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왈루 파와르

왈루 파와르

Walu Pawar

왈루 바우 파와르

아랑가온 출신, 바바의 옷 세탁과 방 청소 담당

“왈루바이(Valu로도 표기)”

1900년 ~ 1973년 9월 1일

전기

왈루 바우 파와르는 메헤라바드 기슭의 마을 아랑가온 출신의 마라타 여성이다. 땅을 가진 마을 상류층 집안의 딸이었고, 메헤라가 처음 만났을 때는 목과 손목에 화려한 금 장신구를 두르고 있었다. 1925년 왈루는 메헤르 바바에게 강하게 이끌렸다. 바바를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의 영적 인도에 귀의했고, 가진 물건과 재산을 모두 바바에게 바쳤다. 남편은 결혼 초에 세상을 떠났고 그녀는 재혼하지 않았으며, 딸 하나를 두었다.

왈루는 계속 아랑가온에 살았지만, 날마다 메헤라바드의 우체국 숙소에 와서 여성 만달리와 함께 지낼 수 있도록 허락받았다. 그녀는 바크리를 굽고, 메헤라를 도와 바바의 시중을 들었으며, 1925년부터 바바의 옷을 빨고 방을 청소했다. 1927년 6월 1일 바바는 그녀의 딸 결혼식에 참석하러 아랑가온에 가서 이렇게 말했다. "왈루가 나를 사랑하고 헌신하기에 오늘 이 결혼식에 참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로드 메허』는 그녀가 바바의 가까운 여성 만달리에 들어간 유일한 아랑가온 여성이었다고 기록한다.

1920년대 후반과 1930년대에 왈루는 메헤라바드와 나식에서 여성 아쉬람의 생활을 함께했다. 1933년 12월 바바가 메헤라바드 언덕으로 오르는 길에 그늘나무가 있으면 좋겠다고 말하자, 그녀는 바로 그날 묘목을 심기 시작했고 먼 곳에서 어깨에 물을 지고 와 나무를 살렸다. 그 나무들 가운데 일부는 지금도 그 길가에 서 있다. 바바는 뒷날 언덕 위 자신의 오두막은 왈루만 청소하라고 지시했다. 부유한 집안 출신이면서도 그녀는 깊이 겸손했고 온갖 허드렛일을 온 마음으로 했다.

1937년 그녀는 바바와 여성들을 따라 프랑스에 가서 칸의 빌라 칼다나에 머물렀다. 1938년 11월 19일 마른 풀을 태우다가 사리에 불이 붙어 다리에 큰 화상을 입었다. 파드리와 칼라브케르 박사가 그녀를 남겨 두자고 권하자 바바는 단호히 답했다. "아닙니다, 우리 모두 함께 출발해야 합니다. 마야가 내 길을 가로막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됩니다!" 1938년 12월 8일 시작된 블루 버스 여행 동안 그녀는 부축을 받아 버스를 오르내려야 했고, 라노 게일리가 날마다 상처를 소독하고 붕대를 갈았다.

1940년대에 왈루는 핌팔가온(뒷날의 메헤라자드)에서 바바와 함께 지낸 소수의 여성 가운데 하나였고, 1948년 9월 16일 바바가 메헤라자드로 옮겨 와 살기 시작할 때 함께한 여성 가운데 하나였다. 새로운 삶 기간에는 푸나의 빈드라 하우스에 머물렀으나 바바와 떨어져 지내는 것을 몹시 괴로워했고, 1950년 3월 18일 아랑가온의 집으로 돌아갔다. 만년에는 아랑가온 근처의 가족 숙소에서 지냈다. 왈루는 메헤라바드에 머물며 바바를 섬긴 만달리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왈루는 1973년 9월 1일 세상을 떠났고, 친척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아랑가온에서 화장되었다.

사진 갤러리(17 장)

생애 연표

1925

메헤르 바바에게 이끌려 모든 소유물과 재산을 바침. 날마다 우체국 숙소의 여성 만달리에게 오도록 허락받아 바크리를 굽고 메헤라를 도우며 바바의 옷을 빨기 시작

1927

6월 1일: 바바가 왈루의 사랑과 헌신 때문에 아랑가온에서 열린 그녀의 딸 결혼식에 참석

1933

12월: 그늘나무가 있으면 좋겠다는 바바의 말에 메헤라바드 언덕길 양쪽에 묘목을 심고 먼 곳에서 물을 길어 와 살림

1935

7월 중순: 바바의 은둔 오두막 문을 실수로 열었다가 그의 시선에 압도되어 사흘간 앞을 보지 못함. 굴마이의 간청에 바바가 시력을 회복시킴

1937

바바와 여성 만달리를 따라 프랑스로 가서 칸의 빌라 칼다나에 머묾

1938

11월 19일 사리에 불이 붙어 큰 화상을 입음. 바바는 12월 8일 출발하는 블루 버스 여행에 그녀도 함께 가야 한다고 고집함

1940

2월: 바바의 한 주 은둔 동안 여성 가운데 수나마시와 왈루만 머스트 아쉬람의 정해진 경계까지 올 수 있었고, 바바의 차는 왈루 편에 보내도록 정해짐

1943

빌라르에서 뱀을 막으려 풀을 태우다 풀불에 갇혀 바바의 이름을 외쳤고, 아무 상처 없이 무사함

1944

메헤라, 마니, 메헤루, 마가렛과 함께 바바가 핌팔가온(뒷날의 메헤라자드)에 곁에 둔 여성 가운데 하나가 됨

1948

9월 16일: 바바, 메헤라, 마니, 메헤루, 고허 등과 함께 메헤라자드에서 살기 시작함

1949

9월 28일: 새로운 삶을 앞두고 바바가 왈루를 푸나 빈드라 하우스의 파파 제사왈라와 가이마이 제사왈라에게 맡김

1950

3월 18일: 새로운 삶 기간에 바바와 떨어진 괴로움으로 푸나의 빈드라 하우스를 떠나 아랑가온의 집으로 돌아감

1973

9월 1일: 세상을 떠나 아랑가온에서 화장됨

말씀

“

왈루가 내게 보여준 사랑과 헌신 때문에 오늘 이 결혼식에 참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1927년 6월 1일, 왈루의 딸 결혼식을 마치고 아랑가온을 떠나며)

“

나는 만달리 숙소에 가려고 매일 두 번 언덕을 내려가고 다시 두 번 올라와야 합니다. 길가에 그늘나무가 줄지어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메헤라바드에서 왈루에게. 『로드 메허』는 1933년 12월의 일로 기록한다. 그녀는 바로 그날 지금도 언덕길에 늘어선 나무들을 심기 시작했다)

“

언덕 위 바바의 오두막은 왈루만 청소해야 합니다.

(1938년 8월 29일, 바바가 메헤라바드 언덕의 여성들에게 정해 준 규칙 가운데 하나)

“

아닙니다, 우리 모두 함께 출발해야 합니다. 마야가 내 길을 가로막는 일은 허용해서는 안 됩니다!

(1938년 11월, 파드리와 칼라브케르 박사가 심한 화상을 입은 왈루를 블루 버스 여행에 데려가지 말라고 권하자)

“

[수나]마시와 왈루를 제외하고는 여성 그룹 누구도 머스트 아쉬람에 와서는 안 됩니다. 이 두 사람은 그들에게 보여 줄 정해진 한계선까지만 올 수 있습니다.

(1940년 2월 23일부터 한 주 동안 이어진 바바의 은둔에 관한 지시. 바바의 차도 왈루 편에 보내도록 했다)

“

나의 일을 위해 나는 메헤라, 마니, 메헤루, 마가렛, 왈루와 함께 핌팔가온에 머물러야 합니다. 나의 일을 돕기 위해 나머지 여러분은 메헤라바드에 계속 머무르십시오.

(1943년 11월 30일 핌팔가온(뒷날의 메헤라자드)을 둘러본 뒤 여성들에게)

“

솔툰과 도울라를 당신들 가족의 일원처럼 데리고 있으십시오. 왈루도 같은 식으로 돌보십시오. 이 책임을 당신들에게 맡기니, 그것을 수행하는 것이 곧 나를 섬기는 일입니다.

(1949년 9월 28일 새로운 삶을 앞두고 푸나의 빈드라 하우스에서 파파 제사왈라와 가이마이 제사왈라에게)

주요 이야기

메헤라바드 언덕의 그늘나무

1933년 12월 바바는 왈루에게, 하루 두 번 언덕을 내려가 만달리 숙소에 가고 다시 두 번 올라와야 하니 길가에 그늘나무가 늘어서 있으면 참 좋겠다고 말했다. 그녀는 바로 그날 좁은 흙길 양쪽에 묘목을 심기 시작했다. 물이 귀했기에 먼 곳에서 어깨에 지고 날랐다. 『로드 메허』는 그 나무들 가운데 일부가 지금도 메헤라바드 언덕길에 늘어서 모든 순례자에게 그늘을 준다고 적고 있다.

닫힌 오두막 문

1935년 7월 중순, 왈루는 바바의 음식 쟁반을 들고 은둔 오두막에 갔다가 문이 닫혀 있는 것을 보았다. 바람에 닫힌 줄 알고 문을 밀어 열었다. 내면의 일에 몰두해 있던 바바가 고개를 들어 그녀를 응시했고, 그 시선이 그녀를 압도했다. 눈이 아프고 충혈되더니 사흘 동안 앞을 보지 못했다. 굴마이가 바바에게 그녀의 실수를 용서해 달라고 간청하자 시력이 돌아왔고, 그 뒤로 왈루는 바바의 지시를 한 치도 어기지 않으려 매우 조심했다.

"우리 모두 함께 출발해야 합니다"

1938년 12월 블루 버스 여행을 앞두고 왈루의 다리가 심하게 데었고 상처가 곪았다. 파드리와 칼라브케르 박사는 그녀를 데려가는 것은 좋지 않다고 바바에게 말했지만, 바바는 이렇게 답했다. "아닙니다, 우리 모두 함께 출발해야 합니다. 마야가 내 길을 가로막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됩니다!" 왈루는 부축을 받아 버스를 오르내렸고, 바바는 그녀의 붕대와 약을 라노 게일리에게 맡겼다. 피만 보아도 질색하던 라노는 바바에게 순종하여 날마다 왈루의 화상을 씻고 붕대를 갈았다.

풀불 속에서도 무사하다

1943년 빌라르의 여성용 방갈로는 사방이 키 큰 풀로 둘러싸여 있었고, 왈루는 뱀이 가까이 오지 못하게 그 풀을 베어 태우곤 했다. 어느 날 그러고 있는데 거센 회오리바람이 불어 풀에 불이 붙었다. 꼼짝 못하게 갇힌 왈루는 바바의 이름을 외쳤다. 여성들이 달려와 불을 껐고, 왈루는 불길 한가운데 있었는데도 아무 상처도 입지 않았다. 『로드 메허』는 이를 바바의 나자르 덕분이라고 적고 있다.

바바를 보려고 걸어간 15마일

마노나쉬 은둔이 끝난 뒤, 다시 아랑가온에 살던 왈루는 바바를 보고 싶은 마음을 누를 수 없어 핌팔가온(메헤라자드)까지 15마일 길을 내내 걸어가 은둔 언덕 맞은편 언덕 근처에 숨어 있었다. 길을 따라 걸어오는 바바를 보자 그녀는 달려가 그의 발 앞에 엎드려 울부짖었다. "바바, 당신 없이는 살 수 없어요! 제발 여기 머물게 해 주세요!" 바바는 다정하게 달랬지만 그녀가 진정하지 않자 마침내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쳤다. 그녀는 뒷날 이렇게 말했다. "몸에 전기 충격이 흐르는 것 같았어요. 핌팔가온에서 바바와 함께 머물고 싶던 마음이 사라졌지요." 바바는 그녀를 아랑가온으로 돌려보내며 다시는 메헤라자드에 오지 말라고 했고, 자신의 사진 한 장을 주며 언제나 함께하겠다고 약속했다. 집에 돌아온 그녀는 사진 속에서 바바의 모습을 보기 시작했고, 더는 혼자가 아니라고 느꼈다(『메헤라-메헤르』 2권 564쪽).

우르두어 대신 마라티어로

1939년 말 방갈로르에서 바바는 여성들에게 연극을 올리게 했고, 크리스마스와 새해 전야 무렵에는 그룹마다 짧은 촌극을 공연했다. 어느 촌극에서 왈루는 무슬림으로 분장했는데, 나자가 의상을 제대로 손봐 주지 않아 무대에 나가기 직전 왈루가 화가 났다. 왈루는 등장했을 때 너무 화가 난 나머지, 배운 대로 우르두어로 말하는 대신 마라티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로드 메허』는 이 또한 바바에게 즐거움의 원천이었다고 적고 있다.

외부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