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명이 슬램슨인 아르데시르 N. 한소티아는 1899년에 태어났으며, 메헤르 바바의 가장 초기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인 구스타지 한소티아의 동생이다. 아버지는 누세르완지, 어머니는 비카이지였고, 호미와 소랍 한소티아도 형제였다. 구스타지처럼 슬램슨도 사이 바바, 우파스니 마하라지와 인연이 있었고, 1918년 무렵 푸나에서 젊은 메르완 세트의 가까운 동료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다.
1919년 무렵 슬램슨은 구스타지, 너버스와 함께 푸나 카스바 페트의 야자술 가게에서 일하며 가게를 운영했고, 메르완이 그들의 일을 살폈다. 1922년 바바가 봄베이에 만질-에-밈을 열었을 때 집을 여러 방으로 나누는 목공 공사가 슬램슨의 감독 아래 이루어졌고, 그는 나중에 바바가 제자들에게 운영하게 한 파렐의 제분소에서 관리자를 맡았다. 1923년에는 공식 별명을 가진 다섯 거주자, 곧 아스마, 바이둘, 너버스, 슬램슨, 바솝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1923년 슬램슨은 훗날 메헤라바드가 된 아랑가온에서 바바와 함께 지낸 열네 명 가운데 한 사람이었고, 그해의 여정을 함께했다. 그는 여행 준비를 맡았고, 아마다바드에서 걸어서 떠나자는 구스타지의 제안에 유일하게 찬성했으며, 그곳에서 일행이 묵을 파르시 다람살라를 마련했다. 10월에는 봄베이에서 사코리 쪽으로 걸어간 바바의 도보 여행에 함께했으며, 다른 이들이 사코리로 떠날 때 바블레슈와르에 바바와 함께 남았고, 계획된 페르시아 여행에 바바를 수행할 열한 명 가운데 한 사람으로 뽑혀 그해 11월 신드를 거쳐 카라치까지 바바와 함께 갔다.
슬램슨은 여러 해 동안 만달리와 함께 살았다. 1928년에도 메헤라바드에 머물다가 1929년 1월 인도르의 집으로 돌아갔는데, 그해 7월 바바 일행이 인도르에 이르렀을 때 마침 길을 건너다 그들을 만나 묵을 곳으로 안내했다. 1943년과 1944년에는 구스타지와 함께 메헤라바드와 핌팔가온에서 다시 바바와 함께 지냈다.
그는 인도르에서 머스트와 관련된 바바의 일을 도왔다. 마노나쉬 시기인 1951년 12월과 1952년 1월에 그는 머스트들을 아흐메드나가르로 데려왔는데, 그중 머스트 성자 비샨다스 마하라지는 메헤라자드에 머물렀다. 구스타지가 세상을 떠난 뒤인 1957년 11월 30일 바바는 메헤라자드에서 구스타지의 유품 일부를 슬램슨에게 주었다. 1958년 메헤라바드 사하바스에서 바바는 고 구스타지의 형제인 호미와 슬램슨을 소개하며 "이 사하바스에 온 사람들을 소개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들을 아는 것은 오직 나뿐입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