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저녁 바바는 나식의 판두 레나 동굴을 보러 갔다.
그곳을 매우 마음에 들어 한 바바는 "이곳은 소년들이 명상하기에 가장 알맞다"고 말했다.
바바는 루스톰에게 그곳 사용 허가를 받기 위해 행정관을 찾아가 보라고 했다. 하지만 루스톰이 알아보니, 그곳은 행정관의 관할 밖이었다.
다음 날 바바는 나식에서 조금 떨어진 언덕의 성지 두 곳을 더 방문했다. 그중 하나는 자이나교 사원이었고 신탁 재단 소속이라, 명상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었다. 또 다른 성지는 라마 신과 관련된 곳으로, 매우 가파른 언덕 위에 있었다. 전설에 따르면 라마가 현현했을 때 이곳에 머물렀다고 한다. 하지만 올라가는 계단이 없어 오르기에는 위험이 너무 크다고 여겨졌다.
그날 저녁 루스톰은 바바를 강가푸르 폭포로 데려갔다. 그곳에서 루스톰은 바바에게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뜻을 털어놓았다. "영화에 대한 구상이 제 마음에 오래전부터 있었습니다." 그가 말했다. "다다사헵 팔케[영화감독]를 만났는데, 그가 자금 조달을 도와줄 의향이 있습니다.1 제 생각은 영화를 통해 영적 주제를 그려 내는 것입니다. 대중이 지금까지 한 번도 접해 보지 못한 것이지요. 또한 그것은 당신의 가르침을 전 세계에 전하는 최선의 매체가 될 것입니다." 바바는 그 생각을 마음에 들어 하며 그가 추진하도록 허락했다. 루스톰은 크게 고무되었고, 만달리도 그 계획에 들떴다.
나식에서 이틀을 보낸 뒤 바바는 6월 11일 기차로 메헤라바드로 돌아왔다. 도착하자마자 그는 아르데시르 이라니가 페르시아로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그를 길에 올려놓으려 했는데," 바바가 말했다. "그가 떠나 버렸구나. 참 안타까운 운명이로다! 그는 그 길을 갈 운명이 아니었다."
이후 바바는 새 프렘 아쉬람에 있는 네 소년을 찾아갔다. 라오사헵이 몹시 침울한 것을 보고 바바는 이유를 물었다. 라오사헵이 설명했다. "저는 소년들이 당신께 보이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사랑이 있던 아이들이 이제 장난기 많은 악마로 변했습니다! 알리[악바르]가 주동자여서 나머지 셋도 물들게 합니다. 그토록 당신을 사랑하던 소년들이 이제는 당신의 명령을 어깁니다. 당신이 그들을 위해 쏟은 모든 노력을 생각하면 너무나 실망스럽습니다."
바바는 라오사헵을 위로했다. "이것은 사랑의 두 번째 단계다. 그것 때문에 괴로워하지 마라. 이것은 너에게 관용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다. 사랑의 이 단계도 끝나게 된다. 인내하라."
각주
- 1.나식에 살고 있던 다다사헵 G. 팔케(1870~1944)는 인도 영화 산업의 초기 선구자로서 "인도 영화의 아버지"로 인정받고 있다. 바바는 1925년 메헤라바드에서 팔케의 영화 『바스마수르 모히니』를 관람한 바 있다. 팔케의 초기 영화 중 두 편은 라마와 크리슈나의 삶을 그린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