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인들은 다르샨을 위해 왔을 때 바바에게 칭찬을 받았지만, 만달리는 종종 그들 앞에서 모욕과 굴욕을 당했다. 이것이 바바의 사랑, 곧 그들을 향한 깊은 사랑이었다.
동시에 잠들어 있으면서 깨어 있는 일은 불가능하지만, 스승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어라!"라고 요구했다.
그러니 그의 가까운 만달리가 어떤 종류의 고난과 압박을 겪었는지 거의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1933년 9월 16일 토요일, C. D. 데슈무크와 그의 친척 한 사람이 바바를 만나러 오고 있었다. 그들은 오전 10시에 도착할 예정이었지만 오후 1시가 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지연에 짜증이 난 바바는 찬지와 비슈누에게 화를 내며 "너희는 정말 쓸모없다! 데슈무크에게 길을 제대로 알려줬는지도 의심스럽다."라고 말했다.
찬지는 "정확한 길 안내를 보냈습니다. 다만 큰비 때문에 늦어졌을 가능성은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이 말에 바바는 더 화가 나 두 사람을 꾸짖었다.
그는 몹시 안절부절못하며 "너희가 나를 이렇게 불안하게 만들어서 얻는 게 뭐냐?"라고 물었다.
비슈누와 찬지는 바바가 왜 그렇게 화를 내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바바는 신랄하게 덧붙였다. "이제 나는 데슈무크를 보고 싶지 않다. 그가 오면 가버리라고 해라. 죽게 내버려 둬라!"
잠시 후 바바가 명령했다. "어떻게든 오후 3시 30분까지 데슈무크를 여기로 데려와라."
찬지와 비슈누는 데슈무크가 나식 어디에 머무는지 알지 못했다.
비슈누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바바가 말했다. "다시 생각해 보니 2시 30분까지 그를 여기로 데려와라. 그러지 않으면 데슈무크가 죽을 것이다!"
비슈누는 여전히 데슈무크가 어디 있는지 전혀 몰랐다.
바바는 그를 나무라며 말했다. "왜 여기 앉아 있느냐? 가서 데려와라!"
비슈누는 나가서 나식의 몇몇 브라만 가정을 찾아다니며 데슈무크를 찾으려 했다. 다행히 그는 그 집들 가운데 한 곳에 머물던 데슈무크를 찾아 정확히 오후 2시 30분에 바바에게 데려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다브리 다리의 교통이 전면 중단되었다. 폭우로 홍수가 나면서 다리가 떠내려갈 위험에 처했다. 경찰은 다리로 이어지는 도로에 바리케이드를 설치했다. 데슈무크가 2시 30분에 나타나지 못했다면 바바를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다리가 폐쇄되기 전에 그가 다리를 건널 수 있었던 것은 바바의 나자르 덕분이었다. 그제야 찬지와 비슈누는 데슈무크 도착을 두고 바바가 보인 험악한 기분과 불안의 의미를 깨달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