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지는 경탄했다. "다스투르를 향한 바바의 몸짓이 얼마나 자비로웠던가. 아바타는 그것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들이 자신을 비방하도록 하는 것까지도 기꺼이 허락하신다!"
바바는 1933년 12월 13일 파드리, 베헤람, 나오로지와 함께 메헤라바드에 영화 스튜디오를 세우는 일과, 도착할 유럽인들을 수용할 숙소 건설에 대해 논의했다. 바바는 스튜디오는 메헤라바드에 두고, 필름 현상은 봄베이에서 하며, 서양인들은 아흐메드나가르에 머물게 하자고 제안했다.
잘바이는 17일 바부 칼레와 함께 나식에서 메헤라바드로 왔다. 그날 바바와 만달리는 로어 메헤라바드의 방갈로 뒤에서 테니스공으로 크리켓 경기를 했다. 또한 바바와 만달리는 바바, 노리나, 아디 시니어를 수탁자로 하는 트러스트 설립을 논의했다.
바바가 돌아오자 읍내 사람들과 마을 사람들이 매일 다르샨을 받으러 오는 계기가 되었다. 19일이 되자 다르샨은 목요일 오전 8시부터 11시까지만 한다는 안내판을 세워야 했다.
다음 날 필루 사타와 카카 친초르카르가 바바를 만나러 왔다. 20일 오후 3시, 아디 시니어는 자신의 폰티악으로 바바를 아흐메드나가르의 에어쇼 현장으로 모셨다. 그러나 바바는 오래 머물지 않았다. 그는 무언가에 마음이 상해 아디에게 메헤라바드로 다시 데려가라고 했다.
나발은 1933년 12월 19일 아침, 문시지가 57세의 나이로 나식에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고 바바에게 전보를 보냈다. 문시는 바바가 젊은 시절 카스바 페스의 토디 가게에서 일할 때, 푸나에서 바바와 처음 접촉했던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이었다. 사이예드 사헵은 문시지 밑에서 일한 적이 있어 그와 가까웠고, 문시지에게 메헤르 바바를 알려 준 사람도 바로 그였다. 문시지는 마스터를 깊이 사랑했다.
바바는 나발에게 "그 위대한 노인이 내게 왔소."라고 전보를 보냈다.
사이예드 사헵은 문시지의 죽음으로 깊이 슬퍼했고, 바바는 22일에 그와 나발, 압둘라 자퍼, 람주를 나식에서 메헤라바드로 불렀다.
사이예드가 문시지를 그리워하는 것을 아는 바바는 그를 위로했다. "죽음은 잠과 같소. 잠이 사람에게 필수적이듯 죽음도 삶의 필요한 한 부분이오. 실제로는 아무도 태어나지 않고 아무도 죽지 않소. 이 모든 것은 꿈이오. 그런데 꿈에 무슨 가치가 있겠소?
문시지는 내게 와서 행복하니, 그를 두고 슬퍼하는 것은 옳지 않소. 아니면 문시지의 행복한 상태가 부러워서 그러는 것이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