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5년 1월 2일은 민타의 생일이었고, 닭고기와 아이스크림, 케이크가 나왔다. 바바는 민타에게 스카프를 주었고, 민타는 바바에게 전기면도기를 선물했는데 아디가 그것으로 바바의 면도를 시작했다.
그날 노니를 통해 유명 감독 세실 B. 드밀의 아내가 면담하러 왔고, 픽페어에서 바바를 만난 적 있는 남편이 바바를 다시 만나길 바란다는 뜻을 전했다.1
세실 B. 드밀과 바바의 두 번째 만남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삶의 모방》을 각색한 저명한 시나리오 작가 윌리엄 J. 헐벗(51세)은 4일에 바바를 만나러 왔다.2 헐벗은 세상 속에서 살며 일을 하면서도 동시에 영적으로 살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질문을 말로 풀어내기 어려워했다.
바바는 그의 뜻을 알아차리고 분명히 말했다. "영성을 실제 삶에 적용하는 것을 뜻하는 거죠..."
"네, 바로 그겁니다." 헐벗이 말을 끊었다.
바바가 그를 안심시키며 말했다. "아주 쉽고 아주 단순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 단순함 때문에 매우 어렵습니다."
"정말요? 참 이상하군요!" 헐벗이 말했다.
"하나님과 영성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은 너무 터무니없고 환상적이며 우스꽝스럽습니다!"
"저는 제 가장 높은 이상을 '생명의 실체(Life Substance)'라고 부릅니다. 그것을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부르면 경직된 교회 용어와 교리에 연결되기 때문이고, 제 신념과 이상은 그보다 더 큽니다. 그래서 그것이 무엇이든 저는 '생명의 실체'라고 부릅니다."
바바가 답했다. "이름과 용어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느낌입니다."
"그렇다면 제가 말씀하신 그 느낌을 얻고, 더 깊이 들어가지 않더라도 그것을 언뜻이라도 보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설명하겠습니다. 당신처럼 사회적 위치에 있는 사람이 현대적 이상을 지닌 문명국에서 지금처럼 살면서도 마음을 늘 더 높은 열망으로 향하게 하는 것은 괜찮습니다. 솔직히 말해, 당신은 그것을 의식하지 못할 뿐 이미 영적입니다."
"정말입니까?"
"그렇습니다. 나는 당신이 스스로 아는 것보다 훨씬 더 영적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당신이 할 수 있는 일도 아직 훨씬 많습니다. 그것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그 뒤 바바는 그에게 매일 몇 분 동안 특정한 생각에 집중하라는 지침을 주었다.
같은 날 카레나 쉴즈 양이 바바를 만났다. 그녀는 남부 멕시코의 신비주의적 오컬트 전통을 실천하던 원주민 부족들과 지낸 적이 있는, 총명하고 대담한 젊은 고고학자였다. 헐벗처럼 그녀도 갈등을 느꼈다.
바바가 거듭 말했다. "서방에도 진리를 찾는 진실한 영혼들이 있습니다. 서방에서도 이 모든 것[물질 세계] 뒤에 있는 삶을 향한 각성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물질적 삶과 영적 삶, 이 둘을 조화시키기는 어렵습니다. 나는 당신의 마음을 알고 있으니, 당신이 말한 이런 상황이나 갈등 때문에 실망하지 마십시오.
영성에서는 지성과 외적 삶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느낌과 내면의 체험이 중요하다는 점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당신은 세상에서 살며 모든 의무를 다하면서도 영적일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도망치지도 말고, 자신과 타인에 대한 의무를 회피하지도 마십시오. 세상에서 정당한 의무를 모두 수행하며 살되, 마음은 언제나 목표를 향하게 하십시오. 내면의 삶과 체험을 갈망하면 그것은 반드시 점차 당신에게 올 것입니다."
57세의 할리우드 영화배우이자 연기 교사인 콘스탄스 콜리어가 1935년 1월 6일 일요일 카미노 팔메로의 집으로 바바를 만나러 왔다. 그녀는 시력이 약해지는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바바는 그녀에게 명상을 하나 가르쳐 주며 그것이 육체적으로도 영적으로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가 바바에게 말했다. "저에게는 수백 명의 친구가 있지만, 한 명도 진정한 친구라 부를 수 없습니다. 너무 외롭습니다."
바바가 그녀에게 손짓하며 말했다. "나는 당신의 친구입니다. 진짜 친구입니다."
"네, 당신이 그렇다고 믿습니다. 당신을 알고 난 뒤로는 외롭지 않습니다. 저를 기억해 주세요."
각주
- 1.세실 B. 드밀의 시누이인 윌리엄 드밀 부인은 몇 주 전인 1934년 12월 14일 뉴욕 셸턴 호텔에서 바바를 만났다.
- 2.헐벗은 1920년대 후반 뉴욕에서 노리나를 알고 있었다. 그는 《프랑켄슈타인의 신부》 각본도 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