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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헤루 다마니아

메헤루 다마니아

Meheru Damania

메헤루 사박 다마니아 (결혼 전 성 제사왈라)

에루치의 누이동생, 바바의 식사 준비와 병원 환자 돌봄

1920년 8월 7일 ~ 1953년 9월 28일
인도 나그푸르 → 인도 아흐메드나가르 쿠쉬루 쿼터스
요리에루치의 누이동생블루 버스 여행이른 죽음

직업

주부, 바바의 식사를 지음

전기

메헤루 제사왈라는 메헤르 바바와 가장 가까운 만달리 가운데 한 사람인 에루치 제사왈라의 누이동생이었다. 1938년부터 몇 해 동안 어머니 가이마이, 언니 마누와 함께 바바 곁의 여성들 사이에서 지냈다. 1945년 사박 다마니아와 결혼한 뒤에는 아흐메드나가르의 쿠쉬루 쿼터스에 살면서 바바의 식사를 자주 지어 보냈다.

1937년 5월 바바는 가이마이와 그 자매 시린 다마니아와 두 집안 자녀들의 약혼을 의논했다. 얼마 후(아마도 1937년 6월) 아흐메드나가르의 아크바르 프레스에서 약혼식이 열렸다. 바바는 에루치를 사촌 코르셰드 다마니아와 약혼시키고, 같은 자리에서 메헤루를 코르셰드의 오빠 사박과 약혼시켰다. 바바는 두 쌍에게 화환을 걸어 주고 이마에 쿰쿰을 발라 주었으며, 그들은 바바 앞에서 반지를 나누었다.

1938년 8월 1일 에루치는 바바의 아쉬람에 합류하려고 가족을 나그푸르에서 아흐메드나가르로 데려왔고, 가이마이는 딸 메헤루와 마누와 함께 P.W.D. 방갈로에서 여성 만달리와 머물렀다. 1938년 12월 8일 바바가 블루 버스를 타고 메헤라바드 언덕을 떠날 때 열여덟 살의 메헤루도 그 여성들 가운데 있었고, 블루 버스 여행 내내 요리를 도왔다. 1939년에는 방갈로르의 링크스 방갈로에서 바바와 함께 지낸 여성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고, 1942년에도 제사왈라 집안 여성들은 로나블라와 메헤라바드에서 바바 일행과 함께 있었다.

1945년 5월 28일 스물네 살의 메헤루는 아크바르 프레스에서 서른세 살의 사박 다마니아와 결혼했다. 에루치와 코르셰드의 결혼식과 함께 치른 합동 결혼식이었다. 바바와 메헤라바드 만달리가 결혼식에 참석했고, 봄베이, 푸나, 아흐메드나가르에서 바바를 사랑하는 이들이 모여들면서 식은 다르샨이 되었다. 식이 끝난 뒤 바바는 별도의 방에서 두 신혼부부를 비롯한 몇 사람과 개인 면담을 했다.

부부는 쿠쉬루 쿼터스에서 살았다. 1947년 8월 바바가 메헤라바드로 돌아오자 아디 시니어는 하루 두 번 메헤라바드로 차를 몰고 와 바바를 태워 언덕 위아래로 오갔고, 메헤루가 지은 바바의 식사도 함께 날랐다. 그해 말에는 메헤루가 지은 바바의 음식이 아디 시니어 편에 날마다 핌팔가온으로 보내졌는데, 이는 1947년 11월 19일부터 중단되었다. 1950년 바바가 떠나 있는 동안 메헤루는 매주 쿠쉬루 쿼터스에서 메헤라자드로 가서 건물을 깨끗이 관리했다. 1951년 11월 바바가 메헤라자드 근처 템비 언덕에 머물 때, 바바 곁에 머무는 동행자들의 음식은 하루 한 번 아흐메드나가르에서 보내졌다. 메헤루가 그 음식을 지어 람찬드라라는 소년 편에 보냈다. 바바는 하루에 두 가지 음식만 보내라고 명했고, 메헤루는 그대로 따랐다. 그러나 그 두 가지 요리에는 다른 여러 음식이 섞여 있었다! 1952년 초 바바가 수술을 받은 뒤에는 회복을 돕기 위해 양고기 수프를 지어 쿠쉬루 쿼터스에서 보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메헤루는 몇 달째 몸이 좋지 않았고 담낭 수술을 받았으며, 그 뒤 암 진단을 받았다. 1953년 2월 15일 바바는 푸나로 가는 길에 아흐메드나가르의 구세군 에반젤린 부스 병원에 들러 메헤루를 찾아보았다. 바바는 메헤루를 위로하며 자신을 기억하고 자신의 이름을 되뇌라고 당부했다. 바바가 마지막으로 메헤루를 보았을 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열심히 일했습니다. 하지만 곧 쉬게 될 것입니다."

메헤루는 1953년 9월 28일 쿠쉬루 쿼터스에서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서른세 살이었다(『로드 메허』에는 서른두 살로 나온다). 임종 자리에서 남긴 마지막 말은 이러했다. "바바께 제 여정이 끝났다고 전해 주세요. 그분께 경배드립니다." 아디 시니어가 전보로 바바에게 부고를 알렸다. 전보를 받은 바바는 에루치와 다른 이들을 영화 보러 보냈다. 에루치는 그 소식에 조금도 흔들리지 않은 듯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평소와 같았다. 1955년 11월 바바는 마지막 숨을 거두기 전에 자신의 이름을 부른 이들 가운데 메헤루를 꼽았다.

사진 갤러리(12 장)

생애 연표

1920

출생

인도 나그푸르에서 바이람샤우(파파)와 가이마이 제사왈라의 딸로 태어남(메헤르 바바 트래블스는 1920년 8월 7일로 적음)

1937

약혼

아마도 1937년 6월, 아크바르 프레스에서 에루치와 코르셰드의 약혼과 같은 자리에서 바바가 메헤루를 사박 다마니아와 약혼시킴. 바바는 두 쌍에게 화환을 걸어 주었고, 두 쌍은 바바 앞에서 반지를 나눔

1938

바바 곁의 여성들과 함께, 블루 버스

1938년 8월 1일 가족이 나그푸르에서 와 바바의 아쉬람에 합류했고, 어머니와 언니와 함께 여성 만달리 곁에 머묾. 1938년 12월 8일부터 열여덟 살의 나이로 블루 버스를 타고 바바 곁의 여성들과 여행하며 요리를 도움

1945

결혼식

1945년 5월 28일 아크바르 프레스에서 사박 다마니아와 결혼. 에루치와 코르셰드의 결혼식과 함께 치른 합동 결혼식은 다르샨이 됨

1947

바바의 식사

쿠쉬루 쿼터스에 살며 바바의 식사를 지었고, 아디 시니어가 이를 메헤라바드로, 뒤에는 날마다 핌팔가온으로 나름

1951

하루 두 가지 음식

1951년 11월 바바가 메헤라자드 근처 템비 언덕에 머물 때 하루 한 번 보내는 음식을 지었고, 두 가지 음식만 보내라는 바바의 명을 지킴

1953

바바의 병원 방문

1953년 2월 15일 담낭 수술을 받은 메헤루를 바바가 아흐메드나가르의 에반젤린 부스 병원으로 찾아와 자신을 기억하고 이름을 되뇌라고 당부함. 그 뒤 메헤루는 암 진단을 받음

1953

사망

1953년 9월 28일 쿠쉬루 쿼터스에서 췌장암으로 서른세 살에 세상을 떠남(『로드 메허』에는 서른두 살로 나옴). 마지막 말은 바바에게 보내는 전언이었음

말씀

“

당신은 열심히 일했습니다. 하지만 곧 쉬게 될 것입니다.

(1953년 9월 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 바바가 마지막으로 메헤루를 보았을 때 한 말이다.)

주요 이야기

하루 두 가지 음식

1951년 11월 바바가 메헤라자드 근처 템비 언덕에 머물 때, 바바 곁에 머무는 동행자들의 음식은 하루 한 번 아흐메드나가르에서 보내졌다. 메헤루가 그 음식을 지어 람찬드라라는 소년 편에 보냈다. 바바는 하루에 두 가지 음식만 보내라고 명했고 메헤루는 그대로 따랐다. 그러나 그 두 가지 요리에는 다른 여러 음식이 섞여 있었다.

나를 기억하고 내 이름을 되뇌십시오

1953년 2월 15일 바바는 푸나로 가는 길에 아흐메드나가르의 에반젤린 부스 병원에 들러, 얼마 전 담낭 수술을 받은 메헤루를 찾아보았다. 바바는 메헤루를 위로하며 자신을 기억하고 자신의 이름을 되뇌라고 당부했다. 메헤루는 그해 세상을 떠났고, 1955년 11월 바바는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이름을 부른 이들 가운데 메헤루를 꼽았다.

에루치와 영화

메헤루의 부고를 알리는 아디 시니어의 전보를 받은 바바는 에루치와 다른 이들을 영화 보러 보냈다. 에루치는 그 소식에 조금도 흔들리지 않은 듯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평소와 같았다.

외부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