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들은 바바의 고통을 덜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바바는 고통을 덜어 달라고 하지 않고, 그들에게 마을을 구경하라고 지시했다. 그들은 바바의 이상한 명령에 크게 당황하며 주저했다. 누구도 이 위중한 상태의 바바를 두고 떠나고 싶지 않았다.
그들의 반응을 본 바바가 말했다. "내 명령에 어긋나는 너희 마음의 감정과 바람을 항상 넘어서는 것을 기억하라. 나는 너희의 마음과 가슴을 산산이 부숴야 한다! 가장 큰 봉사는 나에게 순종하는 것이다. 내 명령에 비하면 너희 생각과 감정은 아무것도 아니다. 내 말을 실행하지 못하면 너희는 나를 섬길 수 없고, 오히려 나를 더 고통스럽게 할 뿐이다."
마지못해 만달리는 강가로 목욕하러 갔고, 바바는 그곳 나무 그늘 아래에서 쉬었다. 개울에서 목욕하고 주변을 둘러본 후, 그들은 돌아왔다. 그 뒤 바바는 그들과 함께 인더스강의 대규모 공사인 수쿠르 배라지(Sukkur Barrage)를 보러 갔다. 늦은 저녁에 돌아왔을 때도 더위는 여전히 매서웠다.
그들은 로흐리에서 퀘타로 출발했다. 기차는 다시 붐볐고, 페수는 객차 안으로 비집고 들어가야 했다.1 페수는 너무 화가 나서 길을 비켜주기를 거부한 다른 승객 중 한 명과 싸울 지경이었다. 바바가 개입하여 페수를 말렸다.
기차가 출발한 뒤 바바는 페수를 꾸짖었다. "다른 이를 정복하려 하지 말고 우리 자신을 정복하려 애써야 한다. 남을 치는 것보다 우리 자신의 분노에 맞서는 편이 더 바람직하다. 성질을 다스리는 것이 진정한 용기이고, 성질에 휘둘리는 것은 순전한 약함이다."
바바가 농담처럼 말했다. "로흐리의 찌는 더위처럼 되지 말고, 퀘타의 서늘한 기후처럼 되어라."
바바와 일행은 5월 18일 토요일 아침에 퀘타에 도착했다. 루시 이라니가 승강장에서 그들을 맞이했고, 지난 다섯 달 동안 퀘타에 머물던 펜두도 나와 있었다. 바바는 루시의 집에 머물렀다. 그곳에는 사랑하는 분의 정원에 핀 두 작은 꽃, 루시의 딸 고허와 케이티가 살고 있었다.
"내가 너희를 보려고 특별히 얼마나 먼 길을 왔는지 아니?" 바바가 그들에게 물었다. "너희는 얼마나 복이 많은지 모른다."
5년 전, 바바의 제자 너버스는 바바가 그 도시를 떠난 뒤 퀘타에서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바바는 떠나기 전에 파르시 묘지에 가서 너버스가 묻힐 자리를 표시해 두었다.
각주
- 1.당시는 순례 시기로, 힌두교도들은 리시케시로, 펀자브인과 무슬림들은 무함마드의 수염 한 올이 보관된 성지가 있는 로흐리로 향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