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헤르완 바이람샤우 제사왈라는 1930년 11월 22일 바이람샤우("파파")와 가이마이 제사왈라의 막내로, 형 에루치보다 열네 살 늦게 태어났다. 누나로 마누와 메헤루가 있었다. 1930년 나그푸르에서 메헤르 바바는 가이마이에게 "에루치는 나의 아들입니다. 당신에게는 다른 아이를 주겠습니다"라고 알렸고, 두 달 뒤 메헤르완이 태어났다. 아이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들은 바바는 가족에게 아이 이름을 메헤르완으로 지으라고 했다.
1938년 8월 1일 제사왈라 가족은 모든 것을 두고 바바에게 왔고, 그때 메헤르완은 여덟 살쯤이었다. 처음에는 아크바르 프레스의 친척 집에 맡겨졌으나, 1938년 12월 자발푸르의 바바에게 와서 여성 만달리와 함께 지냈는데, 그렇게 한 첫 소년이었다. 어린 시절 그는 바바와 여성들과 함께 블루 버스 여행을 다녔고, 전쟁 시기를 데라둔 등지에서 바바 일행과 함께 보냈다. 훗날 그는 "그분은 나의 아버지이자 어머니가 되셨습니다. 나는 모든 것을 그분께 의지했습니다"라고 회상했다.
1943년 바바는 가족을 푸나로 보냈고, 가족은 그 뒤 47년 동안 빈드라 하우스에서 살았다. 이 집은 여행 사이사이 바바가 머무는 곳이 되었다. 1949년 10월 새로운 삶을 떠나기 전, 바바는 메헤르완을 차 곁으로 불러 "나는 에루치를 데려갑니다. 그는 나를 돌볼 것이고, 당신은 가족을 돌보기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메헤르완은 "네, 말씀하신 대로 하겠습니다"라고 답했고, 이 약속이 그의 남은 삶을 이끌었다. 그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학업을 마쳐 화학 이학사 학위를 받았다. 1951년에는 시험을 며칠 앞두고 공부를 시작하라는 바바의 명에 따라 최종 시험에 합격했다. 그는 에루치처럼 아쉬람에서 살고 싶었지만, 바바는 "처음 찾은 일자리를 잡으십시오"라고 일렀다.
푸나에서 메헤르완은 1951년 구루프라사드를 비롯해 바바가 머물 집을 찾는 일을 도왔고, 의약품과 생필품을 메헤라자드로 보냈다. 1961년부터는 바바의 목욕에 쓸 푸나의 단물을 정기적으로 실어 보내는 일을 맡았다. 1958년 사하바스에서 바바는 그를 "에루치의 형제이자 나의 보석, 진짜 보석입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는 나의 것입니다"라고 소개했다. 1959년 아버지 파파가 세상을 떠났을 때 메헤르완이 마음 쓴 것은 죽음 그 자체가 아니라, 그날 밤 열 시에 잠자리에 들라는 바바의 명령을 지켰는가 하는 것이었다.
1990년 빈드라 하우스가 팔리자 메헤르완은 어머니 가이마이, 누나 마누와 함께 메헤라자드로 옮겨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바바의 상주 만달리가 하나둘 세상을 떠나면서 그는 만달리 홀에서 순례자들에게 바바와 함께한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을 더 적극적으로 맡았다. 그는 『메헤르 바바와 함께한 나의 삶(My Life with Meher Baba)』을 썼고, 찬지의 기록을 엮은 『메헤르 바바의 티핀 강연(Meher Baba's Tiffin Lectures)』를 워드 파크스와 함께 편집했다. 그는 2016년 7월 15일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