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을 닮은 비슈누
1941년 락사르에서 머스트 차티 바바가 기차에 타지 않으려 하자, 비슈누는 "우리가 당신을 고향으로 데려다드리려 하는데, 기차에 타시지 않으면 그럴 수 없습니다"라고 말해 그를 태웠다. 이 이야기를 들은 바바는 웃으며, 키는 작아도 장보기와 여행 준비를 도맡는 비슈누가 나폴레옹을 닮고 나폴레옹처럼 일할 뿐 아니라 머리까지 나폴레옹처럼 돌아간다고 농담했다(『로드 메허』 2209쪽).

Vishnu Master
비슈누 나라얀 데오루카르
장보기·회계·서신 담당, 트러스트 창립 이사
비슈누 나라얀 데오루카르는 '비슈누 마스터'라는 애칭으로 불린 메헤르 바바의 가까운 만달리로, 수십 년 동안 스승을 섬겼다. 1903년 6월 21일에 태어났고, 당시 손꼽히는 교육 기관이던 푸나의 뉴 잉글리시 스쿨에서 공부했다.
『로드 메허』에는 비슈누의 삶이 꽤 자세히 남아 있다. 1918년 푸나 카스바 페트에서 메르완 세트를 만났을 때 그는 아버지를 여읜 열다섯 살 소년이었고, 메르완 세트는 그에게 "이제부터 내가 당신의 아버지입니다"라고 말했다. 메르완 세트가 카쿠바이라고 부른 어머니 사라스와티는 그에게 식사를 지어 주었고, 훗날 메헤라바드에서 지내다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비슈누는 1922년 만질-에-밈 시절부터 늘 바바 곁에 있었고, 아디, 펜두, 파드리와 함께 메헤라바드의 '네 기둥' 가운데 한 사람으로 불렸다(『로드 메허』 206쪽, 4799쪽).
비슈누는 인도 곳곳을 메헤르 바바와 함께 다녔고, 바바는 장보기와 여행 준비를 그에게 맡겼다. 1932년에는 먼저 중국으로 보내진 만달리 가운데 한 사람이었으며, 항저우의 등석여 동상과 동굴 앞에서 다른 만달리와 함께 찍은 사진이 남아 있다. 다만 그는 바바가 중국에 도착하기 전에 나식으로 돌려보내졌다(『로드 메허』 1446쪽). 메헤라바드 초기에는 하즈랏 바바잔 학교에서, 그 뒤에는 바바의 다른 아쉬람 학교들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로드 메허』 570쪽, 786쪽).
바바는 비슈누를 나폴레옹에 빗대어 정답게 놀리기도 했다. 1941년 락사르에서 기차에 타지 않으려던 머스트 차티 바바를 비슈누가 꾀를 내어 태우자, 바바는 웃으며 이렇게 농담했다. "비슈누는 키가 작은데 장보기와 여행 준비에 관한 일은 다 합니다. 하지만 이제 보니 그는 나폴레옹을 닮았을 뿐 아니라 나폴레옹처럼 일하고, 머리까지 나폴레옹처럼 돌아갑니다!"(『로드 메허』 2209쪽) 메헤르 바바 트래블스에는 바바가 비슈누를 전생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라고 했다는 메모가 있지만, 『로드 메허』에는 그런 기록이 없다.
바바를 향한 비슈누의 헌신은 1956년 사타라 자동차 사고에서 가장 극적으로 시험받았다. 사고가 났을 때 그는 에루치, 닐루 박사, 펜두와 함께 메헤르 바바가 탄 차에 타고 있었다. 이 사고로 닐루 박사는 목숨을 잃고 바바는 크게 다쳤지만, 비슈누는 살아남아 스승을 계속 섬겼다.
비슈누는 1962년 5월 13일 푸나의 구루프라사드에서 세상을 떠났다. 구루프라사드는 메헤르 바바가 여름을 보내던 곳으로, 바바의 말년에 중요한 일이 많이 일어난 장소다. 바바가 아직 육신으로 머물던 때였으므로 그는 스승의 곁에서 떠날 수 있었다. 그날 저녁 카왈리 공연이 끝난 뒤 그는 심장마비로 숨을 거두었고, 바바는 그의 시신 곁에 앉아 이렇게 말했다. "지금까지 나는 만달리 누구의 시신 곁에도 오늘 비슈누 곁에 앉듯 앉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는 참으로 복 받은 사람입니다!"(『로드 메허』 4799쪽)
1903년 6월 21일 인도에서 나라야나 '카카바이' 데오루카르와 카쿠바이의 아들로 태어남
다른 만달리와 함께 먼저 중국으로 보내져 항저우의 등석여 동상 앞에서 사진을 남김. 바바가 도착하기 전 나식으로 돌려보내짐 (『로드 메허』 1446쪽)
사타라 자동차 사고 때 에루치, 닐루 박사, 펜두와 함께 바바가 탄 차에 있었음. 닐루 박사는 이 사고로 세상을 떠남
1962년 5월 13일 저녁 푸나의 구루프라사드에서 카왈리 공연이 끝난 뒤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남. 바바가 그의 시신 곁에 앉아 있었음 (『로드 메허』 4798~4799쪽)
“이제 당신도 루스톰 편을 들고 있습니다. 파드리와 펜두는 전생에서 그와 인연이 있기 때문에 루스톰의 오랜 친구입니다. 그런데 왜 당신도 그 구덩이에 빠지려 합니까?
(1928년 6월 18일 토카. 바바는 만달리 사이의 가까운 우정이 편애를 낳는다며 원치 않았고, 루스톰 문제로 비슈누를 엄하게 꾸짖었다.)
“오늘 나를 위해 달을 준비하다 손가락을 데었으니, 언젠가 내가 여러분을 어떤 존재로 만들어 주어야 할 의무를 지게 되었습니다.
(1929년 8월, 카슈미르에서 돌아오는 버스 여행 중이었다. 바바가 심하게 흔들리는 뒤칸에서 달을 끓이라고 하자, 람주와 비슈누는 등유 스토브에서 요리하다 손을 데었다.)
“이것이 여러분의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입니다. 여러분은 며칠 동안 이 프라사드를 원했고, 오늘 내가 그것을 여러분에게 주었습니다!
(1932년 2월 나식. 다스투르의 부탁을 받은 페람이 작업장에서 한 소년이 해고된 이유를 묻자, 비슈누와 부아사헵이 그 일을 바바에게 물으러 갔다. 바바는 샌들을 벗어 두 사람을 때렸다.)
“다시 생각해 보니 2시 30분까지 그를 여기로 데려오십시오. 그러지 않으면 데쉬무크가 죽을 것입니다! … 왜 여기 앉아 있습니까? 가서 데려오십시오!
(1933년 9월 16일 나식. C. D. 데쉬무크가 몇 시간째 오지 않자, 바바는 이제 그를 보고 싶지 않다고 하더니 곧 비슈누에게 그를 데려오라고 명령했다. 데쉬무크가 어디 머무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이 손실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이익을 가져다주었는지 당신이 어찌 알겠습니까? 당신의 일은 내가 시키는 대로 계속하는 것입니다!
(1942년 7월 데라둔. 바바의 지시로 저장해 둔 곡물을 손해를 보고 팔게 되자, 회계를 맡은 비슈누가 큰 손해를 봤다고 바바에게 말했다.)
“여성들이 이 물을 마시는데, 당신들은 왜 마시지 않습니까? 이것은 내 명령에 대한 불복종이니, 당신들 둘 다 벌로 바닥에 코를 문질러야 합니다.
(1950년 3월, 새로운 삶 기간 중 만지리 마피. 비슈누와 닐루는 비 때문에 냄새가 난다며 새로 판 우물의 물을 마시지 않고 다른 우물에서 물을 길어 왔다.)
“당신이 하나님이 문으로 다가오는 것을 보았더라도, 문을 닫았어야지 들어오기를 기다리지 말았어야 합니다. … 내가 갑자기 화를 냈는데, 그건 좋지 않습니다.
(1950년 10월, 새로운 삶 기간 중 마하발레슈와르에서 약 200명의 사랑하는 이들이 모인 회합. 비슈누가 구스타지가 오는 것을 보고 대문을 늦게 닫는 사이, 초대받지 않은 두 사람이 들어와 바바의 발을 만졌다. 바바는 꾸짖고 나서 곧바로 자신을 돌아보았다.)
“나는 지고지상의 존재이며, 여러분 자신과 인류의 선을 위해 여러분의 수준으로 내려왔습니다. 하나님 자신의 현존 속에서 지내고 있으면서도, 여러분은 아직 기본적인 규율과 존중조차 갖추지 못했습니다. … 수천 마일 떨어진 곳에서 사람들이 내 다르샨을 받으러 오는데, 나와 함께 있으면서도 여러분은 이렇게 불경하고 무례합니다! 다음에는 그런 행동을 용서하지 않겠습니다.
(1955년 11월 18일, 사하바스 그룹들 사이의 메헤라바드. 일에 바빴던 만달리 열한 명이 바바가 도착했을 때 홀에 나오지 않았다. 바바는 펜두, 파드리, 비슈누, 바우, 알로바를 따로 지목해 엄하게 질책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돈은 왔다가 갑니다. 내가 은둔을 끝내게 두세요. 그때 가서 봅시다. … 그 일은 잊으세요. 나에게 계획이 있습니다. 나는 1년 동안 엄격한 은둔에 들어갈 것입니다.
(1955년 11월 메헤라바드의 사하바스. 바바는 회계 담당 비슈누가 사타라 은둔 전과 후에 다음 달 경비가 없다며 찾아왔던 일과 그때마다 자신이 한 대답을 모인 이들에게 이야기했다.)
“비슈누, 당신은 어릴 때부터 나와 함께해 왔습니다. 나에 대한 당신의 사랑에 비하면 3,000루피의 적자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설령 적자가 300크로르[30억] 루피라 해도, 당신의 사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 일은 걱정하지 말고 완전히 잊어버리십시오.
(1958년 2월 메헤라바드의 사하바스. 안드라 그룹의 귀로를 위한 특별 열차에 승객이 모자라 3,000루피가량의 적자가 나자, 책임을 맡은 비슈누가 걱정으로 떨며 길가에서 바바를 맞았다. 바바는 그에게 한 말을 나중에 모인 이들에게 전했다.)
1941년 락사르에서 머스트 차티 바바가 기차에 타지 않으려 하자, 비슈누는 "우리가 당신을 고향으로 데려다드리려 하는데, 기차에 타시지 않으면 그럴 수 없습니다"라고 말해 그를 태웠다. 이 이야기를 들은 바바는 웃으며, 키는 작아도 장보기와 여행 준비를 도맡는 비슈누가 나폴레옹을 닮고 나폴레옹처럼 일할 뿐 아니라 머리까지 나폴레옹처럼 돌아간다고 농담했다(『로드 메허』 2209쪽).
1956년 큰 사고가 났을 때 비슈누는 바바, 에루치, 닐루 박사, 펜두와 함께 차에 타고 있었다. 닐루 박사는 목숨을 잃었지만 비슈누는 살아남아 그 뒤로 5년 반 동안 바바를 섬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