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달리 목록
프란시스 브라바존

프란시스 브라바존

Francis Brabazon

버나드 프란시스 브라바존

호주 시인, 바바에게 바친 시와 가잘, 아바타의 거처 설립자

“바바의 계관시인”

1907년 1월 24일 ~ 1984년 6월 24일
영국 런던 → 호주 퀸즐랜드 움바이

직업

화가, 시인, 작가

전기

프란시스 브라바존(1907년 1월 24일 – 1984년 6월 24일)은 호주의 화가이자 시인, 작가로, 메헤르 바바의 가장 가까운 서양인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고 아바타의 계관시인으로 불린다. 그의 작품, 특히 시적 걸작 『하나님과 함께 머물라(Stay with God)』는 20세기 최고의 영적 시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메헤르 바바는 이 책을 읽는 모든 이의 가슴에 바바의 사랑이 닿을 것이라고 말했다.

영적 구도자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프란시스는 호주에서 자랐고, 형이상학 문헌과 동양의 영적 전통에 깊이 빠져들었다. 그는 수피즘, 베단타, 불교, 도교, 유교를 공부하며 모든 종교의 경계를 넘어서는 궁극의 진리를 찾았다. 아버지가 멜버른 피츠로이에서 서점을 운영했으니, 이것이 어려서부터 그의 문학적 기질을 길러 주었을 것이다.

영적 여정은 그를 페르시아 수피 전통으로 이끌었고, 그는 호주 수피 운동의 지도자 프리드리히 폰 프랑켄베르크 남작 밑에서 무리드(제자)가 되었다. 프란시스가 메헤르 바바를 처음 알게 된 것도 남작을 통해서였다.

스승을 찾아 나선 길

1946년, 폰 프랑켄베르크 남작은 프란시스에게 중요한 임무를 맡겼다. 샌프란시스코로 가서 무르시다 라비아 마틴을 모시고 인도로 가 메헤르 바바를 만나게 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라비아 마틴이 암으로 중병에 걸려 인도 여행은 취소되었다. 그녀는 1947년에 세상을 떠났고, 프란시스는 그 후계자 아이비 듀스가 인도에서 바바를 만나고 돌아온 1948년 1월까지 미국에 머물며 기다렸다.

1948년, 아이비 듀스가 메헤르 바바는 "모든 수피의 쿠툽"(모든 수피 교단의 중심이 되는 영적 축)이라고 확인해 주자, 프란시스는 깊은 깨달음을 담아 바바에게 진심 어린 편지를 썼다. 이듬해인 1949년에는 폰 프랑켄베르크 남작과 다른 수피들이 낸 돈으로 바바를 위해 시드니 비컨 힐에 땅을 사들였고, 프란시스는 그곳에 메헤르 바바가 머물 집을 짓기 시작했다.

1950년 폰 프랑켄베르크 남작이 세상을 떠나자, 아이비 듀스는 프란시스를 호주 수피들의 수장으로 임명했다. 영적 공동체에서 무거운 책임이 따르는 자리였다.

메헤르 바바와의 첫 만남

10년에 걸친 프란시스의 영적 탐구는 1952년 5월 9일,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머틀 비치의 메헤르 영성 센터에서 메헤르 바바를 처음 만나며 절정에 이르렀다. 프란시스는 훗날 이 만남을 이렇게 회고했다.

"이 만남은, 내가 아무 의심 없이 믿고 맡길 수 있는 이상적인 안내자를 찾아 10년 동안 이어 온 영적 공부와 탐구의 절정이었습니다. … 그전 10년 동안 나는 위대한 수피 학파들의 방법과 수행을 연구했고, 베단타와 불교, 그리고 도교와 유교를 포함한 다른 여러 체계도 꽤 폭넓게 읽었습니다. 메헤르 바바에게서 나는 이런 것들을 그저 아는 데 그치지 않고, 이 모든 체계와 지식을 살아 있는 몸으로 구현한 분을 발견했습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나는 그분을 보았다고 확신했습니다."

바바를 본 순간 프란시스의 가슴은 바바를 태고의 분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바바 곁에 영원히 머물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바바는 헤아릴 수 없는 방식으로 프란시스를 머틀 비치에 단 사흘만 머물게 한 뒤 호주로 돌려보냈다. 떠난 뒤 이레 동안 프란시스는 쉬지 않고 울었다. 신성한 어부의 그물에 걸린 것이었다.

5월 11일, 프란시스는 아이비 듀스, 차르미안 듀스와 함께 다시 바바를 만나 수피즘 리오리엔티드(Sufism Reoriented)의 앞날을 논의했다. 메헤르 바바의 발 앞에 바친 프란시스의 항복은 완전했지만, 신성한 어부는 이 귀한 고기를 7년 동안이나 "데리고 논" 뒤에야 그가 곁에 영원히 머물도록 허락했다.

준비의 세월

1954년 2월, 프란시스는 바바의 역사적인 안드라 순회에 함께했고, 이 경험에서 영감을 받아 『하나님과 함께하는 여행(Journey With God)』을 썼다. 1955년 11월부터는 사하바스를 위해 메헤라바드에 머물렀는데, 바바는 그를 호주로 돌려보내며 사하바스의 기록을 쓰게 했고, 이것이 『하나님과 함께 머물라』가 되었다. 1956년 8월 시드니에서 프란시스의 희곡 『탐구』 공연에 기뻐한 바바는 그에게 이른바 "상"을 내렸다. 1957년 2월 한 달 내내, 28일 동안 우유와 차, 커피만 마시며 단식하고 책도 읽지 말라는 것이었다. 이 엄격한 수행은 프란시스의 영적 유대를 한층 깊게 했다.

아바타의 거처

1958년, 프란시스는 브리즈번에서 북쪽으로 약 120km 떨어진 퀸즐랜드 킬 마운틴에서 옛 파인애플 농장이던 82에이커의 땅을 찾아내 사들였다. 이 땅에는 태평양까지 360도로 탁 트인 전망을 지닌 높이 137m(450피트)의 언덕이 있었다. 그는 폰 프랑켄베르크 남작의 유산으로 받은 돈으로 이 땅을 샀다.

1958년 6월 이곳을 찾은 메헤르 바바는 이곳에 "아바타의 거처"라는 이름을 붙이고 놀라운 예언을 했다. "700년 뒤 아바타의 거처는 온 세상이 순례하는 곳이 될 것입니다." 이 말로 호주의 이 땅은 메헤르 바바를 따르는 이들에게 가장 성스러운 곳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1967년, 프란시스는 바바의 지시에 따라 아바타의 거처의 소유권을 빌 르 페이지에게 넘겨, 후대를 위해 이곳이 보존되도록 했다.

메헤라자드에서의 삶

1959년 1월 27일, 오랫동안 기다려 온 프란시스의 꿈이 마침내 이루어졌다. 메헤르 바바 곁에 영원히 머물기 위해 메헤라자드에 도착한 것이다. 그는 도착하자마자 시적 걸작 『하나님과 함께 머물라』의 원고를 바바의 발 앞에 놓았다. 평생을 바친 예술 작품을 사랑하는 님에게 바친 것이었다.

프란시스는 1969년 바바가 육신을 떠날 때까지 10년 동안 메헤라자드에서 바바의 만달리와 함께 살았다. 이 시기 그의 일과는 독특했다. 다른 남자들이 잠자리에 들면 프란시스는 밤 9시에 차를 끓여 놓고 새벽 1시나 2시까지 글을 썼다. 그런 다음 차를 더 끓여 마시고 잠들었다. 아침마다 바바는 졸음을 쫓으라고 그에게 "반달"(각성제)을 건네주었다. 훗날 1967년 구루프라사드에서는 아침마다 프란시스가 가잘 한 편을 읽어 주면, 바바가 그것을 세 번 되풀이해 읽게 했다.

1959년 8월, 프란시스는 역사적인 블루 버스와 새로운 삶 캐러밴을 복원해도 좋다는 바바의 허락을 받았다. 바바의 중요한 영적 여정에 쓰인 차량들이었다.

문학적 유산

프란시스 브라바존의 저작은 메헤르 바바의 유산에 바쳐진 가장 중요한 예술적 기여 가운데 하나로 남아 있다.

하나님과 함께 머물라(Stay with God): 1955년 인도 사하바스를 그린 그의 시적 대표작. 메헤르 바바는 이 작품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나의 사랑은 지금껏 어떤 책도 해내지 못한 방식으로, 이 책을 읽는 모든 이의 가슴에 닿을 것입니다. 이 책은 가장 높은 지성을 지닌 이들에게도, 소박한 가슴을 지닌 이들에게도 울림을 줄 것입니다."

침묵의 말씀(The Silent Word): 전 세계에서 바바를 사랑하는 이들이 걸작으로 꼽는 메헤르 바바의 전기.

동서 집회(The East-West Gathering): 1962년의 역사적인 모임을 기록한 책으로, 바바가 훌륭하다고 칭찬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여행(Journey With God): 안드라 순회 중 그가 겪은 체험의 기록.

우리 민중이여, 노래하자(Let Us, The People, Sing): 바바를 위해 지은 노래 25곡을 모은 책.

메헤르 바바에 관한 세 편의 강연(Three Talks on Meher Baba): 아바타에 관한 강연 모음.

탐구(The Quest): 사랑하는 님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 희곡으로, 프란시스 자신이 구도자 역을 맡아 바바 앞에서 공연했다.

메헤르 바바는 프란시스의 시에 대해 놀라운 말을 했다. "지금 이번 강림에서 내가 사랑의 길을 보여 주는 예로 하피즈의 가잘을 인용하듯이, 700년 뒤 다시 올 때에는 당신의 가잘을 인용할 것입니다." 이 말은 프란시스의 시를 위대한 수피 시인 하피즈와 나란히 놓는다.

바바가 프란시스에게 한 말

메헤르 바바가 프란시스에게 한 말들은 두 사람의 유대가 얼마나 깊었는지 보여 준다.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당신을 알고 있었지만, 당신은 기억하지 못하지요? 그것이 사실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바바의 시간은 다릅니다. 그것을 기억하십시오!"

"낙담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정말 잘하고 있고, 나는 당신에게 아주 만족합니다."

1967년 빌 르 페이지에게는 이렇게 말했다. "그렇습니다. 당신은 프란시스를 무척 사랑하고 그도 당신을 무척 사랑합니다. 그러나 나는 당신들 두 사람이 서로를 사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당신들을 사랑합니다."

아르티

프란시스는 메헤르 바바를 위한 아르티(헌신의 찬가)의 가사와 곡을 지었고, 이 노래는 '호주 아르티'로 불린다.

"오 영광스럽고 영원하신 태고의 분이여, / 당신의 얼굴은 밝게 빛나는 초월의 태양, / 이 어두운 세상과 내가 흘리는 눈물을 밝혀 주소서. / 메헤르여, 나의 가슴을 당신께 맡기오니 지켜 주소서."

마지막 시절

1969년 1월 메헤르 바바가 육신을 떠난 뒤에도 프란시스는 바바의 유산을 섬기는 일을 이어 갔다. 그는 아바타의 거처로 돌아가 남은 세월 동안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사랑하는 님과 함께한 시간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프란시스 브라바존은 1984년 6월 24일 오전 8시 호주 퀸즐랜드 움바이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는 1984년 6월 29일 오후 2시 30분, 자신이 아바타를 위해 마련한 바로 그 땅인 아바타의 거처에 안장되었다. 바바가 축복하고 이름 지어 준 그곳에 있는 그의 무덤은 지금도 순례지로 남아 있다.

프란시스 브라바존의 삶은 예술가가 자신의 재능을 온전히 신성에 바칠 때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보여 준다. 메헤르 바바가 약속한 대로, 그의 시는 지금도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며 사랑의 길을 비추고 있다.

사진 갤러리(156 장)

1 / 8

생애 연표

1907

영국 런던에서 태어남

1946

폰 프랑켄베르크 남작의 지시로 무르시다 라비아 마틴을 모시고 인도로 가 메헤르 바바를 만나려고 샌프란시스코로 감. 라비아 마틴의 병으로 여행은 취소됨

1948

아이비 듀스가 바바는 '모든 수피의 쿠툽'이라고 확인해 주자 바바에게 진심 어린 편지를 씀

1949

폰 프랑켄베르크 남작과 다른 수피들이 낸 돈으로 바바를 위해 시드니 비컨 힐에 땅을 삼. 프란시스가 그곳에 메헤르 바바가 머물 집을 짓기 시작함

1950

폰 프랑켄베르크 남작이 세상을 떠나자 아이비 듀스에 의해 호주 수피들의 수장으로 임명됨

1952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머틀 비치에서 메헤르 바바를 처음 만남. 단 사흘 머문 뒤 호주로 돌려보내짐

1954

인도에서 메헤르 바바의 안드라 순회에 함께함

1955

11월 1일부터 사하바스를 위해 메헤라바드에 머묾. 바바가 그를 돌려보내며 사하바스의 기록을 쓰게 했고, 이것이 『하나님과 함께 머물라』가 됨

1957

1956년 8월 시드니에서 바바에게 받은 '상'을 이행함. 우유와 차, 커피만 마시는 28일 단식으로, 책 읽기도 금지됨

1958

퀸즐랜드 킬 마운틴의 82에이커 땅을 찾아내 사들임. 바바가 '아바타의 거처'라고 이름 붙임

1958

메헤르 바바가 아바타의 거처를 찾고 예언함: '700년 뒤 아바타의 거처는 온 세상이 순례하는 곳이 될 것입니다'

1959

메헤라자드에 영구히 머물기 위해 도착. 『하나님과 함께 머물라』의 원고를 바바의 발 앞에 놓음

1962

에루치와 함께 역사적인 동서 집회에 온전히 참여. 바바의 요청으로 그 기록을 씀

1967

바바가 프란시스에게 아바타의 거처를 빌 르 페이지에게 넘기라고 지시함

1984

오전 8시 호주 퀸즐랜드 움바이에서 세상을 떠남

1984

오후 2시 30분 아바타의 거처에 안장됨

말씀

“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당신을 알고 있었지만, 당신은 기억하지 못하지요? 그것이 사실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

낙담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정말 잘하고 있고, 나는 당신에게 아주 만족합니다.

“

나의 사랑은 지금껏 어떤 책도 해내지 못한 방식으로, 이 책을 읽는 모든 이의 가슴에 닿을 것입니다. 이 책은 가장 높은 지성을 지닌 이들에게도, 소박한 가슴을 지닌 이들에게도 울림을 줄 것입니다.

“

지금 이번 강림에서 내가 사랑의 길을 보여 주는 예로 하피즈의 가잘을 인용하듯이, 700년 뒤 다시 올 때에는 당신의 가잘을 인용할 것입니다.

“

내가 왜 당신을 호주에서 불렀는지 말해 주겠습니다. 또 나중에 당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말해 주겠습니다. 그동안은 모든 것을 자세히 지켜보십시오. 그러고 나서 당신이 무엇을 보고 이해했는지 나에게 말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기억하십시오. 나는 가장 신성하면서 동시에 가장 인간적이기 때문에, 누구도, 리쉬들조차도, 나의 깊이를 헤아릴 수 없습니다. 나는 무한히 미끄럽기 때문입니다.

(1954년 2월, 안드라 순회를 시작하며 푸나에서 탄 기차 안이다. 바바는 프란시스를 호주에서 불러 동행하게 했는데, 한 정거장을 지난 뒤 만달리 칸으로 와서 그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

프란시스, 모든 것을 팔고 십자가를 따르십시오.

(1954년 9월 메헤라바드, 서양 남성들이 모였을 때다. 바바는 호주의 젊은이 빌 르 페이지와 존 밸런타인에게 자기 무덤에서 한밤에 앉아 있으라는 과제를 준 뒤 프란시스를 향해 말했다.)

“

적어도 6개월은 머물 준비를 하고 오고, 그 기간 동안 바바에게 순종할 준비도 하고 오십시오.

(1958년 11월 메헤라자드. 프란시스를 인도로 부르는 문제가 논의되어 결정되자, 바바는 아디 K. 이라니를 시켜 호주에 있는 그에게 전보를 보냈다.)

“

지금까지 당신이 나와 함께 지낸 시간은 나에게도, 당신에게도, 또 당신의 [호주] 그룹에게도 온전히 결실이 있었습니다.

(1959년 7월 구루 푸르니마, 푸나의 구루프라사드. 그해 초부터 바바 곁에 머물던 프란시스를 바바는 저녁에 자기 방으로 불렀다.)

“

당신의 『하나님과 함께 머물라 (Stay With God)』도 비할 데 없는 작품입니다. 훗날 그것이 인류의 가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당신은 모릅니다.

(1959년 8월 24일 메헤라자드. 알로바가 하피즈를 페르시아어로 낭송하고 바바가 하피즈의 시를 칭찬한 뒤, 1955년 사하바스의 기록인 『하나님과 함께 머물라(Stay With God)』의 출간을 앞둔 프란시스에게 한 말이다.)

“

모든 종교에는 의식과 의례가 있습니다. … 그것들은 마른 뼈와 같습니다. 사랑에는 속박이 없습니다. 가슴의 기도가 가장 위대한 것입니다.

(1959년 8월 25일 메헤라자드, 바바가 '사랑하는 하나님 기도'를 구술한 날이다. 알로바에게 이슬람식 나마즈를 하게 한 뒤 바바가 기독교인은 어떻게 기도하느냐고 묻자, 프란시스는 가톨릭 신자처럼 십자 성호를 그었다.)

“

타락하기는 너무나 쉽고, 한번 타락하면 얽히게 됩니다. 반면 얽힘에서 벗어나 아무 속박 없이 다시 올라서는 것은 너무나 어렵습니다.

(1959년 초, 메헤라바드에서 메헤라자드로 돌아오는 차 안이다. 바바는 막 다녀간 파리의 필립 뒤퓌이를 걱정하며 프란시스에게 이렇게 말했다.)

“

이것이 지금까지 당신이 한 것 가운데 최고입니다. 이번에는 정말 자신을 뛰어넘었습니다!

(1967년 메헤라자드. 프란시스는 바바를 위해 영어로 시와 가잘을 계속 지었고, 새로 지을 때마다 바바 앞에서 낭송했다.)

영상

저서 및 출판물

하나님과 함께 머물라

Stay with God

시집

1955년 인도 사하바스를 그린 시적 대표작. 바바는 '나의 사랑은 지금껏 어떤 책도 해내지 못한 방식으로, 이 책을 읽는 모든 이의 가슴에 닿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침묵의 말씀

The Silent Word

전기

전 세계에서 바바를 사랑하는 이들이 걸작으로 꼽는 메헤르 바바의 전기

동서 집회

The East-West Gathering

기록

1962년 동서 집회의 기록. 바바가 훌륭하다고 평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여행

Journey With God

기록

안드라 순회 중에 겪은 체험의 기록

우리 민중이여, 노래하자

Let Us, The People, Sing

가곡집

바바를 위해 지은 노래 25곡 모음

메헤르 바바에 관한 세 편의 강연

Three Talks on Meher Baba

강연집

메헤르 바바에 관한 강연 모음

탐구

The Quest

희곡

사랑하는 님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 희곡. 프란시스가 구도자 역을 맡아 바바 앞에서 공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