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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헤라 이라니

메헤라 이라니

Mehera Irani

메헤라 제항기르 이라니

바바가 "나의 라다"라 부른 이

1907년 1월 7일 ~ 1989년 5월 20일
영국령 인도 수쿠르 (현재 파키스탄) → 인도 메헤라자드
바바의 라다새로운 삶의 동반자사랑하는 님이 사랑한 이

전기

메헤라 제항기르 이라니는 메헤르 바바의 강림 역사에서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신성한 자리를 차지한다. 바바는 오랜 세월에 걸쳐 메헤라를 '우주에서 가장 순수한 영혼'이자 자신을 가장 사랑하는 이라고 여러 번 말했다. 또 메헤라를 '나의 라다'라 부르며 크리슈나와 그를 사랑한 라다 사이의 신성한 사랑에 견주었다. 메헤라에게는 오직 바바뿐이었다. 메헤라는 바바가 신성한 사랑의 가장 높은 형태로 인정할 만큼 순수하고 온전한 사랑으로 자신의 존재 전부를 바바에게 바쳤다.

메헤라는 1907년 1월 7일 영국령 인도의 수쿠르에서 태어났고, 1922년 10월 15일 열다섯 살 때 메헤르 바바를 처음 만났다. 어머니와 함께 우파스니 마하라지의 사코리 아쉬람을 찾았을 때였다. 그때부터 메헤라의 운명은 정해졌다. 1924년 메헤라바드에서 바바에게 영구히 합류했고, 평생 바바 곁을 떠나지 않았다.

여성 만달리 가운데 메헤라만은 바바의 특별한 명에 따라 남성과 완전히 격리되어 지냈다. 새로운 삶 동안에도 어떤 남자도 메헤라를 볼 수 없었다. 1960년대 후반에 와서야 몇몇 남성 만달리를 멀리서 만나는 것이 허락되었고, 그때 메헤라는 두 손을 모으고 '제이 바바!'라고 인사했다. 이 특별한 격리는 바바가 자신의 일 속에서 메헤라가 맡은 역할을 위해 요구한 전례 없는 순수함을 보여 준다.

메헤라는 1949년부터 1952년까지 이어진 메헤르 바바의 '새로운 삶'에 동행한 네 명의 여성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완전한 포기의 시기로, 바바와 동반자들은 음식과 잠자리를 구걸하며 영적 방랑자로 떠돌았다. 그 고난은 모든 동반자를 시험했지만 메헤라의 사랑은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

1952년 미국에서 바바와 함께 여행하던 중, 메헤라는 오클라호마주 프라그 근처에서 일어난 자동차 사고로 머리를 크게 다쳤다. 바바도 중상을 입었다. 이 사고는 인류를 위한 바바의 고난의 일부였고, 메헤라는 자신의 몫을 조용히 받아들였다.

바바는 메헤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그녀는 나의 숨결 그 자체이며, 그것 없이는 나는 살 수 없습니다.' 아바타가 한 제자에 대해 이런 말을 남긴 것은 극히 드문 일로, 두 사람 사이의 특별한 영적 관계를 말해 준다.

1969년 바바가 육신을 떠난 뒤에도 메헤라는 메헤라자드에 머물며 바바의 방을 그가 떠난 그대로 지키고, 정원을 가꾸고, 그곳을 찾아오는 순례자들을 맞이했다. 메헤라는 전 세계에서 바바를 사랑하는 수많은 이들에게 바바와 이어지는 살아 있는 연결고리가 되었다.

메헤라는 1989년 5월 20일 메헤라자드에서 세상을 떠났다. 메헤르 바바가 생전에 남긴 지시에 따라 메헤라의 마지막 안식처는 메헤라바드에 있는 바바의 사마디 곁에 마련되었다. 그 자리는 사랑하는 님과 그가 사랑한 이 사이의 특별한 영적 유대를 영원히 상징한다.

메헤라는 1월에 태어났지만 1968년부터는 12월 22일에 생일을 기념해 왔다. 1968년에는 조로아스터력으로 생일이 그날이었고, 그해가 메헤르 바바가 육신으로 함께하던 때에 생일을 기념한 마지막 해였기 때문이다. 메헤라의 이야기는 메헤라 본인의 녹음테이프를 바탕으로 데이비드 펜스터가 쓴 세 권짜리 『메헤라-메헤르: 신성한 로맨스』에 정성껏 기록되어 있다.

사진 갤러리(191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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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연표

1907

출생

1907년 1월 7일, 영국령 인도 수쿠르(현재 파키스탄)에서 제항기르와 다울랏마이 이라니의 딸로 태어남

1922

바바와의 첫 만남

10월 15일, 15세의 나이로 어머니와 함께 우파스니 마하라지의 사코리 아쉬람을 방문하여 메헤르 바바를 처음 만남

1924

영구 합류

메헤라바드에서 메헤르 바바에게 영구적으로 합류해 평생의 헌신 시작

1949-1952

새로운 삶 동반자

완전한 포기의 시기인 '새로운 삶'에 바바와 동행한 네 명의 여성 가운데 한 명

1952

자동차 사고

미국 오클라호마주 프라그 근처에서 메헤르 바바와 함께 자동차 사고로 심각한 두부 부상을 입음

1989

서거

1989년 5월 20일 메헤라자드에서 세상을 떠남. 바바의 지시에 따라 메헤라바드의 바바 사마디 곁에 안장됨

말씀

“

나를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매일 마지막에 옵니다. 왜 그럽니까? 다시는 그러지 마십시오.

(1924년 퀘타. 바바가 손수 식사를 나누어 주었는데, 몹시 수줍음을 타던 메헤라는 늘 줄 맨 끝에 섰다. 한번은 그 수줍음에 화가 난 바바가 그녀의 접시를 내던졌다가, 이내 다정하게 이렇게 말했다.)

“

스토브에서 불이 타오르듯, 당신의 가슴에도 사랑의 불이 타올라야 합니다!

(1924년 이라니 맨션. 디저트를 망친 메헤라와 코르셰드를 꾸짖은 다음 날, 바바는 직접 그들과 함께 요리하며 메헤라에게 음식 하나를 가르쳐 주고는 화덕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

오늘부터 당신은 내 시중을 들 것입니다.

(1924년 메헤라바드. 메헤라와 다른 다섯 여인이 그곳에 처음으로 상주하게 된 직후의 일이다. 그 뒤로 그녀는 바바의 차를 준비하고 옷을 빨고 접시와 잔을 닦았다.)

“

이렇게 매일 내 발을 주물러 주면, 당신을 바바잔처럼 만들어 주겠습니다!

(1924년 12월 아흐메드나가르역. 봄베이행 기차가 떠나기 전 바바는 메헤라를 자기 칸으로 불러 발을 주무르게 했고, 그녀가 주무르기 시작하자 불쑥 이렇게 말했다.)

“

내가 밀어내더라도 절대 나를 떠나지 마십시오. … 여러분은 항상 나를 붙잡고 있어야 합니다.

(1924년 12월 봄베이. 일을 위해 화난 척하며 여인들을 집에서 내보냈던 다음 날, 바바가 메헤라와 나자, 다울랏마이에게 한 말.)

“

사코리에 머물고 싶다면 그래도 됩니다. 하지만 당신이 메헤라바드로 돌아오면 나는 기쁠 것입니다.

(1925년 2월 메헤라바드. 바바는 메헤라를 며칠간 사코리에 보냈는데, 우파스니 마하라지의 제자 두르가바이가 그녀에게 그곳에 머물라고 권했다. 며칠 뒤 바바는 마사지 편에 이 편지를 보냈다.)

“

크리슈나의 라다에 대한 사랑이 그러했듯, 당신에 대한 나의 사랑도 그렇습니다. 당신은 라다가 크리슈나를 사랑한 것처럼 나를 사랑합니다.

(1925년 메헤라바드. 우체국 베란다에서 바바가 메헤라에게 라다와 크리슈나 이야기를 들려준 뒤 한 말.)

“

당신을 향한 내 사랑은 다른 누구에게보다 훨씬 큽니다.

(1928년 토카. 여인들이 바바를 목욕시키며 메헤라는 그의 발을 씻었다. 여인들은 그녀를 향한 바바의 사랑이 크리슈나가 라다를 사랑한 것처럼 각별하다고 느꼈다.)

“

단식과 머스트들과의 일은 나를 지치게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는 내적으로 아주 강도 높게 일해 왔고, 모든 것을 정리해 놓았습니다.

(1940년 3월 1일 방갈로르의 링크스. 단식 중이던 바바가 머스트 아쉬람에서 여전히 머스트들의 변소를 청소하고 있었고, 메헤라가 그토록 쉬지 않고 일하는 그를 걱정하자 바바가 대답한 말.)

“

당신들이 모두 수녀라도 되었습니까? 옷차림이 영성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옷을 갈아입고 갑시다!

(1924년 말 봄베이. 바바가 찬지에게 여인들을 영화관에 데려가라고 했는데, 다울랏마이와 메헤라, 나자가 평소의 사리 차림으로 나서려 하자 바바가 한 말.)

“

각자의 의무를 다하고, 내가 이미 내린 모든 지시를 따르십시오. … 걱정하지 말고, 언제나 나를 생각하십시오.

(1930년. 은둔에 들어가기 전 바바는 굴마이와 메헤라, 마니, 코르셰드를 따로 만나 은둔에 대해 알리며 이렇게 일렀다.)

“

그들은 내 불씨 하나를 가지고 가서 어디서나 내 사랑을 퍼뜨릴 것입니다!

(1958년 메헤라바드, 사하바스가 끝날 때. 메헤라바드 옆 선로에 멈춰 섰던 특별 열차가 순례자들을 태우고 떠나자 바바가 메헤라와 여인들을 돌아보며 한 말.)

영상

외부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