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나에게서 옵니다"
1927년 처음 찾아왔을 때 닐루는, 소박한 음식만 먹으면서도 우파스니 마하라지의 생일에 뙤약볕 아래서 몇 시간 동안 음식을 나누어 주고도 지친 기색이 없는 만달리를 보고 감탄했다. 그가 그 기운과 열의가 어디서 나오는지 묻자 바바는 이렇게 답했다. "그것은 나에게서 옵니다. 내면에서 그들에게 그것을 주는 것은 바로 나입니다. 스승은 언제나 제자들을 통해 자기 일을 이룹니다."

Dr. Nilu
비나야크 닐칸트 나라얀 고드세
아쉬람의 의사, 메헤르 무료 진료소 책임자, 새로운 삶 동반자
닐루라고 불린 비나야크 닐칸트 나라얀 고드세는 1902년 11월 13일 푸나의 명망 있는 브라만 가문에서 태어났다. 푸나의 뉴 잉글리시 고등학교에서 그는 비슈누와 절친한 친구가 되었는데, 비슈누는 나중에 메헤르 바바에게 합류해 닐루에게 스승에 관한 편지를 계속 보냈다. 비슈누가 학업을 그만둔 것과 달리 닐루는 대학에 진학했고, 이어 봄베이의 그랜트 의과대학에 들어갔다.
1927년, 24세의 닐루는 우파스니 마하라지의 생일 축하 행사 때 메헤라바드에 왔다. 겉으로는 옛 친구를 만나러 온 것이었고 스승을 찾는 데에는 관심이 없었다. 바바는 곧바로 그에게 비슈누를 찾아가 원하는 만큼 이야기하라고 했다. 바바가 자기 생각을 읽었다고 확신한 닐루는 "저는 그럴 생각으로 왔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저도 당신을 따르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바바는 공부하는 동안 자신을 친구나 형제로 생각하라고 일렀다. 의학 공부를 하는 동안 닐루는 방학마다 찾아왔다. 1930년에는 최종 시험 직전에 바바가 그를 봄베이에서 불러 주사를 놓게 했고, 1932년 9월에는 바바가 그를 B. R. 암베드카르 박사에게 보냈는데, 암베드카르는 즉시 바바를 만나기로 했다.
닐루는 만달리의 의사가 되었다. 1937년 2월 1일 라후리에서 메헤르 무료 진료소가 문을 열었을 때 닐루가 책임을 맡고 잘바이가 조수가 되었는데, 곧 하루 200명 가까운 환자가 찾아왔고 그 가운데 많은 이들이 의사를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다. 1937년 6월 1일부터는 메헤라바드에서 무료 진료소를 운영했다. 그 뒤 방갈로르 시절과 블루 버스 여행 동안에도 봉사했고, 돈킨 박사와 함께 아쉬람 사람들을 치료했으며, 바바의 머스트 작업에서 에루치를 도왔다.
1949년 10월 닐루는 새로운 삶의 동반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길을 나섰다. 그는 생을 마칠 때까지 바바 곁에서 밤샘 경비를 서고 머스트 여행에 동행했으며, 1956년 7월에는 에루치, 아디 시니어, 메헤르지와 함께 바바의 서양 방문길에 비행기로 동행했다. 그는 단것을 무척 좋아했고, 재미있는 시를 지어 바바에게 읽어 주곤 했으며, 때로는 급한 성미가 만달리 사이에서 불거지기도 했다.
1956년 12월 2일, 바바의 차가 푸나에서 사타라로 돌아오던 중 우드타라 부근에서 갑자기 운전대가 말을 듣지 않아 돌로 된 배수로 벽에 부딪혔다. 차 밖으로 튕겨 나간 닐루는 심한 내상을 입었고, 사타라의 로즈우드로 옮겨졌으나 의식을 되찾지 못한 채 사망 판정을 받았다. 그의 시신은 메헤라바드에서 화장되었고 유골은 하부 메헤라바드의 두니 근처에 묻혔다. 바바는 이렇게 말했다. "닐루는 내 육신 가까이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었으니 특히 복이 컸습니다. 그것은 그 자신이 바라던 바대로였습니다."
“여기 있는 자들은 전부 쓸모없습니다! 이들이 몸이 안 좋으면 내가 약을 처방해야 합니다. 내가 의사 중의 의사이고 모든 병의 약을 갖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 약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나는 내 환자들을 낫게 해 줄 의사를 원합니다. 그런 의사가 여기 있어야 합니다.
(1929년 메헤라바드: 방학 때 찾아온 의대생 닐루에게, 그 자리의 남자들을 가리키며 한 말)
“공부에 전념하고 아직은 여기 올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 비슈누가 계속 편지하며 오라고 성가시게 굴겠지만 무시하십시오.
(1929년: 메헤라바드에 머물고 싶어 한 닐루에게. 그가 그곳에 아주 들어와 살게 되기까지는 그 뒤로도 6년이 걸렸다)
“그런 생각은 새로운 삶의 정신과 조건에 어긋납니다. 명심하십시오. 나는 그런 실수는 12월 말까지만 용서할 것입니다. 1950년 1월 1일부터는 실수를 저지르는 사람은 짐을 꾸려 떠나야 할 것입니다.
(1949년 10월 20일 벨가움으로 가던 길의 사타라: 닐루가 아디 시니어에게 "우리가 언제 다시 메헤라바드로 돌아가게 될까요?" 하고 아쉬운 듯 말하는 것을 바바가 듣고 한 말)
“당신에게 잘못이 없는데도 내가 꾸짖는다면 무엇을 걱정할 것이 있습니까? 당신이 잘못했다면 스스로 바로잡으십시오. 옳든 그르든, 나와 말다툼하거나 자신을 변호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1949년 새로운 삶 시기 벨가움: 닐루가 명령을 수행하다 무의식적인 실수를 한 뒤)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계속해서 나만 생각하십시오. 나는 존재하는 유일한 이이며, 중요한 것도 오직 나뿐입니다.
(1956년 사타라: 닐루가 목숨을 잃은 자동차 사고 며칠 전 그에게 한 말)
“누가 그의 이를 뽑으라고 했습니까? 당신들은 의사입니까, 아니면 이발사입니까? 모두를 면도하러 왔습니까? 당신들은 쓸모없는 무능력자들입니다! 학위를 위해 누군가에게 뇌물을 줬다고 확신합니다!
(1940년 3월 방갈로르: 돈이 치통을 앓는 나오로지의 이를 두 개 뽑았는데 통증은 오히려 심해졌다. 이를 들은 바바는 두 의사 돈과 닐루를 꾸짖었다.)
“여성들이 이 물을 마시는데, 당신들은 왜 마시지 않습니까? 이것은 내 명령에 대한 불복종이니, 당신들 둘 다 벌로 바닥에 코를 문질러야 합니다.
(1950년 만지리 마피: 비슈누와 닐루는 비 때문에 냄새가 고약하다며 부지에 새로 판 우물의 물을 마시지 않고, 자기들 물은 다른 우물에서 길어 왔다.)
“죽은 코브라를 때릴 때도 바지가 내려간다면, 살아 있는 코브라를 죽이면 무슨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1951년 하이데라바드: 크리슈나 나이르가 숙소 근처에서 코브라를 죽이자 닐루가 장난으로 죽은 뱀을 세게 때리기 시작했는데, 그러다 파자마 바지 끈이 끊어져 바지가 발치로 흘러내렸다.)
“고맙지만 괜찮습니다. 나를 향한 당신의 마음은 고맙지만,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무슨 일이 닥치든 이 7일의 기간이 지나면 나는 살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피가 머리로 치솟아 두개골이 깨질 수도 있습니다!
(1952년 1월 메헤라자드: 마노나쉬 시기 바바가 7일 동안 두니 작업을 할 때, 닐루가 저녁 두니가 시작되기 전 청진기를 들고 울타리 안으로 들어와 바바의 심장과 맥박을 재려 했다.)
“운율을 잘 지으십시오. 그러면 인쇄될 것입니다.
(1955년 사타라: 바바가 은둔하던 시기에 닐루는 우스운 시를 지어 저녁마다 바바에게 읽어 주었다. 바바는 그 시에 큰 관심을 보였고, 그 시들은 늘 바바의 기분을 밝게 해 주었다.)
“당신이 밤새 깨어 있으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반복하면, 머스트들을 위해 가져온 좋고 달콤한 것들을 모두 당신에게 주고, 내가 그들에게 하듯 당신에게 시중들겠습니다.
(1952년 1월 4일 메헤라자드: 마노나쉬 시기에 머스트들이 바바에게 오고 그들을 위한 단것이 마련되어 있을 때, 바바는 파드리를 통해 닐루에게 이 익살스러운 메시지를 보냈다. 닐루는 "제가 머스트가 되다니 당치도 않습니다! 저는 그저 의사이고 싶을 뿐입니다"라고 답했다.)
“머스트가 오지 않으면 당신 수염 털을 하나도 남김없이 뽑아 버리겠습니다!
(1952년 1월 메헤라자드: 바바는 자신의 일을 위해 알맞은 머스트가 데려와지기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 무렵 수염을 기르고 있던 닐루는 바바에게서 이 메시지를 받았다.)
1927년 처음 찾아왔을 때 닐루는, 소박한 음식만 먹으면서도 우파스니 마하라지의 생일에 뙤약볕 아래서 몇 시간 동안 음식을 나누어 주고도 지친 기색이 없는 만달리를 보고 감탄했다. 그가 그 기운과 열의가 어디서 나오는지 묻자 바바는 이렇게 답했다. "그것은 나에게서 옵니다. 내면에서 그들에게 그것을 주는 것은 바로 나입니다. 스승은 언제나 제자들을 통해 자기 일을 이룹니다."
1956년 사타라에서 바바는 바이둘에게 눈짓을 하고는 닐루 앞에서 닐루의 대학 시절 한 여성에 대해 물었다. 격한 말다툼이 이어진 끝에 닐루는 한 여성이 자신을 사랑했고 자기 때문에 지금까지 결혼하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바바는 그녀가 닐루를 사랑하므로 그녀의 산스카라가 닐루에게 있고, 닐루가 자신과 함께 지내는 한 그 짐을 자신이 져야 한다고 설명한 뒤 "이제 걱정하지 마십시오."라고 말했다. 『로드 메허』에 따르면 닐루는 그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고 바이둘은 아무것도 몰랐다. 바바는 다툼을 일으켜 숨어 있던 기억을 드러내고 닐루를 거기서 풀어 준 것이다.
1945년 바바는 돈킨 박사에게, 단것을 무척 좋아하던 닐루를 시험했던 일을 들려주었다. 메헤라바드에서 만우절에 바바는 필라마이에게 깡통 하나를 소똥으로 채워 선물처럼 포장하게 했다. 그리고 닐루가 자기에게 얼마나 소중한지 말한 뒤, 깡통을 열어 과자 절반은 자기가 갖고 나머지는 만달리에게 나누어 주라고 했다. 소똥을 본 닐루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자 바바는 이렇게 말했다. "이것의 내용을 보고 당신이 하얗게 질린다면, 온 세상이 소똥과 같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당신이 그것을 깨닫게 되면, 세상에 대한 집착은 희미해질 것입니다!" 바바는 또 닐루가 처음 왔을 때 결혼을 원했다는 이야기도 했다. 바바는 막지 않고 그를 카쿠바이, 쉬린마이와 함께 푸나로 보내 처녀들을 만나 보게 했다. 그런데 닐루가 마음에 들어 한 처녀들은 그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고, 그를 마음에 들어 한 처녀들은 닐루가 내키지 않았다. 결국 그는 돌아와 "바바, 저는 결혼하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이야기가 사실이냐는 물음에 닐루는 "완전히 사실입니다. 세상에서 그토록 완벽한 판을 짤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입니다."라고 답했다.
1952년 4월 닐루는 아디 시니어, 사로쉬, 메헤르지, 구스타지와 함께 뉴욕으로 날아가, 15년 만에 이루어진 바바의 서양 방문에 함께했다. 5월 오클라호마주 프라그 부근에서 자동차 사고가 난 뒤, 병원에서는 메헤르지가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까지, 닐루가 오후 7시부터 오전 7시까지 바바 곁을 지켰다. 바바는 사소한 증세를 핑계로 닐루를 벌리슨 박사에게 자주 보내 의사가 오게 했다. 인도로 돌아온 뒤 바바는 닐루가 밤샘 경계를 지치지 않고 맡아 준 것을 칭찬했고, 뒷날 이렇게 말했다. "미국에서 닐루는 밤새도록 내 곁을 지키느라 석 달 동안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1953년 4월 요기 슈다난다 바라티는 바바의 방에서 명상을 한 뒤 닐루에게 "바바는 아주 위대한 성인입니다"라고 말했다. 닐루는 "메헤르 바바는 성인이 아닙니다. 그분은 모든 성인들 위에 계신 분입니다!" 하고 바로잡았다. 요기가 바바는 어떤 영적 수행을 하느냐고 묻자, 닐루는 바바에게는 어떤 수행도 필요 없다고 하며 이렇게 설명했다. "메헤르 바바는 모든 지식의 근원입니다. 모든 지식이 그분에게서 흘러나오므로, 그분에게는 성취하거나 알아야 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1955년 사타라에서 바바가 그래프턴에 은둔해 있을 때, 바바는 닐루에게 시를 지으라고 했다. 닐루는 무척 애를 써서 하루에 "노래" 한 편씩 지어 바바에게 읽어 주었는데, 읽기 전에 먼저 어떻게 영감을 받았는지부터 이야기했다. 하루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아 바우에게 도와 달라고 했다. 바우가 네 줄을 써 주었고, 그날 저녁 닐루가 그것을 읽자 바바는 "오늘은 시가 좋지 않습니다."라고 했다. 닐루는 "네, 바바, 저도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했다. 바바는 닐루의 시에 큰 관심을 보이며 "운율을 잘 지으십시오. 그러면 인쇄될 것입니다."라고 했고, 바우에게는 그것을 봄베이의 나리만에게 보내 인쇄하게 하라고 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