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파스니 마하라지의 인도
바바를 알기 전, 카이코바드의 가족은 우파스니 마하라지의 다르샨을 받으러 사코리에 갔다. 마하라지는 그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너희는 모두 내 사람이 아니라 메르완의 사람이다. 이제 가거라.'

Kaikobad Dastur
카이코바드 페람 다스투르
날마다 바바의 이름을 10만 번 되뇌고 기도를 낭송한 이
카이코바드 페람 다스투르는 조로아스터교 사제 계급 출신으로, 영적 여정 끝에 메헤르 바바의 만달리 가운데 가장 특별한 사람 중 하나가 되었다. 그는 바바의 신성한 실재를 엿볼 수 있었고, 그가 되뇌던 바바의 이름은 바바의 말대로 '그의 숨 그 자체'가 되었다.
1927년 바바를 만났을 때 카이코바드는 나브사리의 현직 파르시 사제였고, 1944년 무렵에는 봄베이에서 선 라이프 오브 캐나다 보험 회사의 수석 출납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의 가족을 바바에게로 이끈 것은 우파스니 마하라지였다. 마하라지는 그들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너희는 모두 내 사람이 아니라 메르완의 사람이다. 이제 가거라.' 1927년 5월 14일, 36세의 카이코바드는 소랍지 데사이의 권유로 메헤라바드에 와서 처음으로 바바의 다르샨을 받았다. 같은 해 그는 만사리(마니 베헤람 데사이)를 데려와 처음으로 바바를 만나게 했다.
1944년, 카이코바드는 자신을 온전히 내맡겼다. 가진 것을 모두 팔고, 7월 31일 아내 제르바이와 세 딸을 데리고 메헤라바드로 와서 평생 그곳에 머물렀다. 아내와 딸들은 메헤라바드 언덕에서 여성들과 함께 지냈고, 카이코바드는 하부 메헤라바드에 그를 위해 지은 작은 오두막에 머물며 오로지 바바의 일에 헌신했다.
카이코바드의 영적 수행은 그 강도가 놀라웠다. 그는 12년 넘게 날마다 바바의 이름을 10만 번씩 되뇌었는데, 야 예즈단, 사랑하는 하나님, 파라마트마, 아후라마즈다, 파라브라흐마, 알라, 전능하신 하나님, 쿠다 등 하나님의 여러 이름을 사용했다. 바바는 이 수행을 두고 '내 이름이 그의 숨 그 자체가 되었습니다'라고 말했다.
1946년, 카이코바드는 메헤라바드에서 처음으로 바바의 신성을 엿보았다. 바바는 훗날 이런 체험이 망상은 아니지만 훨씬 더 높은 경지인 합일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 첫 엿봄은 시작에 불과했다. 1953년 8월 31일 데라둔에서 그는 훨씬 더 깊은 체험을 했다. 말로 다할 수 없이 밝은 빛 한가운데 바바가 있었고, 그 빛에서 '세계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체험이 너무도 강렬해 그는 하마터면 육신을 떠날 뻔했다.
카이코바드는 성자 키르팔 싱에게 자신의 내적 체험을 이렇게 들려주었다. '당신에게는 햇빛이 아주 밝겠지요. 그러나 나는 내 가슴속의 빛도 봅니다. 그 빛이 너무나 밝아서, 내 안에서 보는 이 빛 앞에서는 태양 수백 개의 빛도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는 의식을 잃고 쓰러집니다.' 그는 바바의 요청으로 어윈 럭에게, 자기 존재 안에서 행성과 태양계와 세계들이 돌고 있는 것을 본다고도 말했다. 키르팔 싱은 크게 감명받아, 그런 체험은 바바의 축복이 있어야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바바는 자신이 '우주적 작업'이라 부른 일을 위해 은둔하며 카이코바드와 함께 일했다. 그 방식은 특이했다. 카이코바드가 의자 위에 서서 하나님의 일곱 이름을 되뇌면, 그때마다 바바는 몸을 숙여 이마를 카이코바드의 발에 댔다. 이 일은 몇 시간이고 이어지며 수천 번 되풀이되었다. 1959년에 바바는 '그 작업에서는 오직 카이코바드만이 나를 도울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카이코바드 자신조차 바바가 이 수행을 통해 실제로 무슨 일을 이루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바바는 카이코바드를 각별히 높이 평가했다. '나는 날마다 카이코바드에게 절합니다. 그는 바바를 마땅히 보아야 할 모습 그대로 보기 때문입니다. 그는 받을 수 있는 한 최대로 나의 다르샨을 받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의 발에 내 머리를 댑니다.' 머스트 여행이나 모임에 나서기 전이면 바바는 카이코바드에게 자신의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해 달라고 했다. 카이코바드가 사양하자, 바바는 계속 순종하라고, 바바가 원한다면 발로 차는 일까지도 따르라고 했다.
1966년, 카이코바드의 딸 메헤루가 요리하다 불이 옮겨붙어 화상으로 세상을 떠났다. 가족이 보인 반응은 그들의 항복이 얼마나 깊은지 드러냈다. 아내 제르바이는 카이코바드가 바바의 일을 떠나 달려오지 않은 것을 오히려 기뻐하며 말했다. '메헤루가 바바께 갔는데 우리가 왜 걱정하겠어요?' 바바는 메헤루가 윤회의 고리에서 벗어났다고 말했다.
1967년 9월, 카이코바드는 개미에게 물린 일로 넘어져 대퇴골이 부러졌다. 바바는 울었다. 카이코바드의 고통 때문이 아니라 바바 자신의 우주적 작업이 큰 차질을 빚었기 때문이었다. 바바는 말했다. '나는 카이코바드 때문에 우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일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카이코바드는 메헤라자드에서 바바의 마지막을 함께한 가장 가까운 열네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
1959년 10월 바바는 이렇게 말했다. '카이코바드는 이 몸을 떠나면 윤회의 고리에서 벗어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몸을 받을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바바는 이어서, 만달리의 일원인 카이코바드는 그보다 더한 하나님과의 합일을 얻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카이코바드는 1976년 1월 20일 메헤라바드에서 세상을 떠나 하부 메헤라바드의 남성 묘지에 안장되었다. 그는 신성을 엿보았고, 바바의 우주적 작업을 위한 도구로 쓰인 사람이었다.
“내 지시를 한 치도 어김없이 따른다면, … 당신은 내가 하는 말을 이론으로만 이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로 어떤 것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1927년 5월 14일 메헤라바드: 소랍지 데사이의 권유로 카이코바드가 나브사리에서 첫 다르샨을 받으러 왔고, 개인 면담에서 바바는 그에게 하나님의 네 가지 상태와 믿음의 네 유형을 설명했다.)
“내가 당신을 여기 부른 것이 그런 반복을 계속하라고 해서입니까, 아니면 내가 하는 말을 들으라고 해서입니까? 봉사자들은 자기 성향과 즐거움을 버려야 합니다. 그래야만 참된 봉사자가 될 수 있습니다!
(1951년 2월 마하발레슈와르, 새로운 삶 기간: 바바가 봉사자 동반자들에게 설명하는 동안에도 카이코바드는 바바의 이름을 계속 되뇌고 있었다.)
“나는 꿈에서 매우 아름다운 소녀를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 내가 그녀의 꿈을 꾸지 않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1951년 12월 26일 메헤라자드, 마노나쉬 작업 중 메헤라의 생일: 카이코바드는 그대로 기도했지만, 이튿날 바바는 같은 꿈을 꾸었다고 또 투덜거렸다.)
“그 일의 성공은 당신[카이코바드]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이길 때까지 싸워야 하며, 그중 50퍼센트는 당신 손에 달려 있습니다!
(1953년 6월 데라둔: 카이코바드와 자신의 단식을 의논하면서, 바바는 계획이 틀어졌다고 다시 말했다.)
“구스타지는 내가 참으로 누구인지 깨달았지만, 그래도 그가 하나님과 하나가 되도록 기도하세요.
(1957년 11월 4일 메헤라바드: 구스타지가 세상을 떠나고 며칠 뒤, 바바는 휠체어를 타고 구스타지의 무덤 곁으로 왔다. 카이코바드는 장례 때까지 그곳에 머물며 기도했었다.)
“당신의 기도 덕분에 이제는 좀 나아졌습니다.
(1958년 9월 29일 메헤라자드, 바바의 은둔 기간: 안절부절못하고 앓으며 매우 고된 밤을 보낸 뒤, 바바는 아침에 남자들 가운데서 카이코바드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방금 한 말이 무엇이든 그것에 대해 나를 용서해 주도록 하나님께 기도하고, 여러분 [만달리]도 모두 그 기도에 함께하세요. 이 기도에 나와 함께하는 것은 여러분의 행운입니다. 어쨌든 운이 있든 없든, 여기에 가슴을 다 쏟으세요!
(1953년 6월 말 데라둔: 만달리에게 긴 말을 한 뒤, 바바는 카이코바드에게 자신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청하며 남자들도 함께하라고 했다.)
“내가 모두를 물러가게 한 뒤, 어윈 럭에게 당신의 체험을 이야기해 주십시오. 두 사람은 밖의 벤치에 앉아 있으십시오.
(1960년 6월 푸나 구루프라사드: 카이코바드는 메헤라바드에서 와 있었다. 밖의 벤치에서 그는 미국인 어윈 럭에게 자기 존재 안에서 행성과 태양계와 세계들이 돌고 있는 것을 본다고 이야기했다.)
바바를 알기 전, 카이코바드의 가족은 우파스니 마하라지의 다르샨을 받으러 사코리에 갔다. 마하라지는 그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너희는 모두 내 사람이 아니라 메르완의 사람이다. 이제 가거라.'
바바는 키르팔 싱이 카이코바드의 내적 체험을 듣도록 이끌었다. 카이코바드는 자기 안에서 태양 수백 개보다 밝은 빛을 본다고 말했다. 키르팔 싱은 크게 감명받아 이렇게 말했다. '그런 체험은 바바의 축복이 있어야만 할 수 있습니다! 나는 그런 체험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은둔 중에 카이코바드는 의자 위에 발을 올리고 서서 하나님의 이름들을 되뇌었다. 그때마다 바바는 몸을 숙여 이마를 카이코바드의 발에 댔고, 이는 몇 시간이고 수천 번 되풀이되었다. 카이코바드 자신조차 바바가 무슨 일을 이루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1966년 딸 메헤루가 화상으로 세상을 떠났을 때, 카이코바드의 아내 제르바이는 남편이 바바의 일을 두고 달려오지 않은 것을 오히려 기뻐했다. 그녀는 '메헤루가 바바께 갔는데 우리가 왜 걱정하겠어요?'라고 말했다. 부부 누구도 슬퍼하지 않았다. 완전한 항복을 보여 주는 놀라운 본보기였다.
바바가 카이코바드에게 가니의 뺨을 때리라고 명했을 때, 그는 존경하는 마음에 머뭇거렸다. 바바는 그의 불순종이 어떤 따귀보다도 자신을 더 아프게 한다며 말했다. '세상의 호의를 얻고 싶다면 나를 위해 살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내 마음에 들도록 애쓴다면 세상이 당신의 발아래 엎드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