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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노 게일리

라노 게일리

Rano Gayley

마들렌 E. '메라노' 게일리

미국인 화가, 바바의 지도로 그린 영적 그림, 트러스트 이사

1902년 7월 6일 ~ 1986년 12월 5일
미국 → 인도 메헤라자드
서양인 제자예술가가까운 여성 만달리영구히 머문 유일한 서양 여성

직업

예술가 (뉴욕의 직물 디자이너)

전기

라노 게일리는 인도에서 바바와 영구히 함께 산 유일한 서양 여성으로서 메헤르 바바의 만달리 가운데 특별한 자리를 차지한다. 뉴욕에서 직물 디자이너로 일하던 미국인 예술가 라노는 바바의 초기 서양 제자가 되어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바바에게 바쳤다.

라노와 바바의 인연은 1932년 여름 파리에서 시작되었다. 친구 루아노를 방문 중이던 라노와 어머니 노니에게 퀜틴이 바바 이야기를 들려준 것이다. 바바의 사진을 본 노니는 1932년 5월 신문에서 본 얼굴임을 알아보았다. 1933년 라노와 어머니는 바바를 처음 만나러 런던으로 갔다. 라노는 훗날 그 순간을 이렇게 회상했다. '제 평생 그토록 아름다운 분은 본 적이 없었습니다. 바바께서 모든 것의 화신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분께는 말로 다할 수 없는 사랑과 자비가 있었습니다.'

1934년 미국으로 가는 배에서 바바는 라노와 어머니 노니, 그리고 동료 제자 루아노가 예수 시대에 자신과 가까운 인연을 맺었고, 이집트에서의 전생에서는 서로 이어져 있었다고 밝혔다. 1937년 칸에서 바바는 라노에게 함께 인도로 돌아갈 생각이 있는지 물었다. 전에는 메헤라바드가 '자신과 맞지 않는다'고 했던 라노였지만 기꺼이 받아들였고, 1937년 11월 20일 메헤라바드에 도착했다. 이렇게 시작된 봉사의 삶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어졌다.

예술가로서 라노는 바바의 가르침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가장 중요한 작품들을 남겼다. 대표작인 「열 개의 써클」 그림은 바바의 직접 지도를 받으며 나식에서 시작되었다. 바바는 라노의 작업을 세심하게 살폈고, 1940년 방갈로르에서는 터번을 쓴 자신을 그린 라노의 큰 초상화 왼쪽 눈에 직접 붓으로 물감을 찍어 표정을 단번에 살리기도 했다. 라노는 또 『하나님이 말씀하시다』에 나오는 진화와 내적 성숙(인볼루션)을 어린이용으로 그린 도해도 만들었다. 바바는 그 밑그림을 승인하고 도해에 들어갈 문구를 모두 정해 주었다.

바바는 사소해 보이는 일들을 통해 순종의 깊은 교훈을 가르치며 라노를 훈련했다. 칸에서는 밤새 몇 번이고 라노를 깨워서는 이튿날 소다수 주문을 잊지 않도록 일깨워 달라고 했다. 언제든 깨어 있고 준비되어 있도록 단련한 것이다. 한번은 주전자가 끓으며 노래하는 소리를 들으라고 자고 있던 라노를 부엌으로 불렀다. 라노가 영문을 몰라 하자 바바가 설명했다. '주전자가 노래한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당신을 생각했다는 것, 당신을 부르려고 생각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라노가 한번은 '바바께서는 늘 저를 못마땅해하시니 제가 곁에 있어 봐야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라고 불평하자, 바바는 약속으로 답했다. '나는 당신을 보내지 않을 것입니다. 결코 보내지 않을 것입니다!' 이 말은 그대로 이루어졌다. 라노는 영구히 머문 유일한 서양 여성이 되었다.

1949~1950년 '새로운 삶' 기간에 바바는 라노와 키티에게 지켜야 할 조건을 주고 봄베이로 보냈다. 바바는 두 사람에게 말했다. '조건을 구명부표처럼 여기고 꼭 붙잡으십시오.' 1952년 라노는 바바의 미국 여행에 동행했다.

라노는 즐거운 순간에도 함께했다. 1954년 다세라 축제 때 라노는 마부 차림을 하고 말 '쉬바의 여왕'을 바바에게 선보여 바바를 크게 즐겁게 했다.

메헤라, 마니, 나자, 고허, 메헤루와 함께 메헤라자드에서 끝까지 바바 곁을 지킨 여섯 여성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라노는 바바의 마지막 나날을 지켜보았다. 1969년 아디 주니어에게 보내려고 그린 '섬김의 숙달' 엠블럼 수채화를 바바에게 보여 준 뒤 마지막 포옹을 받았다. 바바는 쇠약해 보였지만, 라노는 '예전 그대로의 힘찬 포옹이었다'고 회상했다.

라노는 아바타 메헤르 바바 트러스트의 수탁자로 봉사했으며, 1986년 12월 5일 세상을 떠날 때까지 메헤라자드에서 봉사를 이어 갔다. 상부 메헤라자드에 안장되었고, 그 예술적 유산은 지금도 전 세계에서 바바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영감을 주는 그림들 속에 살아 있다.

사진 갤러리(117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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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연표

1932

바바와의 첫 인연

퀜틴이 파리에서 노니와 라노에게 바바 이야기를 들려줌. 노니는 신문에서 본 사진으로 바바를 알아봄

1933

런던에서의 첫 만남

런던에서 바바를 처음 만남. '말로 다할 수 없이 아름다운 표정을 지닌 분'을 보았다고 회상함

1934

전생의 계시

1934년 12월 미국으로 가는 배에서, 루아노·노니·라노가 예수 시대에 자신과 가까운 인연이 있었고 이집트에서의 전생에서는 서로 이어져 있었다고 바바가 밝힘

1936

인도 도착

1936년 12월 8일 어머니 노니, 노리나, 엘리자베스 등과 함께 봄베이에 도착해 나식의 서양인 아쉬람에 머묾

1937

영구 체류 시작

칸에서 바바가 함께 인도로 돌아갈 생각이 있는지 물었고, 라노는 전에 망설였던 것과 달리 기꺼이 받아들여 1937년 11월 20일 메헤라바드에 도착함

1940

「열 개의 써클」 그림

방갈로르에서 바바의 지도를 받으며 「열 개의 써클」 그림 작업을 이어 감. 1월에는 터번을 쓴 바바를 그린 큰 초상화의 왼쪽 눈에 바바가 직접 물감을 찍어 표정을 단번에 살림

1949-1950

새로운 삶 시기

'새로운 삶' 기간에 지켜야 할 조건을 받고 키티와 함께 봄베이로 보내짐

1952

서양 여행

봄베이에서 뉴욕까지 비행기로 가며 바바의 미국 여행에 동행함

1956

『하나님이 말씀하시다』 도해

아이비 듀스의 제안으로 『하나님이 말씀하시다』에 나오는 진화와 내적 성숙(인볼루션)을 어린이용 도해로 그림. 바바가 이를 승인하고 문구를 모두 정해 줌

1969

마지막 포옹

아디 주니어에게 보내려고 그린 '섬김의 숙달' 엠블럼 수채화를 바바에게 보여 준 뒤 마지막 포옹을 받음

1986

세상을 떠남

1986년 12월 5일 메헤라자드에서 세상을 떠남. 상부 메헤라자드에 안장됨

말씀

“

나는 당신을 보내지 않을 것입니다. 결코 보내지 않을 것입니다!

(바바가 늘 자신을 못마땅해하니 곁에 있어 봐야 소용없다고 라노가 불평했을 때)

“

주전자가 노래한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당신을 생각했다는 것, 당신을 부르려고 생각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전자 끓는 소리를 들으라고 자고 있던 라노를 부른 뒤)

“

내가 이것을 당신들을 위해 한다고 생각한다면 착각입니다. 내 일이 먼저이고, 당신들은 부차적입니다.

(아지메르 근처에서 라노와 키티가 자기들 때문에 타라가르 언덕에 오르는 수고와 비용을 들이지 말라고 바바에게 권했을 때)

“

나는 나의 작업을 위해 당신을 살렸습니다. 당신이 아팠을 때 내가 여기 없었다면 당신은 죽었을 것입니다.

(중병에 걸린 라노를 살린 뒤, 그 뜻을 설명하며)

“

나는 당신들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비록 편지로 답하지 않았지만, 내가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고 있든 언제나 계속되는 내적 교감을 통해 여러분은 답을 받았습니다. 사랑의 부름은 결코 응답 없이 남지 않습니다. 하물며 여러분처럼 나를 사랑하고 끊임없이 나를 생각하는 이들의 부름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이여, 기억하십시오. 바바는 사랑의 모든 작은 행동을 지켜보고, 사랑의 모든 작은 음성(목소리)을 들으며, 사랑을 위해 올려지는 모든 작은 외침에 응답합니다. 그것이 어디서 오든 상관없습니다...

(1936년 3월 28일 미국에 있던 노니와 라노에게 보낸 편지. 두 사람은 바바에게 편지를 보냈지만 우편으로 답장을 받지 못했다.)

“

어떻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이렇게 아름답습니다! 당신은 결코 그녀만큼 잘 그릴 수 없습니다!

(1937년 8월 칸. 화가 아니타가 그림을 보여 주자 바바는 훌륭하다고 칭찬했다. 바바가 라노의 의견을 묻자 그녀는 솔직하게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

왜 당신은 어머니만큼 좋지 않습니까? 노니는 아주 다정한데, 왜 더 노니처럼 되지 못합니까?

(1937년 칸. 바바는 어머니 노니와 함께 일행에 있던 라노에게 입을 다무는 법을 가르치고 있었다. 바바는 그녀의 에고를 꺾는 일의 하나로 이렇게 놀렸다.)

“

내일 소다수 주문하는 일을 나에게 상기시켜 주기 바랍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이제 가서 쉬십시오. … 소다수에 대해 나에게 상기시켜 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이제 자러 가십시오; 피곤해 보입니다.

(1937년 8월 칸. 밤이면 바바는 자주 카카를 보내 라노를 깨워 자기 방으로 데려오게 하고는 이렇게만 일렀다. 얼마 안 가 그녀는 또 불려 갔다.)

“

내가 때때로 당신들에게서 육체적으로 물러나지 않으면, 당신들은 여기[가슴을 가리키며]서 나를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당신들에게 내 현존을 느끼기를 바라는 곳은 바로 거기입니다.

(1938년 4월 판치가니. 머스트 일에 몰두한 바바를 거의 보지 못한다고 느낀 라노와 키티는, 바바가 여성들에게 마음에 있는 것을 말해 보라고 하자 자기 심정을 털어놓았다.)

“

노니는 나의 가장 큰 연인들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녀는 언제나 내 일을 위해 자발적으로 [재정적으로] 내놓았습니다. … 자금은 앞으로 들어올 것이고 또 넉넉히 들어오겠지만, 인류의 가장 큰 필요에 봉사할 나의 일을 시작하게 한 공은 사랑하는 고인의 영혼에게 돌아갑니다. 그녀의 사랑스러운 이름이 이 독특한 기관과 이어져 길이 남게 될 것을 나는 기쁘게 생각합니다.

(1939년 10월 14일 방갈로르. 라노의 어머니 노니가 미소를 띤 채 세상을 떠난 뒤 바바는 라노를 껴안고 알파벳 보드로 이렇게 전했다. 노니의 기부는 계획 중이던 영적 센터를 시작하는 데 힘이 되었다.)

“

내가 그 카레와 밥을 먹으라고 하지 않았더라면 당신은 크게 앓았을 것입니다.

(1946년 6월 쿨루 계곡의 카트라인. 만디에서 바바는 라노에게 카레와 밥 한 접시를 먹게 했고, 그녀는 토한 뒤 돈킨에게서 전염성 간염 진단을 받았다. 그 뒤 바바는 돈킨이 권하는 입맛 돋우는 음식을 모두 금했고, 라노는 빨리 나았다.)

“

원한다면 당신들은 자기 나라로 돌아가도 되고, 그렇지 않으면 인도에 머물러도 됩니다. 내 사랑은 언제나 당신들과 함께하겠지만, 나는 다시는 당신들의 얼굴을 보지 않을 것입니다.

(1949년 8월 메헤라바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준비를 하며 여성 만달리 각자의 거취를 정하던 바바가 라노와 키티에게 한 말.)

주요 이야기

소다수의 밤

칸에서 바바는 밤새 몇 번이고 라노를 깨워서는 이튿날 소다수 주문을 잊지 않도록 일깨워 달라고 했다. 언제든 스승의 뜻을 따를 수 있도록 늘 깨어 있고 준비되어 있도록 훈련한 것이었다.

주전자의 노래

바바는 주전자가 끓으며 노래하는 소리를 들으라고 자고 있던 라노를 불렀다. 라노가 영문을 몰라 하자 바바가 알파벳 보드로 설명했다. '주전자가 노래한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당신을 생각했다는 것, 당신을 부르려고 생각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당신을 보내지 않겠습니다

라노가 '바바께서는 늘 저를 못마땅해하시니 제가 곁에 있어 봐야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라고 불평하자 바바가 답했다. '나는 당신을 보내지 않을 것입니다. 결코 보내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라노는 영구히 머문 유일한 서양 여성이 되었다.

나식에서 본 환시

나식에서 라노는 바바의 얼굴이 담긴 눈부신 빛에 잠에서 깼다. 그 빛과 환시와 함께 깊은 황홀경이 찾아와 라노는 바바 안으로 녹아들었다. 다음 날 바바가 간밤에 무슨 꿈을 꾸었는지 물었다.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예술 작품

「열 개의 써클」 그림

바바의 지도를 받아 나식에서 그리기 시작한, 영적 개념을 담은 대형 그림

『하나님이 말씀하시다』 도해

아이비 듀스의 제안으로, 바바의 승인과 문구 지시를 받아 제작한 어린이용 도해. 진화와 내적 성숙(인볼루션)을 그림

'섬김의 숙달' 엠블럼

아디 주니어를 위해 그린 엠블럼 수채화. 1969년 1월 바바가 이 그림에 손을 댄 뒤 라노에게 마지막 포옹을 해 줌

영상

외부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