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디아를 보내십시오
나식에서 나딘은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느끼는 것은 어떤 것인지 바바에게 물었다. 바바는 이렇게 답했다. "당신은 지금 하나님에 나디아가 더해진 존재입니다. 나디아가 사라지면 하나님이 남습니다. 그러니 나디아는 떠나야 합니다." 바바는 가장 쉬운 길은 바바를 더 생각함으로써 자신을 잊는 것이며, 그보다 더 안전한 길은 바바가 말하는 대로 행하여 그의 명령 속에 녹아드는 것이라고 일렀다.

Nadine Tolstoy
나데즈다(나디아) 클리멘티예브나 톨스토이 백작부인 (결혼 전 성 카툴스카야)
러시아 출신, 메헤라바드 산부인과 수간호사, 러시아어 번역
“나딘(메헤르 바바가 준 이름, 본명 나디아)”
나데즈다(나디아) 톨스토이는 1884년 오데사에서 태어났다. 페트로그라드 대학에서 음악을 공부했고 여러 언어를 구사했다. 제1차 세계대전 중 갈리치아 전선에서 적십자 활동을 하다가 소설가 레프 톨스토이의 아들 일리야 톨스토이 백작을 만났다. 두 사람은 모두 이혼한 상태였고, 이후 미국에서 결혼했다. 뉴욕 근교에서 일리야와 살면서 그녀는 신비주의 문헌과 비교(秘敎) 철학을 깊이 읽었지만, 책만으로는 채워지지 않아 살아 있는 스승을 찾고 있었다.
친구인 말콤과 진 슐로스 부부를 통해 그녀는 1931년 11월 19일 메헤르 바바의 축복을 받으러 하몬에 왔다. 바바를 보자마자 그녀는 "나의 구도는 끝났다!"라고 외쳤다. 바바는 알파벳 보드로 "당신은 오랫동안 나를 기다려 왔고 이제 내가 왔습니다. 내가 당신을 돕겠습니다"라고 전했다. 바바는 그녀가 해 오던 크리야 요가가 그녀에게 맞지 않는다고 일렀고, 훗날 그녀에게 나딘이라는 이름을 주었다. 1932년 바바가 다시 미국에 왔을 때 그녀는 바바에게서 예수 그리스도의 화신을 보았고, 자기 삶을 바바의 대의에 바쳤다. 남편 일리야도 데려왔는데, 그는 눈물을 흘리며 처음으로 신성한 사랑을 지닌 사람을 만났다고 말했다. 일리야는 그로부터 약 1년 반 뒤 세상을 떠났다.
1936년 12월 나딘은 개릿 포트, 마리 대공녀와 함께 배를 타고 인도에 와서 나식의 서양인 아쉬람에 합류했다. 그곳에서 그녀가 맡은 일은 바바의 생애와 메시지를 러시아어로 옮기고 다른 이들을 돕는 것이었다. 1938년 6월에는 헤디 메르텐스, 헬렌 담, 이레네 빌로와 함께 다시 와서 메헤라바드 언덕에서 여성 만달리와 함께 살았다. 그곳에서 그녀는 아쉬람 병원 산부인과 병동의 책임 간호사가 되었고, 바바는 그녀가 참된 봉사의 정신, 곧 무아(無我)를 배우기를 바란다고 일렀다.
나딘은 블루 버스 여행에서 바바와 여성들과 함께 다녔고, 바바의 지시에 따라 침묵을 지키기도 했으며, 1939년에는 데쉬무크 박사, 노리나 마차벨리와 함께 방갈로르에서 바바에 관해 강연했다. 1941년 5월 바바는 그녀를 노리나, 엘리자베스 패터슨과 함께 미국으로 보내 메시지를 전하게 했다. 뉴욕에서 그녀는 두 사람과 함께 살았지만 경화증이 생겨 건강이 나빠졌다.
나딘은 1946년 4월 14일 뉴욕 루즈벨트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고, 마지막까지 아델 월킨이 그녀를 간호했다. 바바는 "엘리자베스에게 전하십시오. 나디아는 그 어느 때보다 더 내 안에서, 나와 함께, 나를 위해 살고 있습니다"라고 전보를 보냈다. 바바는 일찍이 그녀를 "내가 의지할 수 있는 나의 반석 가운데 하나"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녀의 유골은 메헤라바드에 안치되었고, 바바는 펜두에게 그녀의 무덤을 만들게 했다.
“당신은 오랫동안 나를 기다려 왔고, 이제 내가 왔습니다. 내가 당신을 도울 것입니다.
(1931년 11월 19일 하몬에서의 첫 만남 때 알파벳 보드로)
“나는 당신의 모든 고통에 대해 보상하겠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영원한 지복을 줄 것입니다. 당신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될 것입니다. 지금 여기, 이 생에서 사물을 볼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당신은 아름다운 영혼이며, 언젠가 당신의 시아버지가 오래도록 갈망했던 것, 곧 하나님과의 합일을 얻게 될 것입니다.
(1932년 뉴욕, 나딘의 재정적 어려움과 다른 고난들을 알고서. 그녀의 시아버지는 레프 톨스토이였다)
“내가 다른 일을 하라고 말할 때까지 버티십시오. 시련과 고난은 영성으로 가는 디딤돌입니다.
(1935년 11월 22일 나딘에게 보낸 편지)
“세상에는 병원이 수천 개나 있습니다. 나는 여기서 일할 간호사도 수천 명을 둘 수 있습니다. 내가 이 병원의 일을 당신에게 맡긴 것은, 당신이 봉사의 참된 정신, 곧 사심 없음을 배우기 바라기 때문입니다.
(1938년 메헤라바드 언덕 산부인과 병동의 책임 간호사 나딘에게)
“당신은 혀의 침묵만이 아니라, 욕망과 증오와 쓰라림과 탐욕 등의 침묵도 지켜야 합니다!
(1940년, 바바의 지시로 침묵하던 나딘이 노리나 마차벨리와 다툰 일을 두고)
“나는 다 압니다. … 그것은 서양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당신을 위한 것도 아닙니다.
(1931년 11월 19일 뉴욕 하몬: 첫 만남에서 나딘이 자기 이야기를 꺼내려 하자 바바는 말을 끊었다. 그녀는 스와미 요가난다 아래에서 크리야 요가를 해 왔는데, 바바는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그것이 그녀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일렀다.)
“그랬다면 익사한 것이 아니라 해변으로 밀려나왔을 것입니다! 대양에 합쳐지는 일은 불순종하는 사람들의 몫이 아닙니다. 그들은 오래되고 바싹 마른 유목 조각처럼 해변에 내던져져 거기서 죽습니다! … 나와 함께 있을 때에는 죽으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런 죽음을 죽은 뒤에 영원히 살 수 있습니다. 내 말이 이해됩니까?
(1940년 4월 암볼리: 뱀에 물렸더라도 바바 앞에서 죽었을 것이라고 나딘이 항변하고, 두 사람 가운데 하나가 그랬다면 바바의 대양 속에 합쳐졌을 것이라고 덧붙이자 바바가 키티와 나딘에게 한 말이다. 끝에 나딘은 이해했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식에서 나딘은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느끼는 것은 어떤 것인지 바바에게 물었다. 바바는 이렇게 답했다. "당신은 지금 하나님에 나디아가 더해진 존재입니다. 나디아가 사라지면 하나님이 남습니다. 그러니 나디아는 떠나야 합니다." 바바는 가장 쉬운 길은 바바를 더 생각함으로써 자신을 잊는 것이며, 그보다 더 안전한 길은 바바가 말하는 대로 행하여 그의 명령 속에 녹아드는 것이라고 일렀다.
메헤라바드 산부인과 병동의 책임 간호사로서 나딘은 그 지역의 가장 가난한 여성들을 돌보았다. 바바는 이 일을 할 간호사라면 수천 명이라도 둘 수 있지만 그녀에게 맡긴 것은 그녀가 참된 봉사의 정신, 곧 무아를 배우기를 바라기 때문이라고 일렀다. 그녀는 약이 듣지 않을 때에도 바바의 모습과 사랑 어린 포옹이 '거룩한 포도주'처럼 환자들의 희망을 되살렸다고 적었다.
1932년 바바가 다시 뉴욕에 왔을 때 나딘은 오랫동안 기다린 끝에 면담을 했다. 그녀는 훗날 "소파에 앉아 계신 그분에게서 나는 내 앞에 계신 그리스도를 보았다"라고 적었다. 방을 나서며 그녀가 큰 소리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외치자 지켜보던 사람들이 돌아서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바바는 그녀의 모든 고통을 보상하겠다고, 언젠가 그녀의 시아버지 레프 톨스토이가 갈망했던 하나님과의 합일을 얻게 되리라고 말했다. 다음 날 그녀는 남편 일리야를 데려왔고, 일리야는 세상에 이렇게 많은 악이 있는데 어떻게 사랑할 수 있는지 바바에게 물었다.
독사가 많던 1940년 암볼리에서 바바는 모두에게 등불 없이 어둠 속을 돌아다니지 말라고 지시했다. 한번은 키티 데이비와 나딘이 등불을 챙기지 않았고, 다음 날 바바는 그들을 꾸짖었다. 나딘은 뱀에게 물렸더라면 바바 앞에서 죽어 그의 대양에 합쳐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바바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랬다면 익사한 것이 아니라 해변으로 밀려나왔을 것입니다! 대양에 합쳐지는 일은 불순종하는 사람들의 몫이 아닙니다." 그리고 자기와 함께 있을 때에는 죽으면서 살아야 그런 죽음을 죽은 뒤에 영원히 살 수 있다고 했다. 나딘은 이해했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1941년 1월 여성들과 여행하던 중 바바가 물었다. "누가 메헤르 바바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여러분은 뭐라고 말하겠습니까?" 나딘은 "하나님!"이라고 대답했고, 노리나 마차벨리는 "갓맨!"이라고 했다. 바바는 노리나에게 동의했다. "하나님이 아니라 갓맨입니다. 갓맨은 하나님보다 더 큽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절대이며, 그 절대를 드러내는 이가 갓맨이라고 설명했다.
나딘은 1946년 4월 14일 뉴욕 루즈벨트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고, 아델 월킨이 마지막까지 그녀를 간호했다. 바바는 "엘리자베스에게 전하십시오. 나디아는 이전 어느 때보다 더 내 안에, 나와 함께, 나를 위해 살아 있습니다"라고 답전을 보냈다. 그녀의 유골은 메헤라바드로 옮겨졌고, 1947년 바바는 노리나와 엘리자베스가 인도에 도착하기 전에 펜두가 그녀의 무덤을 완성하기를 몹시 바랐다. 1947년 6월 13일 바바는 펜두에게 편지를 보내 묘비에 이렇게 새기게 했다. "나딘 톨스토이, 그녀의 행복은 바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