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바는 팔렌플루(Fallenfluh, "떨어지는 바위")라 불리는 전망 지점이 있는 절벽 끝으로 안내되었다. 그곳에서는 큰 호수 근처의 슈비츠 마을이 내려다보였고, 스위스 중심부 계곡에 펼쳐진 알프스와 농지, 소떼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경관이 보였다. 그 지역은 손대지 않은 야생 숲으로 잘 둘러싸여 있어, 바바는 절대로 방해받지 않고 머물 수 있었다. 바바는 그 장소를 마음에 들어 했고, 그날 저녁 7시에 취리히로 돌아왔다.
바바가 팔렌플루 지역을 점검하러 가 있는 동안 엘리자베스가 도착했다. 그녀는 런던에 남아 있었고, 지난 여러 달 동안 바바를 대신해 영화 관련 일을 처리하느라 겪은 스트레스 끝에 바바를 만나 매우 기뻐했다. 바바 역시 그녀를 만나 기뻐했고, 그녀의 노고를 크게 고마워했다. 두 사람은 영화 재정 문제를 다루며 구체적인 사안들을 오랫동안 논의했다.
논의는 그날 밤 10시 30분까지 이어졌고, 한때 바바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돈 문제에 대한 질문과 이야기에 완전히 질렸습니다! 이제부터는 외부인들의 선물을 받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이것이 심각한 오해를 낳으니, 나는 모든 사람에게 한 푼도 남김없이 갚을 작정입니다!"
바바는 이 점과 관련해 허버트 데이비의 오해를 언급했지만, 허버트는 "사랑스러운 청년이고 [바바에게]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몇 달 전 노리나는 바바의 영화 프로젝트를 논의하려고 파리의 제작자 가브리엘 파스칼에게 연락했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분쟁이 일어났다. 파스칼은 바바가 파리를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고, 바바와 단호하고 분명하게 이야기하기로 마음먹었다. 노리나가 재정 지원과 시나리오 및 대본의 세부 사항을 자주 전보로 바바에게 알렸기 때문에, 그는 끊임없는 오해의 책임을 바바에게 돌렸다.
파스칼은 파리에서 바바를 만나지 못해, 아니타의 화가 친구 로자몬드 와이즈와 함께 취리히로 왔다. 파스칼과 카를 폴뫼러는 1934년 7월 8일 일요일 저녁 바바를 만나기로 되어 있었지만, 그날 아침 바바는 노리나와 엘리자베스에게 파스칼과 카를을 즉시 만나고 싶다고 말해 "판을 흔들어 놓았다." 폴뫼러는 곧 호텔을 나올 수 없었지만, 파스칼은 오겠다고 했다.
바바는 폴뫼러의 태도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카를이 천재일 수는 있지만," 바바가 말했다. "그 없이는 영화를 만들 수 없다고 스스로 생각해서도, 그렇게 생각하게 만들어서도 안 됩니다. 그는 자신의 일에 대해 보수를 받고 있으니, 모든 일이 내 조건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들[파스칼과 폴뫼러]이 내 조건대로 행동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이 구상 전체를 접는 편이 낫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