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길은 오직 고난으로만 뒤덮여 있고, 오직 영웅만이 그 길을 걸을 수 있다. 강연하고 철학을 말하는 학자는 많지만, 그 길을 걷는 것은 영웅만이 할 수 있다. 그것은 칼날 위에서 균형을 잡는 것과 같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 나는 너희 가슴에 칼을 찔러 넣으면서도 너희를 살려 두어야 하니, 너희가 울부짖게 된다.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 이것이 우리의 처지다."
퀘타에서 적당한 거처를 찾지 못하자 바바는 루시에게 말했다. "이제 내가 머물 곳도 없는데 네가 여기 사는 게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가족을 데리고 퀘타를 영원히 떠나는 편이 낫겠다."
바바의 무심한 말에는 숨겨진 의미가 있었다. 불행히도, 루시는 몇 년이 지나서야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1929년 5월 23일 목요일 저녁, 바바와 만달리는 기차로 퀘타를 떠나 26일 아침 봄베이에 도착했다. 카카 바리아와 그의 여동생 바누바이, 그리고 그녀의 남편 마넥지 콘펙셔너가 역에서 그들을 맞이하려 기다리고 있었다. 카카는 봄베이 체류 동안 바바가 사용하도록 자신의 차를 제공했다.
바바는 나오로지 다다찬지의 집에 가서 목욕한 뒤 몇몇 방문객에게 다르샨을 베풀었다.1 바바는 또한 부르조르 다히왈라의 집도 방문했다. 필라마이가 그곳에 있었고 바바 일행에 합류했다. 바바는 기차로 봄베이를 떠나 메헤라바드로 갔고, 5월 27일 오전 11시에 도착했다. 그는 18일 동안 약 3,700마일을 이동했다. 또한 바바는 11일 전 퀘타에 도착한 때부터 단식을 계속하고 있었다.
바바가 메헤라바드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알리기 위해 여러 만달리에게 전보가 보내졌다. 필라마이는 이틀 머문 뒤 봄베이로 돌아가라는 지시를 받았다. 라오사헵과 차간은 바바의 조프디(Jhopdi)에서 자라는 지시를 받았다.
1929년 6월 1일 토요일 아침, 바바는 쌀과 달을 조금 먹고 단식을 끝냈다. 그날 카이쿠슈루 마사, 수나마시, 코르셰드, 프레이니, 돌리가 바바를 만났고, 바바는 카이쿠슈루 마사와 그의 개인사를 의논했다.
메헤라바드로 돌아온 직후 어느 날, 바바는 아랑가온 근처의 가족 숙소로 갔다. 바바가 비슈누를 부르자, 비슈누는 맨발로 달려왔다. 짧은 대화 뒤 바바는 비슈누에게 라오사헵을 불러오라고 지시했다.
비슈누가 막 떠나려 하자 바바가 말했다. "맨발로 걷지 말고 내 차팔(chappals)을 신어라."
비슈누는 바바의 샌들을 집어 이마에 댄 뒤, 다시 바바의 발치에 내려놓았다. "스승님," 비슈누가 대답했다. "저는 스승님의 거룩한 차팔을 결코 신을 수 없습니다."
각주
- 1.다다찬지 가족의 자택 주소는 블록 2번, 루스톰 바흐, 빅토리아 로드, 바이쿨라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