나게 되어 영광이고 특권입니다." 바바도 그를 만나 기쁘다는 뜻을 전했다.
워너가 바바에게 물었다. "오랫동안 사랑의 정확한 정의를 알아내려 애써 왔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바바는 대답했다. "사랑은 어떤 보상도 기대하지 않고 주는 삶을 뜻합니다."
워너는 이 간결한 경구에 감명받았다. 바바는 이어 말했다. "사람은 주고 나서 받아야 합니다. 먼저 주면 모든 것을 얻게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먼저 모든 것을 가지려고 한 다음에야 주는 것을 생각합니다. 이것은 올바른 길이 아닙니다."
칸느에 있는 동안, 노리나가 특별히 바바에게 데려오고 싶어했던 한 사람은 러시아 발레 무용수 바슬라프 니진스키였다. 니진스키는 러시아 발레 흥행사 세르게이 디아길레프(마가렛 크라스케도 함께 일했던)의 수석 무용수였다. 20세기 최고의 유럽 남성 무용수로 여겨졌지만, 니진스키의 경력은 절정에서 비극적으로 꺾였다. 니진스키는 29세에 조현병으로 심하게 고통받다가 은퇴했고, 이후 31년 동안 정신병원을 들락날락하며 지냈다. 노리나는 프랑스로 가는 항해 중에 바바에게 니진스키에 대해 이야기했다. 바바는 니진스키가 몇 달 동안 자신과 함께 지낼 수만 있다면 그의 광기를 고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노리나가 그의 퇴원을 앞당겨 바바에게 데려오기 위해 자신이 일을 추진해도 되는지 묻자, 바바는 "내가 하겠다"라고 답했다.
1937년 8월 21일 노리나는 신문에서 니진스키의 아내가 그를 정신병원에서 데리고 나올 계획이라는 기사를 읽었다. 그러나 니진스키는 결코 메헤르 바바를 만나지 못했다.
그날 8월 21일 늦은 오후, 크리스틴은 5시 20분 기차로 런던으로 떠났다. 그것이 그녀가 바바를 본 마지막이었다. (그녀는 1941년 런던에 대한 독일군 공습 중 사망했다.)
그날 밤, 바바는 만달리, 노리나, 엘리자베스와 함께 카지노를 보러 몬테카를로에 갔다. 그는 변장 차림이었는데 눈부실 만큼 멋져 보였다. 노리나의 망토를 걸치고 메르세데스의 프랑스식 베레모를 쓰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