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잘 차려입는 것을 매우 좋아했지만, 바바는 그녀의 소지품을 모두 가져가 딸 코르셰드에게 주었다. 그러나 며칠 뒤 바바는 그것들을 코르셰드에게서도 다시 가져갔다.
그 당시 나식에 살고 있던 바바의 측근들 가운데에는 나발과 디나 탈라티, 람주와 그의 아내 카티자, 카티자의 자매 하자, 그리고 람주의 누이 아미나와 그녀의 남편 압둘라 자퍼가 있었다. 그 여성들은 자주 여성 만달리를 방문하곤 했다. 프레이니와 그녀의 남편 루스톰, 어머니 다울라트마이도 아이들과 함께 나식의 별도 방갈로에서 살고 있었다. 1931년 1월 13일 화요일 저녁, 메헤르 필름 컴퍼니(영화를 제작하기 위해 루스톰이 설립한 회사)의 개막식이 나식에서 음악과 노래와 함께 열렸다.
이틀 뒤 바바는 루스톰, 나발, 칼레마마와 함께 차로 봄베이로 갔다. (찬지와 압둘라 자퍼는 기차로 갔다.) 페수는 1월 17일 그곳에 와서 바바를 만났다. 페수는 오랫동안 바바를 만나지 못했기에, 다시 바바와 함께 있게 된 것을 기뻐하며 가까운 장래에 만달리에 다시 합류하겠다고 약속했다.
1929년 8월 바바가 카슈미르에 있을 때, 카이쿠슈루 마사는 친척들에게 납치되어 봄베이의 자기 집에 감금되어 있었다. 마사는 자신의 모든 재산을 친척들에게 신탁으로 이전하도록 강요받았고, 1년이 지난 뒤(그 기간 동안 신탁 문서에 대한 이의가 제기되지 않았기 때문에) 감금에서 풀려났다. 그의 아내 수나마시와 딸 코르셰드가 봄베이로 가서 그를 나식로 데려왔지만, 마사의 건강은 크게 상해 있었다. 그는 폐렴을 앓고 있었고 계속 의료적 돌봄을 받고 있었다. 필라마이는 그를 간호하는 임무를 맡았다.
바바는 17일 밤 10시에 기차로 봄베이를 떠나 새벽 2시에 나식에 도착했다. 그는 곧장 마사가 머물고 있는 곳으로 가서 마사의 방 밖 베란다에 침구를 펴고 그곳에서 밤을 쉬었다.
바바는 밤중에 자주 일어나 마사를 들여다보며 병든 그를 위로했다. "마사, 걱정하지 마세요. 나는 당신과 함께 있으려고 여기 있습니다. 나를 기억하세요."
다음 날 아침, 바바는 수나마시와 코르셰드를 불러 코르셰드에게 가잘을 부르게 했다. 이렇게 바바는 (옆방에 있던) 마사를 하나님 생각에 머물게 했다. 1931년 1월 18일 일요일 오후 1시에 마사의 영혼은 영원한 평화 속에 영원히 합일했다. 그는 겨우 쉰한 살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