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뚱한 머리카락 모으기
칸에서 이레네는 바바의 방을 청소하며 베개에서 찾은 머리카락을 소중히 모아 두었다. 의자 옆 베개에서도 머리카락이 나오자 그것도 모으면서, 바바는 왜 두 군데서 주무실까 궁금해했다. 며칠 뒤 그녀는 카카 바리아가 밤 당번을 설 때 그 베개를 머리 뒤에 받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 모은 것은 카카의 머리카락이었다.

Irene Billo
이레네 루스 빌로
스위스인, 바바의 방 청소, 유럽에서 바바의 메시지 전파
“파드미니 또는 파드마(연꽃), 메헤르 바바가 준 이름”
이레네 루스 빌로는 1916년 9월 22일에 태어났다. 아버지 오토 빌로는 국제 무역을 하던 사업가로, 메헤르 바바를 처음 만난 스위스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1936년 그녀는 아버지의 비밀 찬장 안에서 바바의 사진을 발견하고 마치 바바가 직접 와 있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그 뒤로 그녀는 헤디 메르텐스의 집에서 열리던 스위스 추종자들의 모임에 나갔다.
1937년 8월 바바가 칸에 머물며 살림을 도울 사람이 필요하자, 헤디는 스무 살의 이레네를 보냈다. 빌라 칼다나에서 그녀는 바바의 방을 청소하고 장을 보았으며, 집에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자기도 언젠가 인도에 갈 수 있는지 묻자 바바는 그러라고 했다. 1938년 6월 28일 그녀는 나딘 톨스토이, 헤디 메르텐스, 화가 헬렌 담과 함께 서양 여성 가운데 가장 어린 나이로 봄베이에 도착했고, 메헤라바드 언덕의 여성 아쉬람에 합류했다. 도착하자마자 황달에 걸렸는데, 바바의 지시로 라노 게일리가 그녀를 간호해 회복시켰다. 바바는 그녀에게 '연꽃'이라는 뜻의 파드미니라는 이름을 주었고, 인도에서 그녀는 파드마라고 불렸다.
이레네는 실용적으로 자란 사람이었다. 언덕 위 병원 환자들의 옷을 지었고, 다스투르 자매에게 옷 만드는 법을 가르쳤으며, 바바가 모은 말, 당나귀, 개, 거위, 심지어 돼지까지 동물들을 돌보았다.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과 바느질 솜씨 덕분에 그녀는 메헤라와 가까워졌다. 블루 버스 여행에서는 바바의 지시로 만사리처럼 1년 동안 침묵을 지키며 여성들과 함께 다녔고, 메헤라바드와 마하발레슈와르 등지에서 바바와 여성들 곁에 머물렀다. 1940년 10월 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때, 바바는 그녀에게 아버지는 무척 운이 좋았으며 이제 자유롭다고 일렀다.
바바는 "2년 동안 오십시오"라고 했지만 그녀는 8년을 머물렀다. 1946년 3월 바바는 그녀를 스위스로 돌려보냈다. 집안 형편이 기울어 그녀는 지멘스에서 전화 교환원으로 일했고, 나중에는 시각 장애인 교환원들을 가르쳤다. 1952년 바바가 미국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뒤 스위스에 왔을 때 이레네는 공항에서 바바를 맞고 헤디 메르텐스와 함께 바바와 여성들을 도왔다. 1956년에는 바바의 취리히 경유 일정을 준비해 유럽인 약 35명이 바바를 만나게 했고, 런던까지 동행했다.
1983년 이레네는 37년 만에 처음으로 인도를 다시 찾았다. 메헤라자드에서 메헤라와 여성 만달리를 만났고, 메헤라바드 언덕에서 만사리와 몇 시간씩 이야기를 나누며 마치 바바가 나식에 갔다가 다음 주에 돌아올 것만 같다고 말했다. 그녀는 1986년 7월 25일 세상을 떠났다.
“말을 타다가 그 말이 통제를 벗어나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1940년, 마음은 "좋은 종이지만 나쁜 주인"이라는 이야기를 마친 뒤 이레네의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당신은 기뻐해야 합니다. 당신의 아버지는 아주 운이 좋았습니다. 그는 비베카난다처럼 아무 고통 없이 죽었습니다. 그는 자유롭습니다.
(1940년 11월 27일, 이레네의 아버지 오토 빌로의 죽음에 대해)
“마가렛과 이레네는 내가 시키는 대로 하되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면, 죽을 기회를 얼마든지 갖게 될 것입니다.
(1941년 3월, 마가렛 크래스크와 이레네를 유럽에 보내 메시지를 전하게 하려 하며)
“당신의 사랑이 여기 나와 함께 있는 동안, 나는 거기서 당신과 함께 있습니다.
(1962년 동서 집회 때 건강이 나빠 오지 못한 스위스의 이레네에게 보낸 전보)
“당신이 초조해지거나 화를 내면 말을 통제할 수 없습니다. 당신이 마음을 다스리면 그 동물은 얌전해집니다. 통제를 잃으면 기수도 말도 다 망합니다. 말은 바로 마음과 같습니다. 통제되면 유익하지만, 주인이 되면 위험합니다.
(1940년 10월 메헤라바드 언덕. 기분이 좋지 않던 이레네가 말이 날뛰면 따라야 할 규칙이 있다고 대답하자, 바바는 자기 질문의 뜻을 이렇게 풀어 주었다.)
“나와 함께 있는 이들의 친척들은, 나를 알든 모르든, 심지어 나를 믿지 않더라도 모두 구원을 얻습니다. 크리슈나가 말했습니다, '그처럼 복된 이들의 72대가 해탈을 얻는다.'
(1940년 11월 27일 실론. 이레네의 아버지 오토 빌로가 고통 없이 죽었고 이제 자유롭다고 말한 뒤, 바바는 자기와 함께 사는 이들의 친척에 대해 말을 이었다.)
“내가 말하기 전에 살아 있다면, 서양에서 돌아와야 합니다. 영성은 삶과 육신을 영(0)으로 봅니다. 그러니 우리 영적인 사람들이 죽지 않는다면, 물질주의자들도 결코 죽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그들은 조국을 위해 죽어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모두 죽어야 합니다. 아니, 진작 죽었어야 합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정말 곧 죽어야 합니다. … 그러니 떠날 준비를 하고, 머물 준비도 하십시오!
(1941년 3월 16일, 이레네와 마가렛 크래스크, 노리나, 나딘, 엘리자베스에게. 바바가 그들을 유럽과 미국으로 보내 자기 메시지를 전하게 하는 일을 의논한 다음 날이었다.)
칸에서 이레네는 바바의 방을 청소하며 베개에서 찾은 머리카락을 소중히 모아 두었다. 의자 옆 베개에서도 머리카락이 나오자 그것도 모으면서, 바바는 왜 두 군데서 주무실까 궁금해했다. 며칠 뒤 그녀는 카카 바리아가 밤 당번을 설 때 그 베개를 머리 뒤에 받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 모은 것은 카카의 머리카락이었다.
한번은 제자리걸음이라고 느낀 이레네가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고 바바에게 털어놓았다. 바바는 손가락으로 두 계단 올라갔다가 한 계단 내려오기를 거듭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녀는 이것이 영적 교만에서 자신을 지켜 준다는 것을 깨달았다. 실제로는 나아가고 있지만, 나아갔다고 느끼면 애쓰기를 멈추고 뒤로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1936년 11월 바바가 스위스에 왔을 때, 이레네는 바바를 알고 있었지만 너무 두려워 만나러 가지 못했다. 자신이 충분히 순수하지 않고, 바바가 자기 비밀을 모두 꿰뚫어 볼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친구들과 근처 식당에 몰래 가 있었고, 그 기회를 놓친 뒤 밤새 울었다. 바바는 만나기를 기대하던 사람이 오지 않았으니 다시 서양에 와야 하겠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1년이 채 되지 않아 헤디 메르텐스가 그녀를 칸에 있는 바바의 거처로 보냈다.
1939년 3월 블루 버스 여행 중 스위스 화가 헬렌 담이 보팔에서 대장염에 걸려 병원에 실려 갔다. 바바는 이레네에게 그녀 곁에 머물라고 지시했다. 3월 12일 일행이 사가르로 떠날 때도 헬렌이 회복되지 않아, 그녀는 이레네의 간호를 받으며 시민 병원에 남았다. 3월 23일 헬렌이 회복되자 두 사람은 자발푸르에서 바바와 다시 합류했다.
1952년 미국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뒤 바바는 스위스로 날아왔다. 이레네는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바바의 방문을 위해 차와 운전사도 마련해 두었다. 일행은 로카르노에 있는 헤디 메르텐스의 집 론코 데이 피오리로 가서 바로 옆집에 머물렀다. 둘 다 메헤라바드 아쉬람에서 지냈던 이레네와 헤디는 바바를 맞이하는 안주인이 된 것을 무척 기뻐했다. 바바가 밤 당직을 설 어린 소년을 곁에 두고 싶어 하자, 이레네는 열네 살 반 된 조카 콘라드 베네딕트 쾨트너를 데려왔다. 바바는 그를 마음에 들어 해서 라노, 닐루와 함께 매일 밤 두 시간씩 당직을 맡겼다.
1956년 서양 여행 때 바바가 취리히에 들르게 되자 이레네와 헤디 메르텐스가 준비를 맡았고, 이레네는 클로텐 공항의 회의실을 예약해 두었다. 그곳에서 유럽인 약 35명이 바바를 만났다. 바바는 헤디와 이레네, 막스 해플리거를 먼저 포옹한 뒤 다른 사람들도 한 사람씩 포옹했다. 그 뒤 이레네와 헤디, 막스는 바바와 만달리를 따라 런던까지 갔다. 비행기 안에서 바바가 자리를 바꾸게 하여 이레네는 바바 바로 뒤에 앉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