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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티 이라니

케이티 이라니

Katie Irani

케이티 루시 이라니

고허의 동생, 아쉬람 요리 담당, 훗날 메헤라자드의 이야기꾼

1920년 2월 27일 ~ 2009년 5월 29일
인도 아흐메드나가르 → 인도 메헤라자드

전기

케이티 이라니는 1920년 2월 27일 아흐메드나가르의 외가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루시 팝으로 불린 루시 제항기르 이라니와 코르셰드 바누 이라니였고, 언니는 고허 이라니 박사, 다른 형제로 로샨, 잘, 아스피가 있었다. 가족은 퀘타에 살았는데, 1923년 메헤르 바바가 퀘타의 루시 집에 머물 때 고허는 일곱 살, 케이티는 세 살이었다. 바바는 루시의 아이들 모두와 놀아 주었지만 특히 두 자매에게 마음을 쏟았고, 어린 케이티는 아버지에게 바바는 참 훌륭한 신사이니 떠나지 못하게 하라고 졸랐다.

바바는 1929년과 1931년에도 퀘타의 가족 집에 머물렀는데, 1931년에 케이티는 열한 살이었다. 바바는 그녀를 놀려 주고, 학교 작문을 불러 주며, 자신이 주는 것은 결코 거절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케이티는 어린 나이에 아흐메드나가르 쿠쉬루 쿼터스의 외가 친척들에게 보내져 살았고, 가족도 뒤에 그곳에 정착했다. 1938년 무렵 그녀는 방학마다 고허와 함께 메헤라바드에 와서 바바를 뵈었다.

1938년 12월, 열여덟 살의 케이티는 블루 버스 투어가 시작될 때 하이데라바드에서 바바와 여성 만달리에 합류하도록 허락받았고, 이후 10년 넘게 여성 아쉬람에서 지냈다. 처음에는 마누 제사왈라와 함께 여성들의 식사를 맡았고, 바바를 위해 올린 익살스러운 촌극에서 마니를 도우며 연기도 했는데, 한번은 무솔리니 역을 맡았다. 그녀는 방갈로르의 링크스와 메헤라바드 언덕의 격리된 여성 거처에서 살았고, 그곳에서 키티 데이비에게 타자와 속기를 배웠다.

1949년 새로운 삶이 시작되자 바바는 케이티를 봄베이의 나리만과 아르나바즈 다다찬지 집으로 보내 일자리를 얻게 했다. 그녀는 일본 영사관에서 일하게 되었고, 바바의 지시 아래 수십 년 동안 여러 일본 총영사의 개인 비서로 일했다. 봄베이는 결코 그녀에게 맞지 않았지만 그녀는 그곳에 머물며 새로운 삶의 엄격한 명령을 지켰고, 주말이면 구루프라사드나 메헤라자드 등 바바가 허락하는 곳으로 가서 흉내와 우스꽝스러운 분장으로 자주 바바를 즐겁게 했다.

1978년 영사관에서 은퇴한 케이티는 메헤라자드의 상주 여성 만달리에 다시 합류했다. 그녀는 언니 고허의 진료소에서 주사를 놓고 상처를 소독하며 도왔고, 생을 마칠 때까지 메헤라자드의 부엌을 돌보았다. 타고난 이야기꾼이었던 그녀는 메헤라의 포치에서, 또 해외에서 순례자들에게 바바와 함께한 삶을 들려주었고, 만년에는 그 이야기를 영상으로 기록했다. 그녀는 자신이 새로운 삶을 한 번도 떠난 적이 없는 것 같다고 자주 말했다. 요리책 『Cooking with Katie』(2001)도 펴냈다. 케이티는 2009년 5월 29일 메헤라자드에서 89세로 세상을 떠났고, 같은 날 메헤라바드에서 화장되어 유해는 메헤라바드 언덕의 바바의 사마디 근처에 안치되었다.

사진 갤러리(27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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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연표

1923

세 살 때 퀘타의 가족 집에 머문 메헤르 바바를 만남

1929

5월, 바바가 다시 퀘타의 루시 집에 머물며 고허와 케이티에게 특별히 그들을 만나려고 먼 길을 왔다고 말함

1931

바바가 또다시 퀘타의 가족 집에 머묾. 자두에 얽힌 가르침

1938

12월, 블루 버스 투어가 시작될 때 하이데라바드에서 바바와 여성 만달리에 합류

1939

방갈로르의 링크스 방갈로에서 여성들과 함께 생활

1940

12월, 실론에서 돌아오던 길에 람나드에서 뜨거운 차를 나르다 미끄러져 화상을 입음. 바바는 명령을 어기고 그녀를 만진 카카 바리아를 꾸짖음

1949

새로운 삶이 시작되자 일자리를 얻도록 봄베이로 보내져 일본 영사관에서 일함

1957

10월 바바가 봄베이의 아시아나에 머무는 동안 흉내와 재미있는 이야기로 바바를 즐겁게 함

1962

인도-중국 전쟁 때 국경으로 파견된 육군 소령인 오빠 아스피에게 바바의 펜던트를 지니게 함. 그는 14일간의 퇴각 끝에 인도 국경에 이름

1963

4월, 명을 받고도 일본 영사관에 휴가를 청하지 않아 푸나에 가지 않았다가 심한 허리 통증을 겪음. 바바는 고허를 통해 약을 보냈고, 바바와 한 시간을 보낸 뒤 통증이 절반으로 줄어듦

1963

12월 23일 메헤라자드에서 열린 메헤라의 생일 축하 자리에 남장을 하고 나타나 여성들을 감쪽같이 속임

1978

영사관에서 은퇴하고 메헤라자드의 상주 여성 만달리에 다시 합류

2001

워딘이 삽화를 그린 요리책 『Cooking with Katie』를 펴냄

2009

5월 29일 메헤라자드에서 세상을 떠났고, 유해는 바바의 사마디 근처에 안치됨

말씀

“

나는 떠나지만 당신은 계속 나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겠습니까?

(1923년 6월 퀘타: 떠나기 전, 바바는 성냥갑 두 개를 끈으로 이어 만든 "전화"로 세 살배기 케이티에게 말했다.)

“

내가 특별히 여러분을 만나려고 얼마나 먼 길을 왔는지 압니까? 여러분은 얼마나 복이 많은지 모릅니다.

(1929년 5월, 퀘타의 아버지 루시의 집에 도착해 고허와 케이티에게 한 말.)

“

내 방에 앉아 있는 이 작은 꽃은 누구입니까?

(1931년 퀘타: 그의 방 한구석에 수줍게 앉아 있던 열한 살 케이티를 가리키며.)

“

절대로 거짓말하지 마십시오! 누군가와 이야기한 뒤에 쓴 것이라고 말하십시오.

(1931년 퀘타: 케이티의 학교 에세이를 불러 준 뒤, 그녀가 선생님께 자기가 직접 썼다고 말하겠다고 하자.)

“

좋습니다, 친구로 지냅시다. 좋든 싫든 언제나 내 뜻을 따르십시오!

(1931년 퀘타: 떠나는 척하며 케이티에게 새끼손가락을 들어 보인(아이들 사이에서 말을 하지 않는 사이가 되었다는 표시) 바바는, 그녀가 돌아와 달라고 애원하자 돌아와 악수하며 말했다.)

“

당신이 명령을 따르는 일을 지체했기 때문에, 내가 마니와 내 일을 위해 하려던 모든 것이 효력을 잃었습니다. 다른 모든 일에서는 늦는 데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순종에서의 지체는 불행한 비극입니다!

(1939년: 바바는 케이티에게 매일 오후 3시에 마니에게 신선한 오렌지주스를 주라고 지시했다. 어느 날 그녀는 오렌지를 짜는 데 시간이 더 걸렸다며 3시 5분에 주스를 가져갔다.)

“

케이티는 나리만이 찾아줄 속기 타이피스트나 점원 같은 일을 해야 합니다.

(1949년 8월: 새로운 삶에 동행하지 않는 여성들에게 바바가 내린 지시. 케이티는 봄베이의 나리만과 아르나바즈 다다찬지의 집에서 지내게 되었다.)

“

왜 밖으로 나갔습니까? 안으로 들어가라고 했습니다. 내가 말한 대로 정확히 해야 합니다.

(1963년 4월 푸나: 바바가 케이티와 아르나바즈에게 안으로 들어가 메헤라를 찾아뵈라고 했지만, 케이티는 방 밖에 벗어 둔 샌들을 가지러 먼저 밖으로 나갔다.)

“

사람들이 당신들을 보면, 메헤르 바바의 추종자들은 하루 종일 카드놀이밖에 하지 않는다고 말할 것입니다! 우리는 낯선 마을에 와 있습니다. 우연히 보는 사람에게 당신들의 카드놀이가 얼마나 나쁜 인상을 줄지 잠깐만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들 당나귀 대가리들은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나는 그것 자체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불쾌한 결과가 뒤따르지 않도록 아주 사소한 것까지 살펴야 합니다.

(1940년 4월 암볼리: 케이티, 아르나바즈, 나르기스, 실라 등이 방갈로 베란다에서 카드놀이를 하고 있을 때 바바가 뜻밖에 나타나 꾸짖었다.)

“

모든 것이 끝났습니다. … 오늘 나는 너무 행복합니다. 너무나 자유롭습니다. 새로운 삶이 시작됩니다.

(1949년 10월 15일 메헤라바드: 새로운 삶을 하루 앞두고 케이티와 나자가 봄베이로 떠날 때, 바바는 환하게 웃으며 그들과 함께 언덕을 내려갔다.)

주요 이야기

자두

1931년 퀘타에서 열한 살 케이티가 바바에게 자두 한 쟁반을 가져갔다. 바바가 하나를 그녀에게 내밀자, 그녀는 바바에게 주는 것이라 생각하고 공손히 사양했다. 바바는 짐짓 언짢은 기색을 보이며 찬지를 통해 일렀다. "내가 무언가를 줄 때는 설령 좋아하지 않더라도 결코 거절해서는 안 된다고 이 아이에게 설명해 주십시오." 그러고는 그녀를 다정히 안아 주며 이제 자신이 주는 것은 무엇이든 받을 것인지 물었다. 그녀가 그러겠다고 하자 바바는 커다란 자두를 그녀의 벌린 입 앞까지 가져갔다가 자기 입에 쏙 넣었고, 케이티는 웃음을 터뜨렸다.

물에 빠진 암탉

블루 버스 시기에 암탉 한 마리가 빗물이 고인 구덩이에 빠져 죽었는데, 엘리자베스 패터슨은 그 닭이 추위에 기절했을 뿐이라 여기고 울면서 바바에게 데려왔다. 바바는 닭을 들고 케이티와 마누가 요리하던 부엌으로 가서 불에 쬐어 주라고 했다. 케이티는 구자라티어로 닭이 이미 죽었다고 말했다. 바바는 눈을 찡긋하고는 엘리자베스에게 이 닭이 자신 앞에서 죽는 것은 큰 행운이라고 일렀고, 케이티는 곧바로 장단을 맞춰 닭이 죽었다고 알렸다. 그렇게 엘리자베스는 닭의 죽음을 받아들였다.

메헤라 생일날의 불청객

1963년 12월 23일, 메헤라의 생일을 축하하려고 250명가량의 여성이 메헤라자드에 모였다. 메헤라가 있어 남자들의 출입이 금지된 그날, 커다란 노란 헝겊을 덧댄 흰 바지에 검은 코트, 안경, 파르시 모자를 쓴 남자가 메헤르 바바를 만나겠다고 외치며 밀고 들어왔다. 여성들이 비명을 지르며 그를 밀어내려 하는 동안 바바는 미소 지으며 앉아 있었다. 그 남자가 메헤라 쪽으로 다가가고서야 그가 라노에게 분장을 받은 케이티임이 드러났다. 조금 뒤 그녀는 일본 게이샤 차림으로 다시 나타났고, 바바의 청으로 높은 목소리로 일본 노래를 불러 모두를 배꼽 잡게 했다.

성냥갑 전화

1923년 6월 바바는 퀘타의 루시 가족 집에 머물렀다. 어느 날 바바는 자신의 어린 시절 장난을 떠올리고는 성냥갑 두 개를 가져오게 해 끈으로 이었다. 한쪽 끝은 자신이 갖고 다른 쪽은 세 살배기 케이티에게 주었다. 이 "전화"로 바바가 말했다. "나는 떠나지만 당신은 계속 나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겠습니까?" 케이티가 답했다. "바바, 제가 어떻게 당신을 잊겠어요?" 떠날 때 바바는 고허와 케이티의 입맞춤을 받았고, 열차가 떠날 때 스승이 곧 돌아오길 조용히 바라던 루시는 침묵 속에서 이런 응답을 받았다. "내 정원의 꽃봉오리를 여기 두었으니 나는 반드시 돌아와야 합니다."

바바가 불러 준 에세이

1931년 퀘타에 머물던 바바는 숙제를 하던 열한 살 케이티를 보고 에세이 한 편을 통째로 불러 주었다. 케이티는 훌륭하지만 너무 뛰어나서 선생님이 자기 글이 아닌 줄 알 것이라고 했다. 그럼 선생님께 뭐라고 할 것인지 바바가 묻자 케이티는 자기가 직접 썼다고 하겠다고 대답했다. 바바는 그녀의 귀를 잡고 말했다. "절대로 거짓말하지 마십시오! 누군가와 이야기한 뒤에 쓴 것이라고 말하십시오." 또 한번은 바바가 떠나는 척하며 계단을 내려가더니 그녀에게 새끼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아이들 사이에서 더는 말을 하지 않는 사이가 되었다는 표시였다. 슬퍼진 케이티가 돌아와 달라고 애원하자 바바는 돌아와 악수하며 말했다. "좋습니다, 친구로 지냅시다. 좋든 싫든 언제나 내 뜻을 따르십시오!" 수줍음 많던 소녀는 곧 바바가 캐럼 말을 포켓에 슬쩍 튕겨 넣는 것을 잡아내고 "바바, 속이고 계세요!"라고 외칠 만큼 대담해졌다.

아스피에게 준 바바의 펜던트

케이티의 오빠 아스피는 인도 육군 소령으로, 1962년 인도-중국 전쟁 때 국경으로 파견되었다. 떠나기 전 케이티는 그에게 군복 안에 늘 바바의 펜던트를 지니고 바바의 이름을 부르라고 부탁했다. 아스피는 바바를 믿지는 않았지만 존경은 했기에 이렇게 말했다. "좋아, 케이티. 너를 기쁘게 하려고 그것을 착용하겠어." 중국군에 포위된 그는 부하들을 이끌고 숲을 지나 깎아지른 바위를 오르고, 그런 곳에 있을 리 없다고 여긴 다리로 강을 건너 14일 만에 인도 국경에 이르렀다. 1963년 3월 바바는 아스피를 떠올리고 구루프라사드에서 에루치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게 했다.

영상

저서 및 출판물

케이티와 함께하는 요리

Cooking with Katie

저자

케이티의 요리책(2001년, 292쪽). 삽화는 워딘이 그렸다.

외부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