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티 이라니는 1920년 2월 27일 아흐메드나가르의 외가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루시 팝으로 불린 루시 제항기르 이라니와 코르셰드 바누 이라니였고, 언니는 고허 이라니 박사, 다른 형제로 로샨, 잘, 아스피가 있었다. 가족은 퀘타에 살았는데, 1923년 메헤르 바바가 퀘타의 루시 집에 머물 때 고허는 일곱 살, 케이티는 세 살이었다. 바바는 루시의 아이들 모두와 놀아 주었지만 특히 두 자매에게 마음을 쏟았고, 어린 케이티는 아버지에게 바바는 참 훌륭한 신사이니 떠나지 못하게 하라고 졸랐다.
바바는 1929년과 1931년에도 퀘타의 가족 집에 머물렀는데, 1931년에 케이티는 열한 살이었다. 바바는 그녀를 놀려 주고, 학교 작문을 불러 주며, 자신이 주는 것은 결코 거절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케이티는 어린 나이에 아흐메드나가르 쿠쉬루 쿼터스의 외가 친척들에게 보내져 살았고, 가족도 뒤에 그곳에 정착했다. 1938년 무렵 그녀는 방학마다 고허와 함께 메헤라바드에 와서 바바를 뵈었다.
1938년 12월, 열여덟 살의 케이티는 블루 버스 투어가 시작될 때 하이데라바드에서 바바와 여성 만달리에 합류하도록 허락받았고, 이후 10년 넘게 여성 아쉬람에서 지냈다. 처음에는 마누 제사왈라와 함께 여성들의 식사를 맡았고, 바바를 위해 올린 익살스러운 촌극에서 마니를 도우며 연기도 했는데, 한번은 무솔리니 역을 맡았다. 그녀는 방갈로르의 링크스와 메헤라바드 언덕의 격리된 여성 거처에서 살았고, 그곳에서 키티 데이비에게 타자와 속기를 배웠다.
1949년 새로운 삶이 시작되자 바바는 케이티를 봄베이의 나리만과 아르나바즈 다다찬지 집으로 보내 일자리를 얻게 했다. 그녀는 일본 영사관에서 일하게 되었고, 바바의 지시 아래 수십 년 동안 여러 일본 총영사의 개인 비서로 일했다. 봄베이는 결코 그녀에게 맞지 않았지만 그녀는 그곳에 머물며 새로운 삶의 엄격한 명령을 지켰고, 주말이면 구루프라사드나 메헤라자드 등 바바가 허락하는 곳으로 가서 흉내와 우스꽝스러운 분장으로 자주 바바를 즐겁게 했다.
1978년 영사관에서 은퇴한 케이티는 메헤라자드의 상주 여성 만달리에 다시 합류했다. 그녀는 언니 고허의 진료소에서 주사를 놓고 상처를 소독하며 도왔고, 생을 마칠 때까지 메헤라자드의 부엌을 돌보았다. 타고난 이야기꾼이었던 그녀는 메헤라의 포치에서, 또 해외에서 순례자들에게 바바와 함께한 삶을 들려주었고, 만년에는 그 이야기를 영상으로 기록했다. 그녀는 자신이 새로운 삶을 한 번도 떠난 적이 없는 것 같다고 자주 말했다. 요리책 『Cooking with Katie』(2001)도 펴냈다. 케이티는 2009년 5월 29일 메헤라자드에서 89세로 세상을 떠났고, 같은 날 메헤라바드에서 화장되어 유해는 메헤라바드 언덕의 바바의 사마디 근처에 안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