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지는 이제 바바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그는 마음이 무거웠고 바바를 마주하기가 두려웠다. 바바가 바다 쪽 창도 없는 작고 더운 객실에서 11일 여정을 견뎌야 했기 때문이다. 찬지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끝내 알아내지 못했다. 큰 어려움 끝에, 그리고 승무원과 사무장에게 많은 실랑이를 벌인 끝에(여행 전체를 취소하겠다고 위협하면서), 그들은 바바의 객실을 바깥쪽 객실(339호)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다섯 번째 해외여행에서 바바는 찬지, 펜두, 아디 주니어, 카카, 다두와 함께 증기선 빅토리아호를 타고 봄베이에서 출항했다. 제노바까지의 항해는 끔찍했다. 새로 바꾼 객실도 비좁았고, 만달리는 더 낮은 등급으로 따로 여행하고 있어 그쪽 승객은 바바의 갑판에 올라올 수 없었기 때문에 바바를 자주 볼 수도 없었다. 그래서 바바의 기분은 몹시 언짢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거의 모두가 배멀미를 했다. 객실은 한 사람에게도 비좁았지만, 카카는 항해 내내 바바와 함께 지냈다.
평소처럼 배에는 두세 명의 마하라자가 타고 있었지만, 바바는 아무도 만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알아보이지 않기 위해 바바는 승무원 전용 구역에서 걸었다. 그러나 6월 16일 아덴에 정박했을 때는, 바바가 현지 파르시 연인 몇 사람이 다르샨을 위해 배에 오르는 것을 허락했다. 18일에는 바바가 봄베이의 고위 사법직(프레지던시 치안판사)을 맡고 있던 나나바이 장글왈라를 그의 아내와 아들과 함께 잠시 만났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인 1933년 6월 23일, 바바는 제노바에 도착했고 키티와 민타가 그를 맞았다. 호텔 아스토리아 벨그라노에서 이틀 머문 뒤, 노리나와 엘리자베스, 아니타 데 카로가 도착해 그들을 산타 마르게리타로 데려갔다. 엘리자베스는 포르토피노 중앙 광장 쪽 절벽 꼭대기에서 지중해가 내려다보이는 빌라 알타키아라를 임차해 두었다. 바바와 만달리, 서양인들은 6월 28일 입주했다. 그러나 빌라는 모두를 수용하기에 충분히 크지 않아 산타 마르게리타의 다른 집도 임차했다.
이번 이탈리아 체류 동안 바바는 모두를 바쁘게 했고, 특히 글쓰기와 타이핑 같은 일을 많이 시켰다. 키티와 민타는 집을 준비하려고 일행보다 먼저 포르토피노에 도착해 있었다. 키티가 모든 일을 총괄하기로 되어 있었다. 키티의 오빠 허버트는 7월 4일 중국에서 도착했고, 오토 하스-헤예와 헤디 메르텐스, 그녀의 열다섯 살 딸 안나카타리나 로엘리는 취리히에서 왔다. 에니드는 밀라노에서, 39세의 앨리스 트라우(훗날 피셔)는 비엔나에서 왔다.1 앨리스는 비엔나 국립 오페라 소속 오페라 가수였다. 그녀는 3년 반 전 뉴욕의 차 모임에서 노리나를 만났고, 전년도에 비엔나에서 다시 만난 뒤 정기적으로 서신을 주고받았다. 노리나가 바바에게 그녀 이야기를 했고, 바바가 그녀를 초대하게 했다.
각주
- 1.허버트의 배가 잠시 인도에 기항했다. 그는 1933년 6월 22일 봄베이에서 아디 시니어와 비슈누를 만났는데, 그들은 바바의 지시에 따라 허버트에게 이탈리아로 올 것과, 어떤 상황에서도 바바의 다만(옷자락)을 놓지 말고 절대적으로 복종하라고 설명해야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