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7년 이란이었다. 골란둔이라는 이름의 젊은 조로아스터교 임신부는 뱃속의 아이를 위해 살림에 보태고자 손수 짠 털양말과 보닛을 부유한 집안에 팔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늦은 오후였고, 그녀는 해 지기 전에 집에 돌아가려고 서두르고 있었다. 지름길을 택해 좁은 골목을 지나가는데, 한 무슬림이 자신의 집 현관 앞에서 물을 뿌리고 있었다. 골란둔이 그 집 앞을 지나가려 하자, 남자가 소리쳤다. "멈춰라, 카피르(kafir, 이단자)! 너는 이 신성한 곳을 지나갈 수 없다. 그 자리에 서서 물이 증발할 때까지 기다려라. 물방울이 남김없이 마를 때까지 네가 움직이는 것을 허락하지 않겠다."
골란둔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 골목이 마르려면 몇 시간이 더 걸릴 터였고, 저녁은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가 조용히 서 있는 사이 몇몇 무슬림 소년들이 나타나 음탕한 말과 조롱하는 웃음으로 그녀를 놀렸다. 젊은 여인은 눈에 눈물을 머금은 채 서 있었다. 불량배들이 위협하며 다가오자, 그녀는 온 가슴을 다해 하나님께 자신을 지켜달라고 기도했다. 그때 지팡이를 든 나이 많은 무슬림 남자가 우연히 그 골목을 지나가다가 그 젊은 여인의 곤경을 목격했다. "어찌 감히!" 그가 무리에게 호통을 치며 지팡이로 그들을 때렸다. "여기서 썩 꺼져라!" 그런 뒤 그 남자는 겁에 질린 젊은 여인를 달래고 안전하게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할아버지 같은 그 인물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녀에게 평안을 빌어 주었고, 골란둔은 그의 친절한 태도에 위로를 받으며 정중히 감사를 표했다.
골란둔이 이 일을 남편 도랍지에게 이야기하자, 그는 이란에 남아 있는 것이 위험하고 현명하지 못하다는 것을 깨닫고 곧 인도로 이주할 준비를 시작했다. 여행하기에 쉽지 않은 때였다. 골란둔은 임신 중이었고 아직 세 살이 안 된 도울라라는 딸까지 있었다. 그래서 도랍지와 그의 가족이 이란을 떠나 인도로 갈 수 있었던 것은 몇 달이 지난 후였다.
봄베이에 정착한 뒤 골란둔은 1877년 10월 9일경 둘째 딸을 낳았는데, 쉬린(달콤한, 기분 좋은, 또는 온화한이라는 뜻)이라 이름 지은 아름다운 아기였다. 쉬린이 태어난 지 몇 주 후, 가족은 봄베이에서 푸나로 이사했고 도랍지는 작은 찻집을 열었다. 새 터전에 자리를 잡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도랍지는 어느새 주변 사람들과 두루 친분을 쌓았다. 도랍지는 종교적 신심이 있었고 조로아스터교 배화 사원에 정기적으로 참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