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 놓인 일의 압박 때문에 내가 이 몸을 버리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제 여러분은 나와 계속 함께할 것인지 아닌지를 이번에 확실히 결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누가 스승을 버릴 수 있겠는가? 남자들은 바바의 가련한 상태에 마음이 움직여 자신들의 어려움은 잊고, 바바에게 건강을 돌보라고 간청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닥칠 어떤 고난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바바의 비통한 모습은 너무도 극적이어서 만달리는 큰 충격을 받았고, 눈물 속에서 자신들의 결의를 바바에게 전했다.
만달리에게 작별을 고하기 전에 바바는 말했다. "내 앞에는 큰 일이 놓여 있지만, 이 몸이 그 짐을 견딜지 의심스럽습니다. 견디지 못하면 이 몸은 떨어질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나를 마지막으로 보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만달리는 바바에게 절한 뒤 나식으로 떠났다. 여성 만달리도 남성 만달리도 바바가 페르시아에 다녀왔다는 사실을 몰랐고, 바바가 서방으로의 첫 여행으로 영국에 항해하려 한다는 것도 일부러 알려 주지 않았다. 모두 생각에 잠기고 슬픈 마음으로 나식으로 돌아갔으며, 바바의 고통을 보고는 자기들 문제를 그저 잊어버렸다. 앞서 말했듯 그 시절 그들의 음식은 양도 적고 질도 좋지 않았지만, 바바의 상태를 보고 마음 깊이 입은 상처 때문에 자신들의 고통은 잊게 되었다. 이것이 바바가 그토록 비참한 상태인 척했던 이유였다.
이 계략을 꾸민 뒤 바바는 찬지, 마사지, 카림과 함께 찬도르로 떠났다. 그들은 그곳에서 1931년 7월 30일 목요일에 만마드로 이동했다. 그곳에 이틀 머문 뒤 바바는 세컨데라바드를 거쳐 쿠르눌에 도착했다. 쿠르눌에서 바바는 당시 그곳에서 판사로 근무하던 삼팟 아이양가르와 함께 지냈다. 바바는 아무도 만나고 싶어 하지 않았고, 아이양가르의 관사 방갈로에 은거했다. 8월 4일 바바는 수염을 밀었다. 8일에 기차로 쿠르눌을 떠난 바바는 사흘 뒤 오전 9시에 카라치에 도착했다. 마사지와 카림은 허약하고 몸이 좋지 않았으며, 사흘간의 여정은 "지루하고, 피곤하고, 고된" 것이었다고 찬지는 기록했다. "바바는 자주 낙담하고 슬픈 기분이었다."
카라치에서는 나리만이 일행을 맞았다. 잠시 후 찬지의 형제 아스판디아르가 왔고, 모두 두 대의 빅토리아 마차에 나누어 타고 준비된 방갈로로 갔다. 식사는 베일리의 누이 코르셰드가 보내기로 했고, 나리만은 밤에 찬지를 돕기 위해 그들과 함께 머물러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스승의 첫 서방 방문을 위한 준비가 카라치에서 즉시 시작되었다. 바바는 만달리가 자신의 부재 중 겪게 될 어려움을 견디기를 바랐고, 자신의 일을 돕고 자신의 고통을 덜 수만 있다면 그들이 지옥불조차 기꺼이 마주하도록 만들기 위해 그렇게 행동했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