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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켄모어

해리 켄모어

Harry Kenmore

해럴드 라이오넬 켄모어

뉴욕의 미국인 척추지압사, 바바의 고관절 치료와 스승의 기도 암송

1910년 2월 10일 ~ 1971년 5월 13일

직업

척추지압사

전기

해럴드 라이오넬 켄모어는 흔히 해리라고 불렸고, 1910년 2월 10일에 태어났다. 소년 시절에는 우등생이자 운동선수였으며, 연기에도 재능이 있어 코미디 영화 「아워 갱」에서 대역을 몇 번 맡기도 했다. 열여섯 살에 시력을 잃었고 귀도 잘 들리지 않았다. 이런 장애를 안고 어떻게 살아갈지 오랫동안 힘겹게 고민한 끝에 척추지압사가 되어 뉴욕시에서 진료했다. 그는 진리를 구하는 사람이었고, 테이프로 성경을 들으며 깊이 공부했다.

1954년 그의 환자였던 아델 월킨이 바바의 『담화록』 일부를 읽어 주었다. 그 말씀에 끌린 켄모어는 저자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모두 알아보려 했고, 에니드 코르페와 마가렛 크래스크를 차례로 만났다. 1956년 7월 뉴욕 델모니코 호텔에서 바바를 직접 만났고, 바바 일행과 함께 머틀 비치의 메헤르 센터로 갔다. 그곳에서 바바는 약속대로 이 눈먼 척추지압사가 자기 얼굴을 손으로 만져 보게 했다. 『로드 메허』는 그가 눈은 멀었어도 가슴으로 바바의 사랑의 광휘를 받아들였다고 적는다.

바바는 1956년 12월 사타라 부근에서 일어난 교통사고로 고관절을 크게 다쳤다. 1957년 아델 월킨이 고허에게 켄모어를 추천했고, 켄모어도 직접 편지를 보내 치료를 자청했다. 바바는 전보로 그를 인도에 불렀다. 켄모어는 1957년 11월 5일 메헤르지와 함께 메헤라자드에 도착해 12월 5일까지 머물며, 직접 가져온 접이식 치료대에서 매일 아침과 저녁 한 시간씩 바바를 치료했다. 바바는 그의 사랑과 의사로서의 솜씨를 모두 칭찬했고, 그 덕분에 사고 후 처음으로 좋은 자세로 똑바로 설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또 그의 의학적 조언도 받아들여 인도에서 동서양 합동 사하바스를 열지 않기로 했다.

바바는 켄모어에게 자주 스승의 기도와 회개의 기도를 암송하게 했고, 그는 늘 우렁찬 목소리로 기도했다. 1958년 머틀 비치 사하바스에서, 메헤라자드와 구루프라사드에서, 1962년 푸나의 동서 집회에서도 그는 바바 앞에서 이 기도들을 낭송했다. 1959년 바바는 "해리 켄모어가 내 앞에서는 이 기도를 가장 잘 암송합니다"라고 말했다. 방문객들이 그의 목소리가 너무 크다고 여기자, 바바는 해리에게는 크게 기도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했다.

1958년 미국을 떠난 뒤 바바는 켄모어에게 "당신은 내 만달리의 한 사람입니다"라고 써 보냈다. 1959년 9월 1일부터 11월 4일까지 켄모어는 메헤라자드 본채 맞은편 별채에 머물렀다. 아침에는 푸카르와, 저녁에는 파드리와 산책했고,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으며, 바바가 "해리의 아기"라고 부른 테이프 녹음기를 늘 곁에 두었다. 바바가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고 농담으로 바바를 웃기기도 했다. 그의 교정 치료를 받은 어느 날 오후, 바바는 조금도 통증이 없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바바는 그를 위해 시를 여러 편 지었고, 지금까지 누구를 위해서도 시를 지은 적이 없다고 말하고는 사랑과 진리의 메시지를 전하는 횃불로 그를 미국에 돌려보냈다. 바바가 더 많이 걸을 수 있도록 만달리 홀에 돌과 시멘트로 바닥을 깔자고 한 것도 켄모어였고, 이 바닥은 1960년에 깔렸다.

1960년대에도 그는 여러 차례 인도를 짧게 찾았다. 1961년에는 알리지도 않고 구루프라사드의 다르샨 줄에 서 있다가 "내 사랑하는 팝을 보러 왔습니다!"라고 외쳤고, 1962년, 1963년, 1964년, 1965년, 1966년에도 바바를 찾아왔다. 뉴욕에서는 바바의 이름을 알리는 일에 힘썼다. 1965년에는 12월 사하바스를 위해 전세기를 마련했지만 바바가 사하바스를 취소했다. 1966년 6월 7일 바바는 그에게 해마다 뉴욕에서 바바의 생일과 침묵의 날을 기리는 공개 행사를 두 번 열라고 지시했다. 아바타 메헤르 바바 협회 회장으로서 그는 바비존 플라자 호텔에서 이 행사들을 열었고, 1967년에는 생일 축하 프로그램을 단파 방송으로 125개국에 내보냈다. 바바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인 그에게 사랑과 축복을 보낸다고 답전을 보냈다.

1968년 10월 바바는 그에게 "만달리로 오고, 나의 사랑 안에서 만달리로 사십시오"라는 전보를 보냈다. 그는 11월 1일부터 8일까지 메헤라자드에 머물렀다. 바바는 그가 만달리 가운데 한 사람이며 이듬해 7월부터는 메헤라자드에 영구히 머물 수 있다고 하면서, 그때는 부르기를 기다리지 말고 오라고 일렀다. 켄모어는 감사 편지에서 메헤라자드를 지구상에서 진정으로 "집"이라고 느끼는 유일한 곳이라고 썼다. 바바는 1969년 1월 31일 육신을 벗었다. 켄모어는 며칠 뒤 메헤라바드에 왔고, 2월 7일 정오 바바의 몸이 안장되기 직전에 스승의 기도를 드렸다. 바바가 초대한 대로 그는 그해 7월 27일 다시 와서 메헤라자드에서 한 달을 지냈다.

뉴욕으로 돌아온 그는 협회 모임을 이끌고 여러 도시에서 강연했으며, 그 가운데 일부는 협회 소식지 『The Way and the Goal』에 실렸다. 그는 1971년 5월 13일 간암과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협회 소식지는 메헤르 바바의 지시에 따라 그의 유해가 인도로 보내지고 재산의 대부분은 아바타 메헤르 바바 트러스트에 돌아갈 것이라고 알렸다. 그의 이야기와 강연은 훗날 래리 카라쉬와 리타 카라쉬가 엮은 『Harry』(2017)와 『Talks by Harry』(2023)로 출간되었다.

사진 갤러리(10 장)

생애 연표

1910

2월 10일 태어남

1926-1927

열여섯 살에 시력을 잃음. 이후 뉴욕에서 척추지압사가 됨

1954

환자 아델 월킨이 바바의 『담화록』을 읽어 줌

1956

7월 뉴욕 델모니코 호텔에서 바바를 만나고, 바바 일행과 함께 머틀 비치로 감

1956

메헤르 센터에서 바바가 자기 얼굴을 만져 보게 함

1957

10월 23일 바바의 다친 고관절을 치료하러 인도로 오라는 전보를 받음

1957

11월 5일부터 12월 5일까지 메헤라자드에 처음 머물며 아침저녁으로 바바를 치료함

1957

11월 27일 그의 의학적 조언도 받아들여 바바가 인도에서 동서양 합동 사하바스를 열지 않기로 함

1958

5월 머틀 비치 사하바스에서 기도를 낭송함. 바바는 그가 "100퍼센트 바바를 위한 사람"이라고 말함

1958

미국을 떠난 바바가 "당신은 내 만달리의 한 사람입니다"라고 써 보냄

1959

9월 1일부터 11월 4일까지 메헤라자드에 두 번째로 머묾. 그의 교정 치료 뒤 바바가 통증이 전혀 없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함. 바바가 그를 위해 시를 지음

1960

그의 제안으로 만달리 홀에 돌과 시멘트 바닥을 깖. 6월 20일 바바가 살펴봄

1961

5월 알리지 않고 푸나의 구루프라사드에 왔고, 5월 31일까지 매일 오후 바바를 찾도록 허락받음

1962

5월 푸나에서 2주 머묾. 11월 동서 집회에서 마이크로 스승의 기도를 낭송함

1963

5월부터 6월까지 푸나에서 3주 머물며 다르샨 행사에서 기도를 낭송함

1964

6월 푸나에서 1주일 머물며 날마다 구루프라사드를 찾음

1965

5월 구루프라사드 다르샨에 초대됨. 이후 12월 사하바스를 위해 전세기를 마련했으나 바바가 사하바스를 취소함

1966

6월 7일 바바가 해마다 뉴욕에서 생일과 침묵의 날 공개 행사를 열라고 지시함. 7월 16일 첫 침묵의 날 행사가 열림

1967

2월 아바타 메헤르 바바 협회 회장으로서 바비존 플라자 호텔에서 생일 축하 행사를 열고 단파 방송으로 125개국에 내보냄

1968

10월 4일 "만달리로 오라"는 전보를 받음. 11월 1일부터 8일까지 메헤라자드에 머물렀고, 바바는 이듬해 7월부터 그곳에 영구히 머물 수 있다고 말함

1969

2월 7일 정오, 메헤라바드에서 바바의 몸이 안장되기 직전에 스승의 기도를 드림

1969

7월 27일 바바가 초대한 대로 다시 와서 메헤라자드에서 한 달을 지냄

1971

5월 13일 간암과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남. 메헤르 바바의 지시에 따라 유해를 인도로 보낼 것이라고 협회가 알림

말씀

“

당신이 눈이 멀지 않았더라면 위대한, 세계적으로 명성 높은 외과의사가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면 바바[와의 접촉]는 없었을 것입니다!

(1957년 11월 메헤라자드. 켄모어가 바바의 고관절을 치료하던 때. 『로드 메허』는 그의 솜씨에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고 적는다.)

“

언젠가 내가 당신에게 참된 시력을 주겠습니다. 나를 잠깐 보여 주어, 그것만이 볼 가치가 있는 유일한 것임을 당신이 깨닫게 하겠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육신의 눈으로 보는 것은 아무 가치가 없습니다.

(1957년 11월 메헤라자드. 첫 방문 중이던 눈먼 척추지압사에게.)

“

당신은 내 만달리의 한 사람입니다. 나는 내 만달리에게 모든 것을 기대하고, 내 만달리는 나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습니다.

(1958년 미국을 떠난 뒤 바바가 켄모어에게 써 보낸 글.)

“

왜 하나님 앞에서 내일 일을 걱정합니까? 나는 당신의 가슴속에 있습니다. 나는 당신의 사랑을 압니다. 당신이 드러내는 것도, 드러내지 않는 것도 압니다. 당신에게 가장 유익한 것이 무엇인지 나는 압니다.

(1959년 9월 26일 메헤라자드. 미국으로 돌아갈 일을 생각하며 우울해하던 켄모어를 위로하며.)

“

사랑하는 해리여, 내게 순종하라. / 베드로가 그랬고, 요한이 그랬듯이. / 그대 가슴속에 그대의 대디[바바]를 간직한 채 / 떠나되 떠나지 않은 것처럼 가게 되리라! / 그대의 가슴은 사랑하는 메헤라자드에 남겨 두고, / 마음과 몸은 뉴욕에 두어라. / 영적으로는 바바를 먹고, / 육체적으로는 스테이크와 돼지고기를 먹어라. / 나는 그대가 그리울 것이고, / 그대는 내가 그리울 것이다. / 그러나 언젠가 우리는 하나가 되리라. / 그러니 떠나면서도 / 행복하게, 미소 지으며, / 여기서의 그대 임무는 끝났음을 알라.

(1959년 10월 29일 메헤라자드. 바바가 전날 밤 켄모어를 위해 짓고 에루치에게 읽게 한 두 편의 시 가운데 하나. 그날 아침 바바는 그에게 "나는 지금까지 누구를 위해서도 시를 지은 적이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

11월 1일 아침 메헤라자드 도착, 1주일 체류. 만달리로 오고, 나의 사랑 안에서 만달리로 사십시오. 확인 전보 바랍니다.

(1968년 10월 4일 전보. 바바의 지시에 따라 에루치는 켄모어에게 치료 장비를 갖춘 의사로 오지 말고, 카메라나 바바의 편의를 위한 다른 "놀라운 물건"도 가져오지 말라고 편지를 썼다.)

“

당신은 만달리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내가 은둔 중에 여기 머물도록 허락한 것입니다. ... 내년 7월부터는 메헤라자드에 영구히 머무는 것이 허락될 것입니다.

(1968년 11월 메헤라자드, 7일간의 체류 중. 떠나기 전에 바바는 그에게 1969년 7월에 부르기를 기다리지 말고 다시 오라고 일렀다.)

주요 이야기

바바의 얼굴을 만져 보다

1956년 여름 머틀 비치의 메헤르 센터에서, 바바는 막 자신을 만난 눈먼 척추지압사와 한 약속을 지켰다. 바바는 해리 켄모어에게 이리 오라고 손짓한 뒤 그의 두 손을 잡아 손바닥 아랫부분을 자기 뺨에 세게 대었다. 해리는 손가락을 펴서 바바 얼굴의 윤곽을 더듬어 보았다.

주님을 치료하러 온 사람

1957년 가을에도 바바는 1956년 교통사고로 다친 고관절 때문에 끊임없는 통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켄모어에게 처음 바바의 글을 읽어 준 간호사 아델 월킨이 고허에게 편지로 그를 추천했고, 켄모어도 직접 편지를 보내 돕겠다고 나섰다. 바바는 10월 23일 전보로 그를 인도에 불렀다. 그는 11월 5일 메헤르지와 함께 접이식 치료대를 가지고 메헤라자드에 도착해, 만달리 홀에서 매일 아침과 저녁 한 시간씩 바바를 치료했다. 고관절을 처음 진찰하고서는 "정말 까다로운 상태군요"라고 말했다. 『로드 메허』에 따르면 12월 5일 떠날 때, 주님을 치료하러 왔던 그는 오히려 자신이 "치료"를 받았고, 신성한 포도주에 흠뻑 젖은 채 바바의 사랑에 미친 사람이 되어 떠났다.

기도하는 겁니까, 하나님과 싸우는 겁니까?

바바는 켄모어에게 자주 스승의 기도와 회개의 기도를 암송하게 했고, 그는 우렁찬 목소리로 기도했다. 1959년 10월 메헤라자드를 찾은 방문객 호샹 바루차와 코와스 베수나는 그 소리가 너무 크다고 여겼고, 호샹이 켄모어에게 물었다. "당신은 기도하는 겁니까, 아니면 하나님과 싸우는 겁니까?" 다음 날 켄모어는 거의 속삭이듯 기도를 외웠다. 바바가 왜 갑자기 새로운 방식으로 기도하느냐고 묻자, 그는 "우리의 새 방문객들의 청각 기관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요!"라고 대답했다. 바바는 두 방문객을 엄하게 바라본 뒤 켄모어에게 평소처럼 기도하라고 일렀다. 그리고 기도는 가슴에서 우러나와 자연스러워야 하며, 해리에게는 크게 기도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말했다.

도둑처럼

1959년 9월 어느 날, 켄모어는 카카의 방에서 파드리가 들려주는 바바의 초기 시절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마침 그곳을 지나던 바바는 거기 있던 사람들에게 켄모어가 눈치채지 못하게 하라고 손짓했다. 그러고는 조용히 켄모어의 지팡이를 빼내어 거꾸로 쥐고, 굽은 손잡이로 그의 목을 걸어 보려 했다. 이야기에 정신이 팔린 켄모어는 말 한마디 없이 지팡이를 계속 밀어냈고, 바바는 거듭 그의 목을 걸었다. 마침내 바바가 손가락 하나로 켄모어를 건드리자, 그는 곧바로 누구인지 알아차리고 "바바!" 하고 외쳤다. 모두가 한바탕 크게 웃었다. 나중에 켄모어가 바바에게 도둑처럼 다가오셨다고 하자, 바바는 언젠가 바로 그런 식으로 그의 가슴에 들어가겠다고 대답했다.

빗속에 업혀 가다

1959년 메헤라자드에서 아침마다 켄모어의 산책을 맡은 사람은 푸카르였다. 어느 날 큰비가 쏟아져 산책을 나가지 못하게 되자, 푸카르는 켄모어가 별채로 가는 동안 신발과 양말이 젖을까 봐 그를 등에 업고 건너갔다. 이를 본 라노가 바바에게 알렸고, 바바는 다음 날 아침 푸카르를 꾸짖었다. "왜 켄모어 박사처럼 무거운 사람을 업었습니까? 내가 당신 등에 앉는 것은 그와 다릅니다. 그 일 때문에 당신은 심장마비를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며칠 뒤 푸카르는 심장마비를 겪었다. 바바는 그에게 스스로 자초한 일이지만 죽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저 친구에게 시가 두 개 주시오!"

1959년 메헤라자드에 머물던 시기, 바바는 오후마다 만달리와 정원 소년들, 요리사와 함께 세븐 타일 게임을 하며 의자에 앉아 타일 더미를 향해 공을 던졌다. 켄모어도 눈이 보이지 않았지만 차례가 오면 공을 던졌다. 한번은 그가 조준해 공을 던지자 파드리가 바바의 신호를 받고 타일 더미를 흩어 놓았고, 켄모어는 자신의 "명중"에 크게 기뻐했다. 그 뒤로 그는 연습을 거듭해 때로는 정말로 더미를 맞히기도 했다. 누군가 더미를 맞히면 그는 "저 친구에게 시가 두 개 주시오!" 하고 외치곤 했다.

사랑하는 님이 지은 시

1959년 10월 어느 날, 바바는 켄모어에게 오후 8시까지 물도 마시지 말고 단식하라고 지시했다. 오후 7시에 바바는 시를 지어 그에게 보냈다. "한 시간만 더 있으면 / 그대 배의 문을 열고 / 먹을 것을 실컷 먹어 / 기력을 회복하시오. / …" 그 뒤 몇 주 동안 시가 이어졌다. 10월 29일 작별 지시를 내리면서 바바는 그에게 말했다. "나는 지금까지 누구를 위해서도 시를 지은 적이 없습니다. 연인들은 언제나 사랑하는 님을 찬양하는 시를 씁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사랑하는 님인 내가 당신을 위해 시를 지었습니다!" 1959년 11월 4일 켄모어는 뉴욕으로 떠났다. 바바가 그에게 준 마지막 시는 이러했다. "사랑하는 해리여, 기쁘고 즐겁게 지내라. / 그대의 시름은 메헤라자드에 묻어 두어라. / …"

저서 및 출판물

해리: 해리 L. 켄모어 이야기와 사랑하는 팝 메헤르 바바와 함께한 삶

Harry: The Story of Harry L. Kenmore & his Life with his Beloved Pop, Meher Baba

전기

그의 강연과 편지, 그를 알던 이들의 회상을 엮어 메헤르 바바와 함께한 그의 삶을 담은 책

편집자: 래리 카라쉬, 리타 카라쉬

출판사: iUniverse, 2017

해리의 강연

Talks by Harry

강연집

1969년 이후 그가 미국에서 메헤르 바바에 대해 한 강연 모음

편집자: 래리 카라쉬, 리타 카라쉬

출판사: iUniverse, 2023

외부 링크

참고 문헌

Lord Meher by Bhau Kalchuri, pp. 4014-5411 (first meeting, both Meherazad stays, the 1958 sahavas, visits of 1961-1968 and the interment in 1969)
The Way and the Goal by The Society for Avatar Meher Baba, New York, Vol. 1, No. 1, Vol. 1, No. 3, Vol. 1, No. 12, Vol. 2, No. 5 (his talks, and an account of his last months, death and funeral)
Harry: The Story of Harry L. Kenmore & his Life with his Beloved Pop, Meher Baba by Larry and Rita Karrasch (compilers) (iUniverse, 2017)
Talks by Harry by Larry and Rita Karrasch (compilers) (iUniverse,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