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자 가브리엘 파스칼은 바바에게 깊이 헌신하게 되었다. 변덕스러운 기질 때문에 많은 고통을 겪었지만, 파스칼은 죽을 때까지 내적으로 연결된 상태를 유지했다. 다른 예술가들과 배우들 역시 바바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고, 그의 방문은 그들 삶의 흐름을 새로운 내적 통로로 이끌었다.
로스앤젤레스에 머무는 동안 라노는 바바가 돌아가는 길에 쓸 수 있도록 갈색 펠트 모자를 선물했다. 떠나기 전 바바는 인도로 데려갈 수 있는 강아지를 구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곧 라노는 개 사육장에서 혈통이 좋은 황갈색 코커 스패니얼을 찾아 바바를 데리고 가 보여 주었다. 바바는 그 강아지를 마음에 들어 하여 35달러에 샀다. 메헤라바드에 이미 '첨(Chum)'이라는 이름의 경비견이 있었기 때문에, 바바는 그 강아지에게 '처미(Chummy)'라는 이름을 붙였다.
살림과 식사를 맡고 있던 루아노는 줄곧 바바와 떨어져 부엌에 머물러야 했다. 그녀는 슬프고 질투가 났으며, 그 일로 자주 울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자기 일을 꼼꼼히 해내려 애썼다. 때로는 부엌에서 홀로 울다가 어깨를 다정히 두드리는 손길을 느끼고 돌아보면 바바가 그곳에 있었다. 그의 손길이 닿으면 그녀의 비참함과 외로움은 모두 녹아내렸다. 바바는 로스앤젤레스를 떠나기 직전 루아노를 위로하며 말했다.
"당신은 싫어하던 일을 충실하고 훌륭하게 해냈습니다. 당신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자기 자신을 위해 해낸 것입니다!"
1935년 1월 7일 월요일 저녁 8시 30분, 바바와 만달리는 '라크(Lark)'라는 기차를 타고 캐나다 밴쿠버로 출발했다. 노리나, 엘리자베스, 나딘, 진, 말콤, 가렛, 민타, 라노, 노니, 루아노 등 영화 작업에 참여한 이들은 할리우드에서 3주 동안 스승과 친밀히 접촉하는 경험을 했다. 그의 출발은 사랑하는 님과의 합일을 갈망하게 만드는 아픔으로 그들의 가슴을 찔렀다.
바바는 페르시아력으로 자신의 생일인 2월 18일까지 일행이 할리우드의 집에서 함께 지내라는 지시를 남겼다. 그 뒤 노니와 라노는 뉴욕으로 돌아가고, 노리나와 엘리자베스, 루아노는 나머지 일행과 함께 캘리포니아에 남으며, 민타는 뉴욕을 거쳐 영국으로 갈 예정이었다.
바바와 만달리는 8일 아침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다. 그는 정차할 때마다 사랑하는 이들에게서 눈물 어린 전보를 받았고, 각각에 답신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에이지는 이렇게 기록했다. "마치 뒤에 남겨진 연인들의 감정이 이별의 슬픔으로 하늘을 물들인 것처럼, 구름과 비가 바바를 맞이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