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우파티 해변에서 막은 자살
아내가 가장 친한 친구에게 떠나 버리자 찬지는 차우파티 해변에서 바다에 몸을 던지려 했다. 마침 나발 탈라티와 함께 지나가던 바바가 이 낯선 이에게 다가가 말했다. '당신에게는 오직 지복과 기쁨만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이 만남으로 찬지의 삶은 바뀌었고, 그는 바바의 첫 비서가 되었다.

Chanji
프람로즈 호르무스지 다다찬지
바바의 첫 비서, 서신과 일지 담당
프람로즈 호르무스지 다다찬지는 여러 세대의 메헤르 바바 러버들에게 그저 '찬지'로 알려져 있으며, 아바타의 첫 비서로서 역사에 독특한 자리를 차지한다. 그가 꼼꼼하게 남긴 일지와 서신, 메모는 1926년부터 1944년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바바의 활동을 담은 귀중한 기록이다. 바바의 초기 활동에 대해 오늘날 우리가 아는 것의 상당 부분이 이 보물 같은 기록에 기대고 있다. 그러나 상처 입은 이 사내가 어떻게 스승에게 삶을 바치게 되었는지, 그 이야기 자체가 바바 문헌 전체에서 손꼽히게 극적이다.
찬지는 1892년 11월 23일 봄베이의 파르시 가정에서 태어났다. 봄베이의 파르시 학교를 다니고 카라치에서 1년간 대학을 다닌 뒤 속기와 타자를 배웠는데, 이 기술은 훗날 큰 힘이 되었다. 그리브스 코튼 회사에서 일했고, 제1차 세계대전 중에는 병원선 타카다호에 기자로 탔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판매원, 회계사, 통신원, 극장 지배인 등 여러 일을 했고, 마침내 가장 친한 친구와 함께 봄베이의 그랜트 로드와 래밍턴 로드 모퉁이 근처에 있는 영화관 마들렌 극장을 소유하게 되었다.
1916년 12월, 찬지는 형제 나오로지와 함께 올린 합동 결혼식에서 제르바이 F. 카르카리아와 결혼했다. 그는 아내를 깊이 사랑했고 그녀의 행복과 안락을 위해 온 힘을 쏟았다. 그러나 아내가 가장 친한 친구이자 사업 동업자, 곧 그가 누구보다 믿던 사람과 바람을 피운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의 세계는 무너졌다. 이 일은 1920년 또는 1921년 세간의 입에 오르내린 이혼으로 이어졌다. 찬지는 헤어날 수 없을 만큼 무너졌다. 더는 괴로움을 견디지 못한 그는 1924년 바다에 몸을 던지려고 봄베이의 차우파티 해변으로 갔다.
그날 마침 메헤르 바바는 나발 탈라티와 함께 같은 해변을 걷고 있었다. 수심에 잠겨 앉아 있는 사내에게 눈길이 간 바바는 나발에게 저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다. 나발이 모른다고 하자 바바는 그 낯선 이에게 걸어갔다. 알고 보니 그는 나발의 지인이었다. 방해를 받아 짜증이 난 그가 물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바바는 웃으며 답했다. '우리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왜 자기를 귀찮게 하는지 그가 묻자 바바가 말했다. '당신에게는 오직 지복과 기쁨만이 예정되어 있다는 것을 알려 주려는 것입니다!'
놀란 찬지는 자기에게 행복은 없다고 맞섰다. 바바가 설명했다. '행복에 대한 당신의 그릇된 생각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참된 지복이 올 것입니다. 참된 기쁨을 찾도록 그것이 걷혀 나갈 것입니다. 그러니 왜 비참해하고 불행해합니까?' 바바를 바라보던 찬지의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무너져 내렸다. 괴로운 상념이 풀어지고 가슴을 짓누르던 슬픔이 걷혔다. 바바가 말했다. '당신은 나의 영화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맡아야 합니다!' 찬지가 자기는 영화관을 가지고 있다고 하자 바바는 웃었다. '나는 우주의 영화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튿날 아침, 바바는 기다리지 못하고 나발을 보내 찬지를 데려오게 했다. 상처 입은 사내는 찾아와 자기 고통을 털어놓으며 바바의 발 앞에서 걷잡을 수 없이 흐느꼈다. 바바는 그를 품에 안고 뺨을 토닥이며 그의 삶을 영원히 바꾼 말을 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나에게 오십시오.' 당시 31세였던 찬지는 꾸준히 바바를 찾아오기 시작했고, 마침내 바바의 첫 비서가 되었다.
1926년 7월 11일부터 찬지는 메헤라바드의 하루하루를 따로 일지에 적기 시작했고, 18년 뒤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를 이어 갔다. 바바의 서신을 모두 혼자 처리했고, 붐비는 3등 열차에서도 휴대용 타자기를 들고 다녔다. 바바와 함께 영국, 미국, 이집트, 유럽, 인도 전역 등 세계 곳곳을 다니며 일정을 짜고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스승의 작업을 기록했다.
바바는 찬지를 끊임없이 시험하며 그의 에고를 부수었고, 말하자면 그를 영적 희생양으로 삼았다. 유럽에서는 바바의 꾸지람에 찬지가 눈물을 쏟는 일이 잦았다. 한번은 루스톰이 찬지에게 새 옷을 주자 바바가 그를 몹시 꾸짖었고, 찬지는 옷을 내던지며 외쳤다. '더는 당신 곁에 있을 수 없습니다!' 뒤에 바바는 그를 안아 주며 설명했다. '내가 당신을 이렇게 대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모릅니까? 이것이 자비입니다. 이것이 나의 은총입니다.' 찬지는 일지에 이렇게 적었다. '누구나 바바와 함께 있기를 바라지만, 그 대가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또 이렇게도 적었다. '스승의 꾸지람은 단검보다 깊이 벤다.'
찬지는 너그러운 가슴을 지닌 다정한 사람이었다. 놀랍게도 그는 자기를 배신한 전 아내와 동업자를 끝내 미워하지 않았다. 그의 영향으로 온 가족(부모, 네 형제, 누이 한 명과 그 배우자와 자녀들)과 봄베이의 수많은 파르시와 이라니가 메헤르 바바의 대의에 삶을 바쳤다.
찬지는 삶은 감자를 무척 좋아했지만, 바바는 그에게 그것을 먹지 말라고 지나가듯 지시하면서 '감자가 당신을 먹을 것입니다!'라는 수수께끼 같은 말을 했다. 찬지는 이 지시를 가볍게 여겼다. 1944년 여름 바바는 만달리 일행과 함께 카슈미르로 갔다. 바바는 그전에 카슈미르에서 야영하던 중 찬지에게 '당신은 여기서 죽어야 합니다'라는 불길한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스리나가르에 도착한 바바는 감자를 먹고 있는 찬지를 보았고, 찬지는 곧 장티푸스에 걸렸다. 그는 1944년 8월 25일 카슈미르 요양원에서 바바의 이름을 입술에 담은 채 52세로 세상을 떠났다.
바바는 직접 장례에 참석해 그의 유해 위에 꽃을 뿌렸다. 그리고 전보를 불러 주었다. '찬지는 영원히 나에게 왔습니다. 그는 영원히 나와 하나가 되었으니 아무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바바는 뒷날 그를 두고 '찬지는 나의 제자였을 뿐 아니라 나의 친구였습니다'라고 말했다. 『로드 메허』는 그에게 경의를 바치며, 그가 간직한 메헤르 바바의 신성한 말과 일이라는 보화가 그의 사랑과 제자됨을 기리는 기념이 되고, 그의 기록이 앞으로 여러 세대에 걸쳐 세상에 영감을 줄 것이라고 적었다.
찬지는 스리나가르의 파르시 묘지에 묻혔고, 뒤에 메헤라바드 기념탑에 상징적인 무덤이 마련되었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일지와 메모는 페람 워킹박스왈라가 아홉 달에 걸쳐 정리했다. 1920년대의 '티핀 강연'을 비롯한 이 기록들은 오늘날까지 구도자들에게 양식이 되고 있다. 바바의 공식 비서 자리는 아디 K. 이라니가 이어받았다.
“당신에게는 오직 지복과 기쁨만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1924년 차우파티 해변에서 찬지에게 건넨 첫마디)
“행복에 대한 당신의 그릇된 생각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참된 지복이 올 것입니다.
(자살하려던 찬지에게 그의 고통이 어떻게 바뀔지 설명하며)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나에게 오십시오.
(첫 만남 이튿날 아침, 찬지가 바바의 발 앞에서 흐느낀 뒤에 한 말)
“당신은 나의 영화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맡아야 합니다!
(차우파티 해변에서의 첫 만남. 찬지가 자기는 영화관을 가지고 있다고 하자 바바는 '우주의 영화'를 말한 것이라고 밝힘)
“내가 당신을 이렇게 대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모릅니까? 이것이 자비입니다. 이것이 나의 은총입니다.
(유럽에서 거듭된 시험 끝에 찬지가 무너졌을 때)
“감자가 당신을 먹을 것입니다!
(삶은 감자를 먹지 말라는 경고. 그는 이 말을 따르지 않았다가 장티푸스로 세상을 떠났고, 예언은 그대로 이루어졌다)
“당신의 무덤은 이곳이 될 것입니다.
(1929년 스리나가르에서 하르반 마을로 가는 길에 찬지에게 무심코 한 말. 그가 카슈미르에서 세상을 떠나기 여러 해 전이었다, 『로드 메허』 2426쪽)
“당신은 내가 시킨 일을 하지 않았고 내 전보도 무시했습니다. 머리는 내 발에 얹었다고 하면서도, 정작 내 뜻은 거스릅니다! 그렇다면 당신이 내게 절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내 발에 머리를 대는 행위가 의식처럼 되어 버렸지만, 그 참뜻은 내 뜻 외에는 아무것도 행해져서는 안 된다는 데 있습니다. 이것이 내가 말하는 절입니다!
(1929년 11월 말 나식: 바바는 자신의 일에 쓸 소년을 찾아오라며 찬지를 봄베이로 보내고 그 일이 중요하다고 두 번이나 전보를 쳤지만, 찬지는 소년을 찾지 못한 채 돌아와 대부분의 시간을 사람들에게 스승 이야기를 하며 보냈다고 털어놓았다.)
“이런 생각은 잊어버리십시오! 나와 함께 계속 머물면서 일에 온전히 주의를 기울이고, 내가 명령하는 대로 하십시오. 그 이상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가장 큰 죄악도 완전한 스승께 자신을 바치면 씻겨 나갑니다. 하루 스물네 시간 나쁜 생각을 하더라도, 나와 함께 있으며 내 지시를 실행하십시오. 사드구루의 화로는 모든 것을 태워버립니다.
(1930년 7월 메헤라바드: 마드라스와 푸나를 오가는 심부름에 지친 찬지는 푸나 일을 마무리하지 못해 꾸중을 듣자, 자신은 허물이 많으니 떠나는 편이 낫겠다고 하소연했다. 8일, 바바는 두 시간 가까이 그를 달랬다.)
“나는 당신이 시간을 낼 수 없다는 걸 압니다. 하지만 내가 이유 없이 말을 하는 일은 없다는 걸 이해해야 합니다. 당신은 자신이 밤낮으로 일하고 있고, 당신이 하는 일은 아무도 대신할 수 없다고 여깁니다. 그건 당신의 착각입니다. 나도 어떤 사람들은 일부러 일이 없게 두는데, 거기에도 다 이유가 있습니다. 겉으로는 아무것도 안 하는 것처럼 보여도, 그들은 당신이 보지 못하고 이해도 못할 많은 일을 합니다.
(1934년 4월 방갈로르 근처 난디 언덕: 쌀 고르는 일을 도울 시간이 없다는 찬지를 카카가 비꼬았고, 바바도 카카 편을 들었다. 마음이 상한 찬지가 떠날 생각까지 하자, 바바는 그를 달래며 설명했다.)
“나는 나의 일을 내 방식대로 합니다. 잘못한 것이 없다면 무엇 때문에 걱정합니까? 나는 내 일을 위해 소동이든 폭풍이든 무엇이든 일으킬 수 있고, 잘못이 없는 사람이라도 내가 원하는 누구든 끌어들일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왜 슬퍼하고 걱정해야 합니까?
(1942년 4월 24일 데라둔: 그날 바바는 찬지의 무심한 실수를 호되게 꾸짖었다. 저녁에 찬더 로드 집 밖에서 여자들과 앉아 있던 바바는 길에 서 있던 풀이 죽은 찬지를 불러 달랬다.)
“제대로 준비하라고 열흘이나 먼저 내보냈는데, 당신은 젠장, 아무것도 해놓지 않았습니다! … 어젯밤 나는 한숨도 못 잤습니다. 밤새 내게는 지옥이었습니다. 내 안락함과 편의를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까? 지금 당장 내가 머물 조용하고 알맞은 곳을 찾지 못하면, 당신을 거꾸로 매달아 버리겠습니다!
(1943년 10월 캘커타: 바바는 굶주린 이들에게 음식과 옷을 나누어 줄 일을 준비하라고 찬지를 먼저 보냈다. 14일 바바가 예고 없이 도착했을 때 묵을 곳이 예약되어 있지 않아 찬지는 일행을 하룻밤 호텔로 데려갔다. 이튿날 아침 바바가 그를 꾸짖자, 찬지는 한마디 말도 없이 나가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아내가 가장 친한 친구에게 떠나 버리자 찬지는 차우파티 해변에서 바다에 몸을 던지려 했다. 마침 나발 탈라티와 함께 지나가던 바바가 이 낯선 이에게 다가가 말했다. '당신에게는 오직 지복과 기쁨만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이 만남으로 찬지의 삶은 바뀌었고, 그는 바바의 첫 비서가 되었다.
바바는 유럽에서 찬지를 끊임없이 시험했고, 그는 거듭 눈물을 쏟았다. 한번은 루스톰이 찬지에게 새 옷을 주자 바바가 그를 몹시 꾸짖었다. 찬지는 옷을 내던지며 울부짖었다. '더는 당신 곁에 있을 수 없습니다!' 뒤에 바바는 그를 안아 주며 설명했다. '내가 당신을 이렇게 대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모릅니까? 이것이 자비입니다. 이것이 나의 은총입니다.'
바바는 찬지에게 삶은 감자를 먹지 말라고 지나가듯 지시하며 '감자가 당신을 먹을 것입니다!'라고 수수께끼처럼 경고했다. 찬지는 이 지시를 가볍게 여겼다. 스리나가르에 도착한 바바는 감자를 먹고 있는 찬지를 보았고, 찬지는 곧 장티푸스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여러 해 전 바바가 한 예언, 곧 '당신의 무덤은 이곳(카슈미르)이 될 것입니다'라는 말이 이루어진 것이다.
바바가 페르시아에서 돌아오고 몇 달 뒤, 찬지는 봄베이의 영국 영사를 만났다. 영사는 바바가 페르시아 여권만 있고 서명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페르시아 해안 도시의 영사관들에 바바의 인도 귀환을 막으라고 지시해 둔 사람이었다. 비자 없이 어떻게 들어왔느냐는 물음에 찬지가 답했다. '그분은 스승이시니 그분께 불가능한 일은 없습니다. 육로로 두즈다브를 거쳐 오셨습니다.' 영사는 감탄했다. '이제 나는 그분이 스승이라는 것을, 그것도 완전한 스승이라는 것을 믿습니다!'
카슈미르에서 야영하던 중 찬지는 어둠 속 짐승 소리에 겁을 먹었다. 바바가 그를 놀렸다. '호랑이가 오면 당신을 그 등에 태우겠습니다!' 찬지가 싫다고 하자 바바가 농담했다. '그러면 호랑이를 당신 등에 앉히겠습니다.' 이어 바바는 불길하게 말했다. '당신은 여기서 죽어야 합니다.' 이 예언은 여러 해 뒤 찬지가 카슈미르에서 세상을 떠나면서 이루어졌다.
메헤르 바바의 티핀 강연
Meher Baba's Tiffin Lectures
1920년대에 메헤르 바바가 한 비공식 강연, 찬지의 상세한 일지 기록에서 편찬
역할: 찬지가 남긴 1920년대 기록에서 엮은 노트
편집자: 프람로즈 '찬지' 다다찬지, 메헤르완 B. 제사왈라, 워드 파크스
출판사: 셰리아르 재단