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아침 마이소르에 도착한 그들은 모던 호텔에 투숙했다. 곧이어 여성 만달리가 머물 적당한 방갈로를 찾으러 나섰다. 적당한 곳을 찾아 임대한 뒤, 바바는 닷새 후 메헤라바드로 돌아갔다. 곧 마이소르 출발 준비가 시작되었다.
1월 22일 굴마이와 그녀의 딸 피로자가 메헤라바드로 호출되었다. 바바는 처음엔 그들이 메헤라바드에 머물길 바랐지만, 며칠 뒤 쿠슈루 쿼터스에 머물라고 했다. 24일 찬지가 하루 일정으로 와서, 바바는 찬지와 비슈누 등과 여행 계획을 상의했다. 28일 마사지는 전보로 보낸 바바의 지시와 달리 나식에서 도착했다. 바바는 격노해 그를 즉시 나식으로 돌려보냈다.
1936년 1월 30일 오전 6시, 바바는 메헤라, 마니, 나자, 코르셰드, 수나마시, 왈루, 인두 수브니스(와만의 딸)와 함께 버스로 푸나로 떠났다. 비슈누와 일부 만달리는 짐을 실은 별도 버스로 앞서 출발했다. 찬지, 차간, 칼레마마, 바우사헤브 메헨다르게, 바기라트는 기차로 푸나에 갔다. 아디 시니어, 펜두, 잘바이, 구스타지는 투카람과 함께 새 포드 자동차로 갔다.1 나머지 만달리는 메헤라바드에 남았다.
늘 그렇듯 남성 만달리는 여성들 가까이 갈 수 없었다. 그래서 푸나에서는 바바가 직접 여성들의 짐을 기차 맨 끝의 예약 객실까지 옮겼다. 모두 푸나를 떠난 뒤 바바는 찬지와 차간에게 매 정차역마다 객실에서 나와 플랫폼에 있으라고 지시했다. 바바에게 필요한 것이 생기면 그들이 곧바로 구해 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31일 밤 7시 15분 마이소르에 도착한 그들은 바니 빌라스 모할라에 있는 B. 라만나 씨 소유의 방갈로로 곧장 갔다. 그 방갈로는 나중에 불경스럽게도 '발라(두통) 방갈로'라고 불렸다. 마이소르에 머무는 동안 남자들은 근처 본티코팔의 쉬리 칸타야 방갈로에 묵었다. 아디 시니어, 펜두, 잘바이는 2일 저녁 늦게 도착했다. 그들은 4일 바바와 함께 유명한 마이소르 동물원에 갔다. 잘바이는 마이소르에 남을 예정이었고, 아디와 펜두는 5일 기차로 메헤라바드로 돌아갔다.
각주
- 1.투카람 캄블레는 과거 메헤르 아쉬람에 있었던 청년으로, 바바의 지도 아래 생활하며 나식에서 운전 훈련을 받았다. 학교 출신의 다른 소년들도 바바와 연락을 유지하며 운전사가 되었는데, 그중에는 바우 치마, 샨카르, 수베다르가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